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눈물, 목숨싸움,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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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눈물, 목숨싸움, 신!
  • 법률저널
  • 승인 2011.03.1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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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싱대 법대학장/변호사/시인

일본 지진참사보도뉴스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극에 달한 비극 앞에서 할 말을 잃는다. 움직이는 티브이 화면을 보면서는 그냥그냥 참을 수가 있었는데, 정지된 몇 컷의 사진과 이어지는 내레이션 앞에서, 티브이 화면에 차례대로 클로즈업되는 정지된 사진 몇 장을 보는 순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어린아이를 구호하기 위해 들고 뛰는 아버지, 자식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눈물 흘리는 어머니, 부모를 잃고 망연자실하게 퍼질러 앉아 버린 아이, 한 명이라도 살려보겠다고 애쓰는 구조대원들, 폐허로 변해버린 도로와 마을 모습 등등,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아내가 나를 쳐다본다. 나의 눈물을 바라보던 아내의 두 눈가에도 눈물이 맺힌다. 저 많은 피해자들이 어떻게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


쓰나미로, 화재로, 건물붕괴로 운명을 달리 한 모든 이들의 영혼에 진정 위로를 보낸다. 착하게 살았을 대부분의 사람들, 가족과 가없는 사랑을 나누며 오순도순 살았을 대부분의 사람들, 단 몇 분 후의 비극적 운명을 미처 예측하지 못한 채 아웅다웅 현실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땀흘리며 열심히 살았을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연상된다. 한 아이가 쓰레기천지로 변해버린 마을 입구에 넋을 잃고 앉아 있는 모습을 지켜보며, 저 아이의 부모는 어떻게 되었을까 걱정이 된다. 혹시라도 이번 지진사태로 고아가 되었다면, 저 아이의 일생이 얼마나 곤고할까 마음이 아파온다. 부모 없는 설움에, 물질의 부족에서 빚어질 일생의 고통이, 무엇보다도 홀로 살아가야 할 외로움이, 비참하게 최후를 마쳐버린 부모의 슬픈 운명에 저 아이가 일생동안 겪어야 할 트라우마의 통증이 얼마나 극심할까 싶은 마음에 나 또한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트라우마는 신체적인 손상과 생명의 위협의 충격으로 나타나는 정신적 질환이다. 주로 일상생활에서 경험하기 힘든 특이한 사건, 예를 들어 천재지변, 화재, 전쟁, 신체적 폭행, 고문, 강간, 성폭행, 자동차, 항공기, 기차 등에 의한 사고, 그 밖의 대형사고 등을 겪은 뒤에 발생하게 되는데, 이러한 트라우마는 평생 동안 그 사람을 따라 다니며 정신적 고통을 가하게 된다. 그러니 지진피해를 겪은 저 이들이 앞으로 치루어야 할 고통의 대가를 어찌 다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구제역 사태로 인해 생매장되는 돼지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개인적으로는 힘들었는데, 만 명을 넘어 설 것이라는 사람들의 시체를 접해야 하는 저 많은 사람들의 고통은 어찌될까 싶으니 상상만으로도 몸서리쳐진다.


