로스쿨 커리큘럼의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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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커리큘럼의 재조명
  • 성낙인
  • 승인 2012.05.04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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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인 서울대 헌법학 교수, 한국법학교수회장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개원되어 첫 옥동자까지 탄생한 시점이라 이제 로스쿨 제도는 더 이상 거역할 수 없는 대한민국 법률가의 미래를 담보할 제도라 아니할 수 없다. 충분히 논의했다고 하지만 시행착오를 거듭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생각을 달리할 부분도 많이 있다. 그런데 로스쿨 제도의 모든 사안이 반드시 종횡으로 연계되어 있으므로 어느 특정 제도만 놓고 일의적으로 단정 짓기 어렵다.


주지하다시피 대륙법계에서 유일하게 로스쿨을 도입한 일본에서는 우리와 다른 결정적인 두 가지 인자가 있다. 첫째 법대 학부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에서 그러하고, 둘째 그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로스쿨에서 법학 기수자와 법학 미수자를 구분하여 수학연한도 각기 2년과 3년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로스쿨의 학부를 폐지함에 따른 결과로 로스쿨에서 법학 기수자와 미수자를 구분하지 않고 교육함에 따라 새로운 문제점을 제기한다. 즉 기수자는 학부에서 4년 이상 법학을 공부한 학생들이고, 미수자는 학부에서 법학을 전혀 공부하지 않은 학생이다. 대부분의 로스쿨에서는 이들이 입학하자마자 같은 반에 넣어서 강의한다. 일부 로스쿨처럼 기수자와 미수자의 반을 구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이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즉 엄격한 상대평가를 시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수자에게 불리하게 작동할 우려가 있다. 사실 기수자는 어떤 의미에서는 과도기적인 양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기수자가 넘쳐나기 때문에 비로스쿨 출신 미수자가 많지 않은 상황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일부 논자들은 기수자는 로스쿨에 입학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현실적인 상황을 살펴보면 당장 금년 제1회 변시만 해도 일부 로스쿨에서 전원합격이라는 명예(?)를 자랑스러워한다. 앞으로 현재와 같이 입학생기준의 합격비율을 유지하는 한 훨씬 많은 탈락자가 발생하기 마련인데 이를 극복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는 사법시험 1차합격자를 절대적으로 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법시험이 종료되면 변호사시험을 위해서 학부법대출신들을 선호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이래가지고는 그 많은 장치에도 불구하고 로스쿨이 변시합격률 제고를 위한 시험기관으로 전락할 우려가 매우 높다.


입학 1차년도에 기수자와 미수자의 법학지식에 관한 한 출발선상에서 이미 천지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4년 이상 법학을 이수한 기수자에게 기본3법은 친근한 이웃이다. 근데 미수자에게는 1년만에 헌민형 기본3법에 추가하여 심지어 행정법이나 상법까지 필수적으로 습득하게 만드는 상황이라 미수자에게 1학년은 지옥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상대평가를 엄격히 실시하는 상황에서 미수자에게 거의 법대 3년과정에 해당되는 수업을 1년만에 해치우라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성문법을 중심으로 하는 대륙법계의 특성을 무시하고 판례법 중심의 미국 시스템을 답습한 역효과라 아니할 수 없다.

 
앞으로 로스쿨의 커리큘럼을 전면적으로 재조정하여 필수과목을 2학년 1학기 내지는 2학년말까지 분산하고 그에 따라 로스쿨 신입생에게 법학의 기초이론을 습득할 기회를 더 많이 부여해야 할 것이다. 지옥같은 1학년 커리큘럼이 계속되는 한 미수자의 고통을 더욱 가중될 것이다. 어차피 로스쿨이 미수자 중심으로 작동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커리큘럼도 이제 미수자를 중심으로 재조정되어야 한다. 특히 1학년 학생들에게는 법률가로서의 기본적인 소양을 일깨우고 법적 소양의 외양을 넓히는 법조윤리, 법사상사, 법고전강독과 같은 다양한 과목을 습독하도록 함으로써 미수자들에게 법학에 대한 친근감을 고양시킬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역발상 같지마는 오히려 1학년 1학기를 교양법학 중심으로 작동시키면 어떨지 하는 생각도 든다. 또한 1학년 여름방학부터 시작되는 법조실무를 중심으로 하는 인턴과정도 1학년 겨울 또는 2학년부터로 조정하고 그 대신 이론 습득에 ‘썸머 스쿨(Summer School)’을 통해서 더 많은 이론과 씨름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야 할 것이다. 미국식 로스쿨 제도를 도입하였지만 대륙법체계를 갖고 있는 한국적 현실을 반영한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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