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그늘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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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그늘을 보며
  • 방희선
  • 승인 2012.02.24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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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희선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변호사

근래 우연한 계기로 군사재판의 국선변론 지원에 참여하게 되었다. 예전에 개업 변호사로 일하던 시절에도 이런 저런 무료변론지원이나 공익 차원의 변호 등을 해 왔지만 일반사회와 격리된 특수집단인 군내에서 이루어지는 군사재판에 대한 지원활동은 그와는 다른 새로운 분야인 셈이라 작은 도움이나마 될까 하여 참여하게 되었다. 특히나 변호사에서 대학교수로 직업을 바꾼 뒤라 일반적 사건업무는 손을 뗀 상태였지만 바깥세상의 또 다른 세계의 어려운 이들에게 조그만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면 인권과 사회정의를 위한 법조인의 사명이나 노블레스 오블리지(noblesse oblige)에 따른 도리라는 생각이기도 했다.

요즘 일반사회에서는 형편이 어려운 경우 어떤 식으로든 법적 조력을 접할 기회가 많은 편이지만 사회와 차단된 군내에서는 그렇지 못한 형편인데다 특히나 하급 병사들의 경우는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는 특수 환경이라 신경이 쓰인 탓이기도 했다.

이런 소박한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막상 현실을 접하고 보니 놀랄 정도로 열악한 실정임을 알게 되었다. 세계 속의 한국, OECD회원국이며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라는 우리 모두의 인식과는 판이하게 다른 또 다른 처절한 세상이 버젓이 존재함을 목도하게 되었을 때의 그 참담함. 요즘 거론되는 청년실업이나 사회문제 등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극한 수준의 젊은이들이 그 곳에 있었다.

심지어는 성년도 되지 못한 나이어린 소년 같은 병사들이 최악의 조건 속에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모습까지 섞여 있어 세상의 진실이 무엇인지 회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청소부 등 극빈층의 집안에서 지내다 생계를 위해 미성년의 나이에 입대하거나 결손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보육시설을 전전하다가 입대 후 하사관으로 지원하여 생존을 도모했으나 정체성 혼란과 각박한 생활을 견디지 못해 대열에서 이탈하는 아픔과 함께 차가운 감방에 갇힌 채 재기의 몸부림을 치는 불쌍한 어린 모습에서 세상의 어두운 슬픈 그늘을 보게 된다.

이 나이에 이르도록 미처 보지 못한 경제대국 한국의 그늘은 생각보다 크고 깊었다. 문득 30년 전 법조 초년생 시절 극빈가정에서 하루하루 생계를 꾸리기조차 여념이 없던 극빈의 집안 형편 탓에 불과 몇 만원이 없어 학교와 멀어지고 범죄의 나락으로 빠져든 그 시절 10대 소년들의 비참한 현실이 새삼 아련히 떠오르기도 했다.

과연 무엇이 정의이고 진실인지, 누가 그런 거창한 말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기만 하다. 정의로운 세상을 운위하며 정권교체와 복지, 민의를 부르짖는 정치인들은 물론 같은 대의를 내세우며 목청을 높이는 허다한 시민 사회단체들에게 이런 서글픈 세상의 그늘은 보이는 걸까.

거대 담론에 빠진 채 세상을 관념으로만 보는 사람들도 과연 무엇이 참된 인본주의(humanism)이며 정의인지, 생생한 우리 옆 이런 세상의 그늘을 보라고 목청껏 외치고 싶을 따름이다. 헐벗고 굶주린 주변의 하찮은 가련한 이들을 위해 빵 한 조각 물 한 모금이라도 건네 준 게 바로 자신을 돌봐 준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이 새삼 떠오르는 대목이다.

주변의 누구에게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도움의 손길을 베푸는 것이 참된 정의이며 사랑이 아닌지… 이래서 나는 오늘도 기꺼이 철부지 아이 같은 딱한 병사들을 보러 간다. 냉기가 감도는 서늘한 군교도소와 숨죽인 듯 긴장감에 묻힌 무거운 분위기의 군사법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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