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시침떼기와 미래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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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시침떼기와 미래권력
  • 법률저널
  • 승인 2012.02.03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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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학장/변호사/시인

올겨울 들어 가장 춥다. 살을 에이는 추위 앞에서 얼마나 많은 서민들의 가슴이 에일까 싶어 마음이 아파온다. 얇은 비닐포장으로 바람막이를 한 포장마차에서 오뎅을 하나 사먹고, 뜨거운 국물을 마신다. 그냥 어묵 하나 사먹고 나오면 그만일 걸, “장사 잘 되세요?” 하는 인사말에 “못 죽어 살아요.”하는 아주머니의 대답이 겨울 칼바람보다 더 매섭다. “하루에 얼마나 팔아요?” 하니 “이십만 원 정도 팔 때도 있고, 못 팔 때도 있고...” 이어지는 아주머니의 말씀이다. 저렇게 판 이십만 원이 다 남는 것도 아니다. 재료비 빼고 나면 별로 남는 것도 없을 텐데, 하루 종일 추운 칼바람을 맞으며, 노점상 단속에 시달리며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저 아주머니의 노고가 어찌 고달프다고 하지 않을 수 있으랴? 동상 걸리지 않기만을 기도할 밖에. 하지만 꽁꽁 얼어붙은 날씨 탓에 하루 일감이 없어 빈둥거리며 놀 수밖에 없는 공사장의 일용노동자는 저 포장마차 아주머니보다 더 곤고하지 않겠는가? 하루 일당을 버는 것이 “매일 십자가 지는 것만큼이나 곤고한 이들”이 넘쳐나고 있다.


한나라당이 정강정책을 대폭적으로 좌향좌 하였다. 크게 열 개의 정책으로 나눈 것을 보니 참으로 훌륭하고 또 훌륭하고, 그리고 또 훌륭하다. 한 번 열거해 보기로 한다. ① 모든 국민이 더불어 행복한 복지국가, ② 일자리 걱정 없는 나라, ③ 공정한 시장경제, ④ 기회균등의 창조형 미래교육, ⑤ 다양함을 존중하는 소통과 배려의 사회문화, ⑥ 지속가능한 친환경사회, ⑦ 한반도 평화와 국익중심의 국방외교, ⑧ 통일한반도시대의 주도, ⑨ 국민과 소통하는 신뢰의 정치 구현, ⑩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신뢰정부 이다. 그리고 그 위에 “국민과의 약속”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다시 한 번 읽어보자, 너무 훌륭하고 좋지 않은가?


그런데 왜 이 훌륭한 정강정책을 보면서도 가슴 속 깊이 감동이 느껴져 오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저 현란한 수사적 언어의 유희 앞에서 전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일은 사람이 한다. 그런데 60 가까이 살아온 내 경험에 의하면 사람의 본성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내가 강단에서 제자들에게 강조하는 말이 있다. “성공은 현재여야 한다.”는 대명제이다. 많은 사람들은 “성공은 10년이나 20년 뒤쯤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10년 뒤, 20년 뒤에 성공하겠다며 오늘을 허비하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나는 제자들에게 “성공은 현재”여야 함을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최선을 다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나는 매일 새벽 네 시 반에서 다섯 시 사이에 일어나 책을 본다고 말한다. 오늘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오늘의 성공이고, 오늘의 성공이 모여 내일의 성공이 되는 것일 뿐, 10년 뒤 20년 뒤 성공이 하루아침에 뚝딱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명심할 것을, 그래서 오늘 성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라고 잔소리를 끊임없이 해댄다. 제자들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하지 않고, 기회 있을 때마다 제자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을 해댄다.


