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현대인은 모두 꼬리 긴 도마뱀이 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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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현대인은 모두 꼬리 긴 도마뱀이 되어 가고 있다.
  • 법률저널
  • 승인 2012.03.0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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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학장/변호사/시인

현대인은 모두 꼬리가 길다. 그래서 현대인은 지금 누군가에게 밟히고 있다. 신은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는 도마뱀이 되는 것을 인간에게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현대인은 모두 불행한지도 모른다. 나도 감시당하고, 너도 감시당한다. 출근 아파트 엘리베이터 시시티비카메라에서부터 도로마다, 건물마다, 대학교의 복도에 이르기까지, 내 일거수 일투족을 자동촬영하는 기록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1984년의 동물농장 슈퍼바이저는 그 자료들을 조합하기만 하면 한다. 그나마 예전에는 감시자와 피감시자의 구별이라도 있었다. 그래서 피감시자들만이 감시자들에 의해 조종되는 세상이었기에 억울한 일도 많았고 불공평한 일이 수없이 자행되었지만 그래도 이를 피해 나가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피감시자들만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그리고 나서도 한 마디 찍 소리도 못하는 불평등한 사회구조였다. 하지만 꼬리가 모두 길어진 오늘, 이제 감시자들도 피감시자들에 의해 감시당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으니, 어쩌면 그나마 공평하게 되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 수도 있게 되었다. 하지만 감시자들의 조작기술이 워낙 뛰어나 피감시자들이 더 많은 불이익을 받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그렇지만 장마철에 아주 간혹 햇살이 반짝이듯, 우중충한 잿빛 겨울 하늘에 우연히 한 줄기 청량한 햇빛이 내리쬐듯, 그렇게 감시자들의 잘못도 종종 드러나게 되고, 그때마다 그들의 추악함은 더욱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제 불법이 들통나지 않는 비밀의 천국을 세상은 허용하지 않는다. 인간의 도덕심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데, 과학문명이 사악한 인간의 불법을 허용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수많은 범법자들이 어둠 속에서 불법을 자행하고 있지만, 그들은 그들이 연극무대에서 연기하고 있는 배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뿐, 무대의 막이 내리고 수많은 관객들이 야유하며 박수를 칠 때 비로소 자신들의 연기를 모든 관객들이 흥미진진하게 관람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고 아차 하지만 이미 때는 늦는다. 이미 그들의 꼬리가 얼마나 긴지 세상이 알아버린 것이다. 21세기 트위터로 상징되는 까발림의 세상은, 만인이 카메라맨을 자청하는 21세기 과학문명은 이미 오래 전에 우리가 잃어버렸던 도덕의 문제를 새삼스레 일깨우는 “양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불법을 밝히는 영역을 넘어서 부도덕한 자들을 발본색원하는 순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예전에 종교지도자들이, 정치지도자들이, 철학과 교육의 지도자들이 담당했던 그 기능을 그들이 그 기능을 상실하고 부도덕해지자, 신은 과학문명으로 하여금 그 일을 수행하도록 대체시켜 버렸다. 이러한 기계들을 향해 고맙다고 해야 하나, 고통스럽다고 해야 하나 참으로 고민스럽다. 하지만 과학문명이 그 일을 대신 해 줌으로써 망해가는 인간사회를 그나마 지탱해 주는 버팀목 역할을 해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인간에 대한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 과학문명은 부도덕한 자들을 끊임없이 고발하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육십쯤 살아오니, 아브라함 링컨이 했다는 “나이 사십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실감되어 온다. 지금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는 김재철 엠비시 사장, 김인규 케이비에스 사장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관통하는 하나의 이미지가 있다. 부도덕한 사람들은 눈빛을 통해 일정한 느낌을 전달하는 경향이 있다. 법조생활을 하다 보면 사기꾼 같은 사람들을 많이 상담하게 되는데, 그들의 모습이 대동소이하게 닮아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어디 법조인들만 그러겠는가? 세상살이 어느 정도 하다 보면 누구나 사람 보는 눈이 생기게 마련이니 누군들 대강 그 사람이 주는 이미지가 있고, 그것을 자주 접하다 보면 대부분 맞아떨어지는 경우를 경험하게 된다. 오이에서 오이 맛이 나고 당근에서 당근 맛이 나듯, 된장에서 된장 맛이 날 뿐, 똥에서 된장냄새가 나겠는가?


