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회 사시 합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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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회 사시 합격기]
  • 법률저널 편집부
  • 승인 2003.02.05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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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숙 경북대 국문과 卒


"선생님, 사법고시 합격할라카믄 하루에 몇시간 자야 되는데에~~?"

소년분류심사원에 수용된 한 아이가 손을 들어서 저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주일마다 대구소년분류심사원을 방문하여 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를 합니다. 그날 처음으로 참석을 하였는데 그 곳에 계신 목사님께서 간증을 부탁하셔서 아무 준비없이 그 아이들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50여명의 아이들이 똑같은 추리닝을 입고 저를 노려보는 것 같아서 처음에는 사실 겁이 많이 났습니다. 1차때 공부한 형사정책을 떠 올려보니 거기 아이들은 모두 나이만 어리지 어쨌든 범죄자라는 생각에 몸이 움츠러들었습니다.
 
먼저 기도를 하고 다시 고개를 들고 아이들을 바라보니 좀전의 두려운 마음은 사라지고 초롱초롱한 그 눈망울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편해졌고 저는 담담히 저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습니다. 열심히 제 얘기를 듣고 있는 그 아이들의 천진한 얼굴을 보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고 그 아이들을 범죄자로 보면서 두려워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지방대...비법대생...여자...
 
사법시험 합격하기에 그리 좋은 조건이 아니기에, 많은 분들이 그러시더군요. 머리가 굉장히 좋은가 보다고...사실 사법시험 준비하시는 분들 중에 그렇게 머리 나쁘신 분들은 없을겁니다. 아니, 모두들 수재 내지 천재라는 소리를 한번씩은 들으셨을 테지요. 그런 분들 속에서 제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꽤 괜찮은 성적으로 합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둘째는 고등학교때 있었던 한 사건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입학당시 전 그다지 공부 잘 하는 학생이 아니었습니다. '공부는 별로지만 성격이 아주 좋은' 그런 학생이었죠. 고등학교 1학년 5월 영어수업시간이었습니다. 제 짝이 뭘 묻길래, 웃으면서 대답하는데 그때 영어선생님께서 보셔서 딱 걸렸습니다. 뭘 질문했는데, 몰라서 가만히 서있었더니 짝에게 물어보셨고 제 짝은 대답을 잘 했습니다. 고등학교 들어오기 전에 미리 예습이란걸 했다지요. 결국 전 꿀밤을 두 대 맞고 제 짝은 한 대를 맞았습니다.
 
어린 맘에 억울했습니다. 짝이 먼저 말을 걸어서 대답을 해준 거 뿐인데, 왜 내가 두 대를 맞아야 하나... 그때부터 선생님을 째려보기 시작했습니다. 10분 정도를 째려 봤을까...갑자기 책이 날아오더니 앞으로 나오게 해서는 그때부터 맞기 시작했습니다. 꿇어 앉혀서는 발로 머리를 차고 밟고...그렇게 수업 마칠 때까지 30분동안 맞았습니다. 너무 부끄럽고 치욕스러워서 죽고 싶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부모님께 너무 부끄럽고 죄송스러워 말씀도 못 드렸습니다. 머리가 너무 아파 감지도 못하고 빗질도 못했습니다. 서러웠습니다. 그날  밤새 한숨도 못자고 울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아...공부를 못하니까 인간취급도 못받는구나. 좋다. 내가 공부 잘해서 너의(영어선생님) 코를 납짝하게 만들어 주겠다. 두고봐라.'
 
제 평생에 아마 다시는 그렇게 열심히 못할 겁니다. 잠도 자지않고 정말 미친 듯이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성적이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탄력이 붙으니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그 영어 선생님은 제가 고3때, 1학년 학생을 패다가 상해를 입혀 학교에서 짤렸습니다. 그 선생님은 제게 상처를 주셨지만 결과론적으로는 '자신감'이라는 돈을 주고도 살수 없는 귀한 것을 얻게 해주신 은인이기도 합니다. 수능도 무난히 쳐서 경북대 국문과에 수석으로 입학하였습니다. 원서를 쓸 때 법학과를 권유하는 분도 있었지만 고등학교때 너무 힘들게 공부했던 터라 대학에서는 절대로 공부를 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책이나 읽으면서 지내겠노라고 말도 안되는 다짐을 두 주먹 불끈 쥐고 아주 굳세게 했습니다.  

