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법관 교육관의 하루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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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법관 교육관의 하루 일상
  • 오사라
  • 승인 2011.07.29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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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a Oh 미국 Maryland 지방법원 Commissioner(Magistrate)

어제 업무 도중에 갑자기 “Congratulations!” 행정부에서 연락이 왔다. 감사하게도 나를 법관 교육관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었다. 야호! 언제나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갑작스러운 이 뉴스에 기분이 많이 좋았다. 옆에 있는 동료들도 나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교육관 직책 맡은 사람치고서 훗날 크게 승진 안 하는 사람 본 적이 없는 법인데, 정말 축하하네.” “하하 이제부턴 어디를 가든지 엄마 오리처럼 신참법관 제자들을 뒤에 이끌고 다니겠구만.” “근데 그거 말을 너무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목이 아파서 그리 쉬운 일은 아니야. 꼭 호주머니에 사탕을 준비하고 다니도록 하게.”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생각해 보니 내가 처음에 법원에 들어왔을 적에 교육받던 기억이 났다. 미국 법원의 교육관은 일종의 보직이다. 법관의 역할을 일상적으로 수행하기는 하지만, 새로 들어온 법관들을 옆에 앉혀놓거나 데리고 다니며 실무교육을 업무와 병행하는 것이다. 병원에서 외과의사가 인턴들을 데리고 수술에 임하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다. 신참법관들은 노트북을 손에 들고 담당 교육관을 하루 종일 줄줄이 뒤따라 다니며 필기노트도 하고 질문도 한다. 교육관과 식사를 같이 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화장실까지 우르르 따라 다니는 웃지 못 할 광경도 종종 보인다. 그래서 교육관은 일거일동을 조심해서 행동해야 한다. 모든 말과 행동을 공부하듯 주의 깊게 쳐다보는 반짝반짝 하는 젊은 눈들이 있기에 말이다.


또한 교육관은 미리 공부 시킬 사례와 샘플, 문제집을 로스쿨의 교수처럼 치밀하게 준비해 놓아야 한다. 내가 신참이었을 당시 나를 맡은 담당 교육관은 법적으로 가장 복잡하고 해결이 불가능한 머리 아픈 문제만 선별해서 하루에 35 문항씩 테스트를 하곤 했다. 법원 도서실에 앉아 종일 씨름해도 다 끝내기가 어려운 판례들이었기에 나는 자주 불평을 늘어놓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형법 조항들을 암기, 복습하기 싫어하는 나에게는 썩 잘 어울리는 좋은 Drill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과연 어떤 스타일의 교육관이 될 것인가 계획해 본다. 바로 며칠 전에 내가 맡고서 마음이 불편했던 사례를 여기에 하나 간단하게 들어보기로 한다. 법률은 전혀 어렵지 않았는데 감정적으로 어려웠던 케이스 중에 하나다.


숨이 쉬기가 어렵도록 무더운 날씨로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여름날, 어떤 28세 젊은이가 교통법규위반으로 연행되어 내 앞에 구속적부심을 받으러 수갑을 차고 간수들에게 이끌려 법원에 들어왔다. 초범에다 경범죄를 감안하여 나는 별 생각 없이 빨리 결정을 내려주고 웃으면서 말했다. “오늘 이 사건은 불구속 입니다. 그럼 좋은 날 되십시오.”


막 내가 서류에 서명을 하려는데 청년이 눈을 깜박이더니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근데요 법관님, 제가 집이 없거든요… 밖에서 잠을 자는 거지입니다. 오늘 날씨가 너무 뜨거워서 밖에서 자면 아무래도 죽을 것 같은데요.”


나는 일하던 손을 멈추고 피고인을 다시금 쳐다보았다. 차림은 허름했지만 사실 잘생긴 히스패닉 남미계 청년이었다. 커다란 검은 눈동자, 갈색 피부에 날씬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방청하던 다른 피고인들도 그의 말을 듣고서는 갑자기 모두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구속적부심에는 원래 모두가 자유인이 되겠다고 울면서, 또는 논리적으로 변호를 하기 마련인데 이 사람은 도대체 여기서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냥 오늘 하루만이라도 구치소에서 지내게 해 주셔요, 저는 친구도 없고 갈 곳도 없습니다. 오늘 저녁 밥 한 끼 편하게 먹고 싶어요.”


정말 한심하고 불쌍한 느낌이 들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나이와 건강을 가지고서 어쩌다가 거지의 처지가 되었을까. 법적으로는 불구속이 당연하지만 현실적으로 밖의 날씨를 감안할 때 이 사람을 내어놓는 것이 인간적인 차원에서 망설여졌다. 구치소에 가면 거의 춥다고 느껴지도록 시원한 에어컨 시설, 안전한 음식, 따뜻한 샤워가 모두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가.


이 문제를 과연 어떻게 해결하시겠습니까? 해답은 독자들, 우리 미래의 신참 법관들에게 맡기기로 한다.   

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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