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형사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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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형사법원
  • 오사라
  • 승인 2011.08.2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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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a Oh 미국 Maryland 지방법원 Commissioner(Magistrate)

지금 나는 법원에서 업무 하다 말고 잠시 쉬면서 이 칼럼을 쓰고 있다. 마침 금요일 오후라서 형사재판소 일정이 거의 마무리 되어가는 시간이다. 화씨 90도가 넘는 후덥지근한 날씨인데 창 밖에는 법원에 출두하는 변호사, 경찰관, 증인들의 발걸음이 오락가락 분주하다. 빨리 마지막 업무를 끝내고 집에 가고 싶은 사람들의 급한 마음들이 느껴진다. 옆방 심사실에선 동료 법관이 나처럼 열심히 뭔가 글을 컴퓨터에 쓰신다. 50대 중반의 흑인 변호사로서 왕년에는 수도 워싱턴에서 형사소송 변론실력으로 명성을 날리던 인물인데 5년 전 로펌생활을 접고 우리 관할에 코미셔너 법관으로 임명되어 들어오셨다. 해박한 법률 지식과 따뜻한 마음씨로 크게 인정을 받는 동료다. 아마 지금 무슨 논문이라도 준비하시는 모양이다.

“마약사건 두 개 들어옵니다!” 법정 교도관이 내 심사실에 나타나서 서류파일 두 개를 건네주고 갔다. 읽어보니 둘 다 대마초 소지죄로 연행된 피고인들이다. 한 사람은 20세 청년인데 경찰이 길에서 가까이 곁을 지나가자 후닥닥 뛰어 달아났다. 놀란 경찰이 따라가서 “왜 그리 도망을 가십니까?” 질문했더니, “대마초가 호주머니에 있어서요.” 하고 정직하게도 대답했다. 아니나 다를까,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소량의 마리화나가 발견되었다. 다른 한 사람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성이다. 남친과 함께 길에 서 있었는데 갑자기 남친이 “저기 경찰 오니까 이거 네가 잠깐만 들고 있어” 해서 그녀가 엉겁결에 손에 들고 있던 가방에서 대마초가 불쑥 나온 케이스다. 남친은 그 자리에서 달아나 버려서 체포하지 못했다고 검찰은 진술했다. 여성은 내 앞에 앉아서 끝없이 혼잣말을 되뇌었다. “나쁜 남자! 나한테 떠맡기고 혼자 도망을 가다니...” 어쨌든 다행히 오늘은 그나마 경범사건이 대부분이라 분위기가 그래도 느긋한 편이다. 살인, 강도, 강간, 중죄목이 들어오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험악한 내용의 증거진술 그 자체가 스트레스 레벨을 바짝 올리기 때문이다.

저녁시간이 가까워 오니 배가 출출해진다. 빠른 걸음으로 나가는 여성 클러크들의 예쁜 하이힐 소리가 법원 복도 대리석 바닥에 낭랑히 울린다. “오늘도 수고 많이 하셨어요!” 위층에서 교통법규위반사무를 담당하는 클러크 아주머니께서 환하게 웃으시며 들어와서 초콜렛 5개를 꺼내주신다. “하하 우리 법관님이 무슨 초콜렛을 좋아하는지 내가 잘 알지... 오늘은 몇 시에 퇴근해요? 워싱턴 수도권지역에 호우주의보 내렸다는데 조심해서 들어가요. Drive home safely!”

그 말을 듣고 나도 집에 가려고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는데 문을 밀치며 군청색 특수무장 차림의 살인범죄수사반 형사가 우당탕 들이닥친다. “구속영장 하나 빨리 발부해 주셔요, 청부살인입니다!” 뒤를 돌아보니 6피트 큰 키에 다부진 모습의 형사인데 막상 얼굴은 금발 곱슬머리에 새파란 눈동자가 어린아이처럼 순수하다. 이 사람은 어쩌다가 살인사건수사를 전담하게 되었을까 그 인생스토리가 궁금해진다. 얼른 신청서를 받아 서둘러 영장을 발부해 주었더니 꾸벅 인사를 하고 또다시 밖으로 급하게 뛰어 나갔다. 형사의 긴장된 행동을 보아서는 아마 이 사건에 연루된 피고인을 곧 당장 체포할 것이 아닌가 싶다. 오늘밤 이곳 수도권 저녁 뉴스에 내 영장내용이 또 한바탕 보도될 것이 예상된다, 크으~

늦게 일 마무리를 마치고 문을 잠그고 나서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어두운 밤이다. 번개와 천둥도 요란하다. 비에 흠뻑 젖은 법원건물을 뒤로 하고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어느새 벌써 오늘 하루 일정이 끝났다는 걸 생각하니 어쩐지 좀 서운했다. 마음속에 왠지 싸아~ 애잔한 느낌이 와서 나는 다시금 내 정든 법원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 시속 110km를 달리며 나는 깊이 깨달았다. 나는 내 업무를 참 좋아한다. 같이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항상 고맙다. 피고인, 서기, 검찰, 판사, 직책과 이유를 막론하고 내가 이곳에서 마주치고 대화를 하게 된 분들은 모두 나에게 보물처럼 값진 인생의 레슨을 가르쳐 주셨다. 형사사건을 다루며 매일 각종 사람들의 눈물과 웃음과 기도를 보면서, 이 세상에서 인간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뼈저리게 느끼며 하루하루 겸손과 감동, 따뜻한 인류애를 배웠다. 이제 내가 이곳 주 관할 미국 지방법원에서 일한지도 거의 통합 7년이 되어간다. 나는 내 삶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을 진심으로 감사한다. I love my Co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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