결국 터질 것이 터지고 있다. 엠비시노조를 비롯하여 케이비에스, 와이티엔 등 수많은 방송국 기자와 피디 등 노동조합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며 “분기탱천하여 파업”을 시작하였다. 슬프게도 그 파업의 제목이 “공정방송 쟁취”라니, 이 같이 슬픈 일이 어디에 또 있을까? 정연주 케이비에스사장을 범죄자낙인 찍어 쫓아낼 때부터,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의 측근인 김재철 엠비시사장이나 김인규케이비에스 사장을 낙하산인사할 때부터 오늘이 예견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모든 것은 때가 있게 마련이라, 숨통을 열어놓지 않고 불공정한 편파 보도를 지나치게 강제하다 보니, 방송노조가 이제 좀 살아야겠다며 집단행동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죄가 크다. 엠비시노조가 밝힌 지난 2년 동안의 김재철 엠비시사장의 카드내역은 상식적 입장에서 볼 때 황당하다 못해 후안무치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회삿돈을 쓰는데 있어 공ㆍ사 개념이 없는 것은 불문하고, 한 사람의 인격자로서의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공금부당사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영방송의 법인카드로 왜 그리 여성용 귀금속을 자주 샀는지, 여성용 화장품과 명품을 많이 샀는지, 업무가 종결된 주말에 서울 일류호텔을 그리도 많이 돌아다녀야 했는지, “있지도 않은 충북엠비시 김훈국장”이라는 가명으로 전국 주요호텔을 돌아다녀야 했는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국민들은 엄청난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겠는가? 여성용 귀금속을 누구에게 선물했을까? 화장품과 명품백을 어떤 여성을 위한 업무관리에 사용했을까? 떳떳하게 그 용도를 못 밝히는 것을 보면 개인적 용도로 특정 여성이나 연예인에게 사용한 것은 아닐까 하는 궁금증을 국민들이 갖지 않겠는가? 있지도 않은 충북엠비시라는 이상한 방송국을 하나 만들고, 더더군다나 있지도 않은 김훈국장이라는 이름으로 호텔을 잡기까지 했으니 그 호텔을 과연 떳떳한 용도로 사용했을까? 일본까지 날라 가 여성전용맛사지시설을 이용하고 끊은 법인 카드는 어떤 여성을 맛사지받게 한 것일까? 업무용이라는 변명이 참으로 옹색하다.


