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석 사법연수생의 사내변호사 성공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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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석 사법연수생의 사내변호사 성공담
  • 법률저널 편집부
  • 승인 2012.03.09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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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건 변호사(KDB산은금융그룹 이사, 준법감시인)

요즘은 뜸해지긴 했지만 가끔씩 시험에 관한 꿈을 꾼다. 대학 재수를 3년 동안 했기에 어떤 때는 시험을 치는데 수학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꿈, 어떤 때는 그렇게 오랫동안 공부했는데도 사법시험에 낙방하여 또 1차 시험부터 다시 봐야 한다는 그런 꿈을 여러 번 꾸었다. 그런 꿈을 꾸고 깰 때마다 그게 꿈인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늦은 나이에 사법시험에 붙긴 했지만 한 번도 내가 떨어진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아니 일부러 그런 생각을 갖지 않았다. 내가 안 되면 될 사람이 없다는 황당한 자신감을 혼자 꼭꼭 다지면서 살았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합격의 기쁨은 인생에 있어 짧고 강렬한 기억이긴 하나 스쳐지나가는 순간에 지나지 않는 것이므로 예비법조인들이 변호사가 된다면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도움이 되고자 나의 경험을 몇 자 적어본다.


2000년 2월 사법연수원을 가까스로 수료하였다. 2년 전 사법연수원을 입소할 당시만 해도 조금만 열심히 하면 말석 검사는 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졌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주변에서 천재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고, 젊은 친구들의 순발력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던 데다 뒤늦게 만난 집사람과 신혼의 단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2년을 보내고 좋은 성적이 아니었으니 판검사는 엄두도 내지 못했고 유명로펌에서 나를 기다려줄리 없었다. 그 겨울은 그렇게 끝나고 봄이 점차 다가오고 있었지만, 내게는 새로운 희망보다 암울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개업을 하기에는 가진 것도 없었고, 꼼꼼하고 책임감은 있지만 활달한 성격이 아니어서 누가 생면부지의 나에게 사건을 맡길 것인지를 생각하면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몇몇 중소형 로펌을 생각하기도 하였으나 그곳에서도 나이 때문이었는지 나는 같이 일하고 싶은 동료로 선정되지 못했다. 사법연수원 수료식 날 우수한 사법연수생들이 상을 받는 모습에 왠지 작고 초라해졌던 내 모습에 대한 기억이 있다.


하루하루 고민이 쌓여가던 차에 나에게 적합한 일자리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혼자 일하는 것 보다는 여러 사람이 같이 모여 일하는 것이 더 좋고, 조직이 있어 조직구성원으로서의 나를 보호해 주고 조직의 발전과 나의 발전이 함께 하면서 나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없으며, 나중에 개업하더라도 내가 근무했던 곳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은 사내변호사였다.


연수원을 다닐 때도 사내변호사에 대해 관심이 많아 몇 군데 알아보기도 하였으나 막상 취업을 하고자 하니 내가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곳은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운 좋게 모 증권사에 생각보다 많은 연봉을 받으며 취업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나의 변호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남들이 거절한 나를 비싸게 인정해 준 회사에 충성(?)을 맹세하려 하였으나 내 생각과 달리 회사 내부 사정이 이상하게 흘러가면서 내 존재감은 희미해져갔다. 그러던 차에 동일 업종의 대우증권에서 새롭게 법무팀을 꾸린다는 얘기를 친한 후배로부터 전해 듣고 그 후배의 직간접적인 도움으로 1년 만에 회사를 옮기게 되었다.


당시 대우증권은 1999년에 있었던 대우그룹 부도사태의 여파로 많은 법률적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고 수천억원에 달하는 분쟁에 연루되어 있었으며, 자칫 회사가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감돌던 때였다. 경력이 일천한 나에게 능력에 비해 너무나도 버거운 일이 많았으나 다행히 훌륭한 직장동료들과 함께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동안 회사는 점차 예전의 명성을 되찾았고, 그러는 과정에서 나의 존재감을 한껏 나타낼 수 있었으며, 내가 좋은 인상을 준 덕분인지 회사의 사내변호사가 한두 명씩 점차 늘게 되어 나는 어느덧 고참 변호사가 되었고, 사내변호사로 한 5년만 근무하리라는 애초의 생각과 달리 10년 넘게 근무하게 되었으며, 지금은 대우증권의 모회사인 산은금융지주의 준법감시인으로서 산은금융그룹 전체의 법규준수에 관한 내부통제업무를 책임지고 있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사내변호사로 근무하고 싶어하는 예비법조인들도 많이 있는 것으로 안다. 나에게 어떠한 예지력이 있어 사내변호사가 향후 유력하리라는 전망을 갖고 사내변호사가 된 것은 아니다. 다만, 나와 내 가족이 잘 먹고 잘 입고 편안히 쉴 수 있도록 해 준 회사에 고마움을 느끼며 그에 대해 보답하고자 노력하였고, 그 노력들이 다행히 좋은 결실을 가져왔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고, 어디에서든 해법은 반드시 있다. 예비법조인들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생각해보고 어떠한 길을 가든 열심히 노력한다면 누군가는 진심을 알아줄 거라는 우직함과 (나는 갖지 못했던)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을 가져보기를 바라면서 말석 사법연수생의 사내변호사 성공담(?)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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