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날과 법률 문화의 창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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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날과 법률 문화의 창달
  • 성낙인
  • 승인 2011.05.06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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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인 서울대 헌법학 교수.한국법학교수회장

달력을 넘기고 있노라면 수많은 기념일이 빼곡히 적혀 있음을 발견한다. 일반적으로 기념일은 00날이라고 표기되지만 4대 국경일 즉 삼일절.제헌절.광복절.개천절은 절(節)로 표기될 뿐 아니라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주 5일제가 실시된 이후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공휴일을 줄이는 과정에서 제헌절이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 행여 나라의 기틀이 되는 기본법인 헌법을 제정한 역사적 의미가 퇴색되는 것이 아닌지 못내 아쉽다.


제헌절과 더불어 법과 관련된 날이 4월 25일 법의 날이다. 미국에서 법의 날은 1958년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미국변호사협회(American Bar Association) 회장인 라인의 제안에 따라 사회주의국가의 노동절에 대항하는 의미로 법의 지배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5월 1일로 공포하였다. 국제적으로는 1963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법의 지배를 통한 세계평화대회’라는 주제의 제1회 세계법률가대회에서 법의 날 제정을 권고함으로써 세계 각국이 동참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64년 2월에 대한변호사협회가 법의 날 도입을 건의함에 따라 같은 해 4월 30일에 대통령령 제1770호 ‘법의 날에 관한 건’에서 5월 1일로 법의 날이 제정.공포되었다. 하지만 5월 1일은 우리나라의 법제사적 전통과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는 경국대전(經國大典) 반포일을 법의 날로 하자는 의견도 제시하였다. 하지만 2003년부터는 갑오개혁(甲午改革) 법률 제1호인 재판소구성법의 시행일인 1895년 4월 25일을 법의 날로 변경하기에 이르렀다. 1895년은 재판소구성법의 시행과 더불어 행정과 독립된 근대적 사법제도가 도입되고 법관양성소가 개원한 역사적인 해이기도 하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은 1895년을 기리는 근대법학백주년기념관(1895-1995)을 개원한 바 있다. 또한 금년부터 서울대학교는 개교원년은 1946년을 그대로 두고 건학(建學) 원년을 법관양성소 개원 해인 1895년으로 결정하였다. 그만큼 법관양성소의 중요성을 새삼 인정하고 있으며, 서울법대 역사박물관에는 이와 관련된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다. 법관양성소가 배출한 제1기 졸업생으로는 함태영 초대 부통령과 헤이그에서 순국한 이준 열사가 있다.


금년 4월 25일에도 제48회 법의 날 기념식이 개최되었다. 국가를 대표해서 법무부가 주관하는 행사인 만큼 장소적 편의에 따라 대검찰청 강당에서 기념식이 개최된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법의 날 행사에는 단상이 마련되어 법조 유관인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민주화.문민화의 흐름에 따라 단상 의자를 모두 없애고 모든 참석 인사들이 단하에 나란히 앉는다. 법무부가 주관하는 행사이긴 하지만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법무부장관, 검찰총장, 대한변협회장, 한국법학교수회장, 한국법학원장, 대한법무사협회장과 같은 법조유관단체장이 참석한다. 이 날은 특별히 법의 날 유공자에 대한 서훈도 있다. 관례적으로 법조유관단체의 추천을 받아 훈.포장을 수여한다. 훈.포장은 행정과정상 법무부장관-행정자치부장관을 거쳐서 대통령이 수여한다. 그런데 간혹 법무부 실무자들이 마치 훈.포장 수여를 법무부의 고유한 권한으로 곡해하여 자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행태다.


근년에 이르러 법의 날 행사도 딱딱한 법률가들의 기념사나 축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화행사로 연결된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여성 재소자 합창단의 열창은 가슴 뭉클하게 한다. 하지만 TV로 생중계되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는 안타까움도 뒤따른다. 딱딱하고 고답적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되는 법률가상이지만, 근년에 들어 신세대 법률가들은 매우 다양한 특기를 보여준다. 기념식 후 문화행사에서 법률가들은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부터 성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능을 발휘한다. 때마침 한전 갤러리에서는 서울대 법대 출신들이 갈고 닦은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제1회 서울법대동창미전(法門藝展)을 4월 25일까지 개최한 바 있다. 일찍이 독일의 문호 괴테는 ‘법은 영원한 시(詩)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법률가들이 시서화에서부터 아리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능을 뽐내고 있는 것을 보면 이제 우리의 법률풍토도 진정 법률 ‘문화’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음을 실감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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