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량 끝에 선 학부 법학교육
상태바
벼량 끝에 선 학부 법학교육
  • 성낙인
  • 승인 2011.06.03 11: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낙인 서울대 헌법학교수.한국법학교수회장

로스쿨 제도의 도입에 따라 법학교육의 지형이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로스쿨의 법학교육 못지않게 학부법학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해 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 로스쿨은 법조인 양성과정이라고 치더라도 로스쿨 법학교육과 학부 법학교육이 병존하는 상황에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부 법학교육을 방기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사실 로스쿨 출현 이전에 100개에 가까운 전국의 법과대학 또는 법학과는 우수한 인재의 집결장이었다. 건국 이래 지난 60년간 고시 사법과 또는 사법시험이라는 좁은 관문을 통과해서 법조인의 길을 간 인재는 작게는 일 년에 몇 십명에서부터 근년의 1천명까지로 한정되어 있었다. 나머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법학도는 비록 법조인의 길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시절에 법학도의 길을 들어서서 정의·공동선·공익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천착하면서 청춘을 보내왔다. 바로 그 법학도들이 비록 법조계라는 좁은 영역에 한정되지 않고 더 넓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법학도로서 쌓아 온 법적 정의를 이 땅에 구현하려 애쓴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국민소득 100불이 채 안되던 1950년대를 거쳐서 작금의 국민소득 2만불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나마 이 정도 투명사회를 구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들 법학도이 학부 시절에 터득한 리걸 마인드(legal mind)에 기초한 논리적 사고와 행동의 기여를 부인해서는 안 된다.


법적 소양을 가진 인재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한 해 2천명 입학하는 로스쿨생들로 충분할 수는 없다. 그 대안으로 로스쿨 입학생과 변호사시험 합격자를 대폭 증원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이 때 로스쿨 전환을 원하는 법과대학에 과감하게 문호를 개방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법조인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최소한의 희소성을 원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 차제에 로스쿨을 졸업하고 일반 대졸자처럼 기업의 평사원으로 입사하는 데에도 아직 사회적으로 수긍하지 못할 뿐 아니라 사회적 기회비용 또한 너무 심각하다.


법학교육은 로스쿨이라는 전문적인 법률가 양성을 위한 교육과 비록 법조인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인재로서의 법학도가 존재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이제 학부 법학교육이 법학도들에게 법학도로서의 최소한의 자긍심을 일깨워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뒤따라야 한다. 지금처럼 허물어져 가고 있는 학부법학교육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민주법치국가의 기틀이 흔들릴 수도 있다. 법조인이 아니면서 법학적 소양을 갖춘 법학도들의 법의식과 법지식은 사회 곳곳에서 소중한 밀알이 되고 있고 또 그래야 하는 엄연한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로스쿨제도의 설계는 나름 일정한 궤도에 진입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나머지 남은 사항은 이들 졸업생들의 사회적 진출을 위한 출구전략이다. 하지만 학부 법학교육은 침체 일로를 걷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교과부나 법무부 모두 무관심 그 자체다. 법무부는 학부 법학교육은 법조인 양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자신의 업무 소관사항이 아니라고 보는 것 같다. 교과부 또한 법학교육이라고 하면 으레 로스쿨교육쯤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부 법대는 소속 대학에서도 서자 취급을 받고 있다. 독립된 법과대학은 로스쿨 대비하는 경우에도 언제 로스쿨 증원이 이루어질지 기약 없는 상황에서 본부의 논총만 받는 지경이다. 로스쿨 진입을 포기한 법과대학은 아예 축소지향적인 법과대학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나마 이들 대학은 독립된 법과대학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 법학과로만 존치하던 대학에서는 이미 법학과의 독자적인 존재이유를 부정당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대 법정학부 또는 경찰행정학부로 편입되어 독자적인 법학교육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황폐화하고 있는 학부 법학교육을 이렇게 방치하는 것이 미래 한국의 법치주의 구현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우선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뿐 아니라 공공기관·사기업에 이르기까지 아래로부터 작동되어야 할 법무행정이나 법무업무는 누가 감당할 것인가. 이들 법학도들이 담당하던 업무를 비법학도가 담당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 과정을 거쳐서 학부 법학교육의 방향을 설계해야 한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