세계 각국에서 피해를 입은 이들을 돕겠다는 자원봉사대의 따뜻한 손길이 분주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성금을 모금하고 있다니, 기꺼이 동참할 일이다. 수많은 이들이 지진피해자들에게 위로를 보내고 있는 순간에도 몇몇 사람들의 발언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진의가 어찌 되었든 왜곡된 발언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또 상처를 입는 것을 보면, 말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새삼 그 중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거대한 자연 자해를 지켜보면서, 새삼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반성의 시간을 갖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신문을 펼쳐들면, 이 땅에 얼마나 많은 죄악이 횡행하고 있는지, 자신의 이권을 챙기기 위한 탐욕이 팽배해 있는지 알 수 있으니, 참으로 대책이 없기는 없다. 이루 다 필설로 설명할 수 없고, 머리로 이해할 수 없으며,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잔인하고 흉악한 일들이 반복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사회현상을 지켜보면서, 일본 지진이 주는 교훈을 새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지진 현상과 관련한 조용기 목사의 인터뷰기사가 많은 이들의 비난과 원성을 사고 있다. 본인의 진의는 어떻게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자연현상에서도 하나님의 계시현상을 느끼고 선한 목적으로 살아가는 동기를 발견하려는 것이 기독교의 기본원리이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몇 가지 특이한 자연현상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노아의 방주구원 이야기, 바벨탑이야기, 소돔과 고모라성의 멸망 이야기이다. 우선 노아의 방주구원이야기는 하나님이 노아라는 사람에게 산꼭대기에서 방주, 즉 큰 배를 건조할 것을 명하는데, 노아는 이에 순종하여 100년이 넘는 장기간동안 묵묵히 방주를 만든다. 당시 사람들은 노아의 어리석음, 다시 말해 물도 없는 높은 산에 배를 건조하는 노아의 어리석음을 비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하나님의 계시를 믿고 방주를 건조하여 완성하게 되는데, 그 때부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여 노아의 가족을 제외한 인류가 멸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두 번째 바벨탑에 관한 기록은, 인간들의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높은 탑을 쌓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자, 즉 하나님이 하늘에 살고 있다고 믿은 당시의 인간들이 하늘 높이 탑을 쌓으면 하나님처럼 높아질 수 있다는 교만한 생각에 바벨탑을 쌓게 되는데, 이를 본 하나님이 바벨탑을 무너뜨리고 인간의 거주지를 해체하여 뿔뿔이 흩어지게 함과 동시에 사람들의 언어를 혼란스럽게 하여 지금의 세계 각국의 언어가 달라지게 되어 인간의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세 번째 소돔과 고모라성 이야기는 인간이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성에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 의인이 10명만 있어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경고하였으나, 이 경고를 믿고 타락한 생활을 정리하고 회개하는 이가 10명이 되지 못하여 결국 소돔과 고모라성을 지진으로 멸망케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성경의 기록을 하나님의 계시현상으로 여기고, 즉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갈 수 있는 회심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믿는 기독교교리에 의하면, 일본의 지진도 하나님의 계시현상의 하나이고, 특히 16세기에 기독교가 전파된 일본에 유독 기독교가 전파되지 못한 현상을 빗대어 그렇게 해석하는 경향을 보일 수도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자연현상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읽고자 한다고 하더라도, 그 자연현상에서 기독교인만 휴거되는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기독교국가에서도 수없이 지진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는 일반론에 기초한 비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는 조용기 목사의 “하나님을 믿지 않아 일본에 지진이 발생하였다.”는 취지의 발언에 대해 비난을 가하는 것은 또 어쩌면 당연한 비난이고, 이에 따라 그의 발언은  무책임한 발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얼마 전 “우리가 뽑은 이명박 대통령이 계속해서 이슬람채권법에 의한 자금유입을 추진하면 하야시키겠다.”는 취지의 망언 이후에 이어진 위 말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비난을 가하고 있다. 슬픔과 애도를 표해야 할, 사랑의 종교라 자칭하는 기독교계의 원로목사의 이기적 발언은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급기야 진중권의 “저런 정신병자들이 목사질을 하고 자빠졌으니......”라는 독설과 함께 “더 큰 문제는 저런 헛소리를 듣고 ‘아멘, 할렐루야’ 외치는 골빈 신도들”이라는, 기독교인 전부가 그물망에 엮여 “저런 건 종교가 아니라 집단 히스테리죠. 치료를 요하는 정신의 질병입니다.”라는 비난을 받기에 이르렀다.


더군다나 이명박 대통령을 무릎 꿇고 통성기도하게 하여 현대판 카놋사의 굴욕사건을 일으켰다는 비난을 받은 한국기독교총연맹의 대표목사인 길자연 목사에 대해 지난 15일 중앙지방법원은 그 인준과정의 절차상의 하자를 들어 “대표회장 인준결의는 무효”라는 재판을 하기에 이르렀고, 지난 10일에는 “한국교회 100주년기념관”에서 길 목사의 최측근으로 선거운동을 도왔던 최요한 목사가 또 다른 측근인 홍 모 목사와 함께 길 목사로부터 100만원이 든 돈봉투를 받아 50여명의 투표권이 있는 목사들에게 살포하여 길 목사를 위한 선거부정활동을 하였음을 폭로하는 사태에 이르기까지 하였다. 그러니 진중권 같은, 자칭 타칭 진보논객이라는 이에 의해 위와 같은 험담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인 중에도 상당히 많은 이들이 사회적 선행에 앞장서고 있음과 합리적 기준에 의한 사회적 활동을 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모두를 한 그물망에 엮는 일반론을 피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떠한 망언에 대한 비난을 가하고자 할 때도 기본적인 품위가 있어야 한다. 진중권의 최근 말을 볼 때, 그가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있는 상태임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된다. 즉 그의 감정의 한계선이 “한 방울의 물에도 언제나 잔이 넘치듯”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 방울의 물이 더해지면 언제나 그 물이 넘쳐나게 되고 만다. 그러니 그의 말이 이제 “논객으로서의 합리성”에 근거를 둔다기보다 “짜증스럽거나 화가 난 상태에서 퍼붓는 막말”이 되어가는 현상을 보이는 경향을 띠고 있다. 비난하는 말에도 기본적 품위가 지켜졌으면 한다. 현대인들은 그러한 격한 말을 좋아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자기가 하고 싶지만 핵심을 찔러 말하지 못하는 것을 다른 누군가가, 그것도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이가 가려운 데를 긁어 대변해 주는 것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는 열광하게 되고 맹목적 추종으로 나아가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추종의 중심에 일부 영향력 있는 종교지도자들이 있고, 진종권 같은 논객들이 있는 것이다. 진중권도 자신의 주장을 피력함에 있어 오만방자하지 않은 겸손한 품격을 느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기를 바란다.


어찌 보면, 세상의 모든 말들은 일본의 지진사태로 빚어진 쓰나미 앞에서 무력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있기에 말을 해야 하고, 가치를 공유해야 하고, 눈물을 같이 흘려야 하고, 웃음도 함께 나누어야 한다.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인생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이번 참사의 피해자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개인별로 적을지언정 십시일반으로 구호성금모금에 우리 모두 참여할 일이다. 또 한편 이 땅 어느 곳에서든 언제든 모든 개인개인에게 찾아오는 쓰나미가 있음도 있지 말아야 하겠다. 모두를 향한 쓰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감당할 수 없이 찾아오는 쓰나미가 있음을......


정말 신은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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