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현 교수의 형사교실] 피고인이 미리 작성한 수첩과 자백의 보강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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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현 교수의 형사교실] 피고인이 미리 작성한 수첩과 자백의 보강증거
  • 법률저널
  • 승인 2011.12.02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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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1996.10.17.선고 94도2865 전원합의체판결

이창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 사건 개요

가. 피고인은 공무원에게 1989.12.29.부터 1990.8.8.까지 사이에 부정한 청탁과 함께 8회에 걸쳐 합계 금3,050,000원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기소되었다.

나. 제1심은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 중 위 8회의 뇌물공여사실 중에서 6회분 금330,000원의 뇌물공여부분만 유죄로 인정하고, 피고인의 나머지 7회의 뇌물공여사실에 대해서는 이에 관한 증거로 검사 작성의 피고인에 대한 진술조서 및 검사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의 각 기재와 피고인이 작성한 수첩의 기재 등 피고인의 자백만 있을 뿐이고, 달리 이를 보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고, 원심도 이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다. 이에 대해 피고인은 검사 작성의 피고인 진술조서에 기재된 진술은 임의성이 없다는 이유로, 검사는 뇌물공여사실을 기재한 수첩은 자백이라고 할 수 없는 독립된 증거이고 따라서 뇌물공여사실에 대한 자백에는 보강증거가 있으므로 나머지 뇌물공여사실 부분에 대해서도 유죄를 인정하여야 한다는 이유로 대법원에 각 상고를 하였다.  대법원은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하는 한편으로 검사의 상고는 이유가 있다고 인정하여 파기환송하였다.

2. 쟁 점

피고인이 범죄혐의를 받기 전에 자신의 사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을 지출하고 그 지출한 자금내역을 그때그때 계속적, 기계적으로 기입한 수첩이 독립된 증거이고, 자백에 대한 보강증거가 될 수 있는 지가 문제된다.

3. 판결이유 정리 (다수의견 : 대법관 10인 의견)

가. 자기의 범죄사실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인정하는 내용의 진술인 이상 그 진술이 어떠한 법적 지위에서 행하여졌는지와는 관계없이 자기의 범죄사실을 시인하는 경우에는 이를 자백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제1심이 들고 있는 검사 작성의 피고인에 대한 각 진술조서 및 피의자신문조서의 각 기재가 피고인의 검찰에서의 자백에 해당함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할 것이다.

나. 그러나 상업장부나 항해일지, 진료일지 또는 이와 유사한 금전출납부 등과 같이 범죄사실의 인정 여부와는 관계없이 자기에게 맡겨진 사무를 처리한 사무내역을 그때그때 계속적, 기계적으로 기재한 문서 등의 경우는 사무처리 내역을 증명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문서로서 그 존재 자체 및 기재가 그러한 내용의 사무가 처리되었음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별개의 독립된 증거자료라고 할 것이고, 설사 그 문서가 우연히 피고인이 작성하였고, 그 문서의 내용 중 피고인의 범죄사실의 존재를 추론해 낼 수 있는, 즉 공소사실에 일부 부합되는 사실의 기재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일컬어 피고인이 범죄사실을 자백하는 문서라고 볼 수는 없다 할 것이다.

다.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 나머지 공소사실에 관한 증거로서는 피고인의 검찰에서의 자백 외에도 피고인이 작성한 수첩의 현존 및 기재가 있음을 알 수 있는바, 위 수첩은 피고인이 이 사건 나머지 공소사실에 관하여 그 범죄혐의를 받기 전에 이와는 관계없이 1989년경부터 공소외 김홍대로부터 동인이 추진하고 있던 어로확보를 위한 준설공사에 필요한 각종 인·허가 등의 업무를 위임받아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 업무수행에 필요한 자금을 지출하면서 스스로 그 지출한 자금내역을 자료로 남겨두기 위하여 이 사건 뇌물자금과 기타 자금을 구별하지 아니하고, 그 지출 일시, 금액, 상대방 등 내역을 그때그때 계속적, 기계적으로 기입한 것으로 보이고, 그 기재 내용은 피고인이 자신의 범죄사실을 시인하는 자백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증거능력이 있는 한 피고인의 금전출납을 증명할 수 있는 별개의 증거라고 할 것인즉 피고인의 검찰에서의 자백에 대한 보강증거가 될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이 이와 달리 위 수첩의 기재를 피고인의 자백으로 보고, 이 사건 나머지 공소사실에 관하여 피고인의 자백 이외에 이를 보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제1심의 조치가 적법하다고 하면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였으니 이는 자백의 보강증거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채증법칙을 위반한 잘못을 저지른 것이고, 나아가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쳤음이 명백하다.