3학년이 되면서 부전공으로 법학을 선택하였습니다. 1,2학년 시절을 보내며 많이 놀기도 하였고, 국문과는 저의 생각과 달리 책만 읽는 과도 아니고 어차피 공부를 해야하기 때문에 실용학문을 무척 배워보고 싶었습니다. 처음에 법학을 접할때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어려운 한자도 많았고 특히 분량이 너무 많아서 시험이 다가오면 한두달 전부터 법학과목만 공부를 해야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전공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는데 이때 기본서를 열심히 읽으며 외웠던게 졸업 후에 고시공부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법대 후배를 알게되어 자료도 받고 페이퍼를 만들어 돌려보는 기술(?)이 생겨 좀 수월해졌지만... 
 
4학년 1학기 중간고사 후에 형법교수님께서 수업 후에 부르시더니, 성적이 가장 좋다면서 고시공부 해 볼 것을 권하셨습니다. 졸업반이 되면서, 국어 교사자격증을 가지게 된 저로서는 임용시험을 쳐서 선생님을 할까, 끝도 보이지 않는 고시공부를 할까 많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자의 입술이 되고싶다고 기도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빨리 선생님 되어서 편안하게 살고 싶은 맘이 많이 든다고, 광야같은 고시공부가 많이 두렵다고, 목사님께 투정을 부리니 목사님은 광야의 삶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며 절대 그 길을 포기하지말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기도원에 가서 기도를 하는데, 그때 방언을 받았고 방언을 통역해주시던 권사님이 '하나님이 너의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고 졸업후 본격적으로 고시공부를 하게되었습니다.   


졸업후 학교 고시반인 홍인제에 입실하여 좋은 선배님들을 만나 2000년에 군법무관 1차시험에 합격하였고 다음해인 2001년에 사시 1차 그리고 2002년 44회 사법시험에서 최종합격을 하였습니다. 특별한 공부비법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법학이 무척 재미있었고 고등학교때 몸에 익힌 공부습관 덕택에 수험기간동안 성실히 공부한게 비결이랄까요.
 
한가지 독특한 게 있다면 저는 1차 공부를 할 때 1년 내내 민법을 보았습니다. 즉 공부가 가장 잘되는 오전에 4시간동안 매일 민법공부를 하였습니다. 헌법이나 형법과 달리 그 양이 너무 방대하여 체계를 잡기도 어려워 1년동안 차분히 공부한다고 마음먹고 아주 꼼꼼히 정독을 하면서 읽었고 연결된 부분이 나오면 다시 그 부분으로 돌아가 읽고 하는 식으로 공부하였습니다. 하루종일 한 과목만을 보는 것은 너무 지겹고 집중력이 떨어지는데 이렇게 공부를 하니 하루종일 송곳같이 날카로운 집중력을 발휘하여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2차 공부를 할 때는 헌법만 제외하고는 모두 교수님 책을 기본서로 하였습니다. 교수님책은 처음 보기가 힘들지(특히, 상법이나 행정법) 한번 정리해서 내것으로 만들어 놓으니 그건 시험장에서 굉장한 무기가 되었고 심리적으로도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따지고보면 2차 공부기간이 2001년 사시1차를 준비한 3개월을 제외하면 18개월 정도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수도 있겠지요. 어떤 책이든 자기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책을 꾸준히 성실히 보면 될거같습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처음에 수기를 부탁 받았을 때는 수험과정과 공부방법을 자세히 쓸까 하다가 기존의 수기들 대부분이 그에 관한 것이고 아주 모범적인 내용들도 많아서 그냥 마음편히 읽으실수 있는 이야기들을 적어보았습니다. 
 
끝으로 젊은 날에 광야의 삶을 경험하게 하여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다 큰 딸을 항상 묵묵히 믿어주시고 뒷바라지 해 주신 부모님,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많은 분들 감사합니다.연수원 33기이신 승룡, 인호선배님 많이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하고 함께 공부했던 우철, 재현, 성렬, 중훈선배님, 한흠이 올해는 꼭 좋은 결과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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