이러한 황당함은 나경원 전의원의 기자회견에서도 마찬가지로 느껴진다. 자신의 남편인 김재호 판사가 박은정 수사검사에게 자신의 개인 형사고소사건에 대한 청탁을 하지 않았다는 기자회견은 어처구니없는 수준을 뛰어넘어 한때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로서의 자질을 회의케 만든다. 그녀의 냄새나는 뚜껑을 덮으려고 한 기자회견장에서의 거짓몸짓은 더 크게 사단이 나고 말았다. 회견 직후 김재호 판사가 박은정 검사에게 전화를 한 것이 밝혀지고, 박은정 검사는 수사기록에 메모지를 남겨 후임검사에게 넘겼다는 것까지 밝혀져, 이제 김재호 부장판사는 피의자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될 처지가 되고 말았다. 변호사들이 수사검사나 담당판사에게 사건과 관련하여 의례 사용하는 전형적 문장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기록 좀 잘 봐주세요.”이다. 수사검사나 재판부가 형사사건에 정확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당연히 기록을 잘 볼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건을 청탁할 때 “사건을 잘 해결해 주세요.”라거나, “사건 잘 부탁한다.”라는 직접화법을 쓰지 않고, “기록 좀 잘 봐주세요.”라거나 기록 좀 잘 읽어달라고 말하는 것은, 대놓고 사건청탁을 하기에 낯간지럽고, 법조인의 최소양심으로 “청탁을 부탁한다.”라는 직접화법을 사용하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수사검사나 재판부가 변호사나 다른 검사 또는 판사로부터 “사건기록을 잘 읽어봐 달라.”거나 “사건기록을 잘 검토해 달라.”라고 하는 것은 “가능한 한 선처해 줄 수 있으면 선처해 달라.”라는 “사건청탁”의 전형적인 부탁인 것이다. 변호사들이야 사건해결을 의뢰인으로부터 받은 것이니, 법정에서 변론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의뢰인의 간절한 부탁을 이기지 못하여 수사검사나 재판부를 정식으로 만날 수 있는 법정변론 말고, 소위 “법정외 변론”이 관행처럼 허용되던 시절이 있었다. 최근 들어와서는 법조윤리차원에서 변호사의 판사실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변호사들의 판사실 출입은 공공연히 허용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김재호 부장판사도 “사건을 잘 부탁한다.”고 “청탁”이라는 말을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대로 “기소만 해 주면 나머지는 법원에서 알아서 하겠다.”라고 했다면 이 말은 “청탁”이라는 말보다 더 무서운 “엄청난 왕청탁”이라고 보아야 한다. 담당검사로서는 벌금형으로 처벌될 사항에 대하여는 일단 “기소유예(죄는 인정되지만 가벼운 범죄이므로 한 번은 용서해 줄까?)”라는 불기소처분 여부를 고민하게 된다. 즉 초범이거나 죄질이 크게 나쁘지 않아 징역형 같은 무거운 형벌이 부과되지 않는 사건이라면 전과자를 만드는 것보다 처벌을 한 번 보류해서 건전한 시민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더 좋은 형사정책적 결론일 수도 있기 때문에 기소유예 여부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관할구역인 서부지방법원 부장판사가 서부지방검찰청 한참 후배기수인 평검사에게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내릴 것을 책임질 것이니 기소유예 같은 고민하지 말고 기소해 달라.”라는 취지의 전화를 하였다면 이것이야말로 사법부를 흔드는 “엄청난 청탁사건”인 것이다.


그런데도 나경원 전의원은 남편이 청탁이라는 말을 직접 사용하지 않았다는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 “청탁하지 않았다.”라고 기자회견을 자청했으니 정말 초등학생 국어실력만도 못한 면피성 변명이다. 자기 남편이 직접 “청탁”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청탁한 게 아니다라는 말이 이게 말이 되는 말인가? 그런 발상이니 자신이 이사로 있는 학교를 아버지 학교이지 자신의 학교가 아니라거나, 이번 서울시장선거는 자신의 선거이지 아버지의 선거가 아니라거나, 자기 아버지 학교의 감사면제청탁을 위해 정봉주 의원실을 찾아갔으면서도 학교사정을 객관적으로 알렸을 뿐이라거나, 이명박 대통령의 내가 설립한 회사라는 비비케이 발언에 대해서도 주어를 사용하지 않았다거나, 자위대기념행사에 참가하고서도 자위대행사인 줄 몰랐다거나 등등 황당한 어법을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이다. 자기 말은 다 정답인 것이다. 좀 황당하지 않는가?


이제 거짓말하는 자는 살아남지 못한다. 모든 것이 기록되고, 녹화되고, 녹음된다. 우리 인간의 꼬리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누구라도 밟을 수 있을 만큼 길어졌다. 누군가 밟겠다고 나서면 밟히지 않을 자가 없다. 밟히면 누구나 아프다. 아이폰과 시시티비카메라, 다시 말해 현대과학문명이 모든 인간을 도마뱀으로 만들어버린 세상에서, 오늘 하루 우리는 착하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어쩔 수 없다. 신이 인간에게 직접 심어준 양심이라는 선물을 인간들이 망가뜨리고 스스로 신이 되겠다고 설쳐대니, 신은 인간에게 그럼 어디 한 번 해 봐라 하며 과학지식을 통해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옭아매도록 강요하고 있다. 당신의 꼬리는 어느 정도 긴가? 내 꼬리도 참으로 길다. 이제 우리 모두 꼬리를 좀 짧게 하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누구든지 찾은 후 알려 주면 후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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