4. 반대의견 정리 (소수의견 : 대법관 2인 의견)

가. 다수의견은 피고인이 작성한 수첩의 기재가 피고인의 자백이 아니라고 보면서 이 수첩의 기재 내용이 피고인의 검찰에서의 자백에 대한 보강증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으나, 이에는 찬성할 수 없다.

자백은 범죄사실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인정하는 진술을 말하는 것이고 그러한 진술이라면 피고인의 지위에서 행한 것이건, 기소 전의 피의자의 지위에서 행한 것이건, 또 범행 혐의를 받기 전에 행한 것이건, 범행 발각 후에 행한 것이건 모두 자백임에는 다름이 없다. 그리고 그러한 진술은 구술의 형식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고 서면에 기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또, 그 진술이 어디에서 누구에 대하여 행하여졌는지도 자백인지 아닌지의 문제와는 관계없는 것이고, 상대방이 없이 행하여진 경우에도 자백인 점에는 마찬가지라 할 것이다.

따라서 피고인이 범죄의 혐의를 받기 전에, 그와는 관계없이 타인에게 보이는 것을 예상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범죄사실을 기재하여 둔 것이라 하더라도, 그 기재 내용을 증거로 하는 경우에는 이 또한 자백이라고 할 것이다.

나. 다수의견에 따르면, 수첩의 기재 내용은 자백과는 별개의 독립된 증거라는 것이므로, 다른 증거가 없더라도 피고인이 스스로 작성한 수첩의 기재만으로도 유죄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 되나, 이러한 수첩의 기재는 피고인이 경험한 사물에 대한 인식을 외부에 글로 표현한 내용이 증거방법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이를 자백으로 봄이 합당하고, 이를 피고인의 자백과는 성질이 다른 독립된 증거라고 볼 수 없고, 따라서 물증 등 다른 증거에 비하면 거짓이나 조작이 개재될 여지가 많은 피고인의 자백만으로 유죄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려는 형사소송법 제310조의 입법취지에 비추어 이러한 수첩의 기재 내용만으로는 유죄의 판단을 할 수 없음은 물론 이는 자백에 대한 보강증거도 될 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피고인이 작성한 수첩의 기재 내용이 형사소송법 제315조에 의하여 증거능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과 자백만으로는 유죄판결을 할 수 없다는 형사소송법의 원칙과는 서로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다 .

다. 다수의견은 피고인이 작성한 수첩의 존재 자체가 보강증거가 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수첩 그 자체는 피고인의 자백에 대한 보강증거가 될 수 없고 그 기재 내용만이 증거(자백)로 될 수 있을 뿐이라는 점을 덧붙여 둔다.

그러므로, 이 사건 수첩의 기재 내용이 피고인의 검찰에서의 자백을 보강할 수 없다고 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검사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자백의 보강증거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 할 수 없다.
 
5. 검 토

전원합의체 판결의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의 대립과 같이 학설상으로도 대립이 있다. 즉, 피고인이 범죄혐의를 받기 전에 자신의 사무처리내역이나 거래내용을 그때그때 계속적, 기계적으로 상업장부, 수첩, 일기장 등에 기입한 경우에 그 기재내용을 피고인의 자백에 대한 보강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 지에 대해 긍정설은 피고인이 범행사실을 기재한 서면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업무상 통상의 문서로 작성되는 경우에는 업무의 계속성, 반복성에 비추어 볼 때 누구든지 그 상황에서 정확한 내용을 기재할 것으로 예상하므로 자백 이외의 독립증거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이고, 부정설은 상업장부나 수첩 등의 기재내용이 범죄사실을 인정하는 피고인의 진술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결국 피고인의 자백과 실질적으로 차이가 없으므로 보강증거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자백의 보강법칙에 대한 근거가 자백의 진실성을 담보하여 오판의 위험성을 배제하고 자백 편중으로 인한 인권침해를 방지하는 것에 있으나 위와 같이 업무상 작성한 수첩은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의 자백보다 진실성이 더욱 담보되며 자백강요와도 전혀 관련이 없다고 할 것이고, 단순한 자백과는 성질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 것이 분명하고, 피고인의 자백과 함께 유죄의 심증에도 불구하고 보강증거가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은 실체적 진실주의에 반한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위와 같은 수첩 등이 독립된 증거이고, 자백에 대한 보강증거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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