일은 사람이 한다. 그렇다면 정강정책을 뜯어고치고, 현란한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사람을 현혹시키기보다는 사람이 변했다는 것을 당장 보여주는 것이 더 큰 감동이다. 현재의 진실을 보여주지 않고, 미래의 달콤한 사탕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말 그대로 사탕발림의 사기꾼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정강정책을 바꾸었으면, 당장 이명박 정부에 대하여 저 정강정책을 시행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한나라당, 지금 여당이지 않는가? 그러니 “이명박 정권을 화성에서 온 정권쯤으로 매도하며 딴나라당인 것처럼 등을 돌릴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 한나라당이 집권하면서 이러저러한 잘못을 저질렀으니 반성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합시다.”라고 바뀐 정책대로 집행해 나가면 된다. 아직은 칼자루를 쥐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한마디로 말해서 지금 한나라당은 “시치미떼기당”이 되어 있다. 내숭의 극치인 것이다. 박근혜 한나라당비상대책위원장이 정치인으로서의 가장 큰 결점은 무엇일까? “왜?”에 대한 설명을 생략하는 언어적 습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왜?”가 생략되는 이유는 크게 보면 두 가지이다. 하나는 구태여 다 아는 것을 중언부언 설명할 필요성이 없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왜에 대한 성찰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어느 유형에 속할 것인가 여부인데, 그 동안의 행태를 보면 두 가지 모두 해당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법률용어에 “취소”와 “철회”가 있다. 취소는 행위 당시에 하자가 있을 때 그 하자를 인정하여 소급하여 무효화시키는 행위이고, 철회는 행위 당시에 하자가 없는데 사후에 사정변경이 있을 때 장래에 향하여 무효화시키는 행위이다. 양자의 차이는 그 효력을 행위 시로 소급하여 소멸시키느냐, 아니면 장래에 향해서만 소멸시키느냐는 점이라 할 것인데, 이를 정치행위에 빗대어 보면 과거의 정치행위가 잘못된 경우 이를 반성하고 사과하면서 새로운 정치행위로 나아가면 취소에 해당할 것이고, 과거의 정치행위에 잘못된 것이 없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꿀 필요성이 있을 경우 정책을 바꾸어 새로운 정치행위로 나아가는 것이 철회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지금 한나라당의 정강정책을 180도 바꾼 것이 그렇다면 취소와 철회 중 어느 것에 해당되느냐 여부인데, 아무리 보아도 국민은 “과거의 잘못을 후회하고 반성한 뒤 수정”하는 취소에 해당되는 행위로 인식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에 대한 사과”가 전제되어야 할 것인데, 이에 대하여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매번 기도를 드리는 것은, 윤동주 시인이 읊었던 것처럼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간구하는 절대선에 대한 원초적 본능 때문이다. 그리고 사탕발림의 한 마디 말, 언어적 유희만으로 잘못된 과거가 씻어지는 것도 결코 아닌 게 인간세상사이다. 그러기에 닦고 닦고 또 닦아야 하는 것이 수도의 길이고, 매일정진의 삶이어야 한다. 그런데 180도 정책전환이 있게 되었으면 그 이전에 행했던 정강정책에 대한 반성 내지 사과가 선행되는 것이 당연한 듯한데, 전혀 그런 전제행위 없이 그냥 결과만 싹 바꾸어 놓고, 언제 이전에 그런 잘못된 정책을 추진했었느냐는 듯이 먼 산 한 번 바라보고 시치미떼고 있는 모습이 마치 모이 한 점 주워먹고 물 한 모금 마시는 병아리처럼 느껴지니 감동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주 재미있는 것은 저 10대 강령 하나하나를 뜯어보니 모두가 필자가 본보를 통해 끊임없이 주장해 왔던 일관된 논지들이라는 점이다. 한나라당의 정강정책 수정을 보면서 나는 내가 엄청난 혜안(?)을 가진 선각자(?)로서 엄청난 국가적 가치(?)를 주장해 온 데 대하여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는 엄청난 결론(?)에 이른다. 지난 8년간 본보 “오시영의 세상의 창”을 통해 주장해 왔던 것들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모두 집약되어 있는 현상을 보면서, 마치 컨닝 당한 느낌까지 들기도 한다. 그런데도 별로 기쁘지 않는 것은 과연 한나라당 구성원들에게 얼마만한 실천의지가 있을까 하는 의문점이 여전히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며칠 전 이명박 대통령이 “근로시간을 줄여 추가고용을 창출”해야 하는 정책을 발표한 것이라거나 한나라당이 “사병들의 월급을 40만 원”으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하는 것을 보면, 바로, 바로, 바로 내가 불과 두어달 달 전 본보에서 주장했던 것들이었음에 또 놀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내 글을 한나라당 정책위원장이 읽고 감동을 받았나(이 소리는 내가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는 소리이다).


재벌가의 아들딸은 부모가 운영하는 대기업의 자금과 조직, 유통망을 이용하여(거의 악용수준이다) 손도 안 데고 코를 풀고 있는데, 저 포장마차 아주머니는 이 추운 날씨에 뼈 빠지게 고생하여 하루 일당 몇 만원을 벌면서 미래를 꿈꾸고 있는 현실, 이게 대한민국 현주소이다. 그러면서도 금년에 14조원이나 들여가며 외국으로부터 사람 죽이는 무기를 수입해 오는 “대외무기구입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왜 정치가들은 “자주국방”이라는 미명하에 사람 죽이는 무기를 만들고 사는데 엄청난 돈을 들여가며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일까? 아마 모르긴 해도 그 과정에서 아주, 아주, 그것도 아주 적은 떡고물(?)이 떨어질 때 그 떡고물을 받아먹기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 무기 살 돈으로 저 정강정책 ⑦번과 ⑧번의 실천을 통해 국방비를 줄이고, 저 정강정책 ②번과 ⑩번을 실천하는 비용으로 전환한다면, 저 정강정책 ①번과 ⑩번을 하루라도 빨리 실현시킬 수 있지 않겠는가? 바로 바로 저 정강정책, 저 정강정책을......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이 2012년 최대의 국정과제로 삼고 있는 3%대 물가안정을 위해서 과감하게 “환율정책을 전환”시켜 “저환율정책”을 추진한다면 서민들의 호주머니는 순식간에 넉넉해져 버릴 것이고, 물가 잡히는 것은 식은 죽 먹기만큼 쉬워져 버릴 것이다. 혹자는 그렇게 하면 수출길이 막힐 것이라고 하는데,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가 276억불 정도였는데,  환율 때문에 수출이 줄게 되면 그에 비례해서 원자재를 비롯한 사치품 등 수입도 줄어들기 때문에 국가 경상수지 276억불에서 줄어드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고, 저환율정책을 시행하게 되면 그 동안 고환율정책의 특혜를 받아 환차익이 쌓이고 쌓여 유동성(현금) 320조원을 확보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돈을 풀게 될 것이기 때문에 서민경제가 좀 나아질 것이고, 거기에 부자증세정책까지 첨가한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가장 미운 사람은 배불리 먹은 입을 쓱 닦으면서 돈이 없어 밥 굶는 이 앞에서 “자네도 밥 먹게!”하는 부자 아니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지금 당장 이러이러한 방향으로 정부정책을 궤도수정하라고 한 마디 하지 않으면서, 못하면서, 시치미떼면서 “미래권력”을 꿈꾸는 것은 좀 허망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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