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그간의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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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그간의 기억들
  • 법률저널
  • 승인 2002.12.26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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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2월

43회 형사소송법 마지막 장에 마침표를 찍으며 제 마음은 날아갈 듯 홀가분했습니다. 당시 저는 기득권을 가지고 시험을 보았었습니다. 그 후 합격을 확신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발표를 기다렸습니다. 12월 3일이었을 겁니다. 오전에 늦잠을 자고 있는데, 후배로부터 축하전화가 왔습니다. "형 축하드려요. 이름 있네요" "어 그래? 고맙다." 예상했던 결과였기에 그다지 기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홀가분한 심정은 있었지요. 확인사살을 위해 인터넷 법무부 홈페이지에 접속했습니다.. 37050..37057.. 그 사이에 있어야 할 제 수험번호는 없었습니다. 동명이인이었죠. 순간 멍했습니다. 코끝이 찌르르.. 3년간 해 왔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생각을 한 건 그로부터 40분 후였습니다.  그냥 멍했습니다. 담배를 끊기 위해 서랍 구석에 넣어두었던 마지막 담배 한 가치를 꼬나물었습니다. 핑 돌더군요.. 세상이 핑핑 돌았습니다. 여자친구가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 드디어 됐네~" "내 팔자도 피는 거야?" 아니라고, 동명이인이라고 밝혔습니다. "에이..장난치지마 호호" 두 번 세 번 계속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지더군요.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리고는 기분전환을 하자며 가까운 백화점에 데리고 가더니 새 구두를 사 주더군요. 기회는 또 있다는 취지의 말을 들은 것 같은데, 그 때 내가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나도 모르겠습니다. 밤이 되고 전 저의 자취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잠을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지금 이건 현실이 아니다. 꿈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항상 보아오던 내 자취방이 너무 낯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 쓰러지듯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어제일이 꿈같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법무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확인을 했습니다. 꿈이 아니더군요. 현실이었습니다.  그 날 바로 책을 싸들고 새벽 6시에 신림동의 독서실로 향했습니다. 어찌나 춥던지.. 합격한 친구들은 지금 따뜻한 이불 덮고 포근하게 잠들어 있겠지.... 너무 괴로웠습니다. 독서실에 가서는 공부가 안 되더군요. 여자친구에게는 공부한다고 거짓말하고 집에 돌아와 자취방 책상 밑에 기어들어가 소주를 마셨습니다. 난 바보라는 생각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습니다.


2002년 1월 초입

그리고 4주쯤 지난 후였습니다.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저는 책상 밑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셨습니다. 저는 잔소리가 듣기 싫어 나가버렸습니다. 돌아오니 어머니는 이미 고향집으로 내려가셨고, 따뜻한 콩나물국과 밥 한 공기, 편지 한 장이 책상 위에 놓여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로 시작하는 편지는 제 마음 속에 있는 그 무엇인가 남아 있는 따스한 것을 일깨워주었습니다. (편지내용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때가 이미 1월의 초입을 넘어서는 시기였습니다. 번개같이 학원으로 달려가 제일 자신없는 독일어 수업을 신청하고 독서실로 향했습니다. 처음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서점에 가서 이것저것 많이 보는 책들 물어도 보고 예전에 재시에서 떨어졌다가 이듬해 1차에 붙은 선배들에게도 전화를 했습니다. 정리가 되어 있다면 일단 문제집이나 열심히 풀어보라는 취지였습니다. 그 때부터 차분히 공부를 다시 시작하였고 하루에 약 8시간 정도의 공부를 한 것 같습니다.


2002년 3월

그리고 3월 1일 시험. 완전히 바뀌어 버린 시험 유형 앞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내가 여기서 또 실패하면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거란 걸 알기에 끝까지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채점을 해 보니 합격점수가 나오더군요. 그 다음날부터 다시 2차 공부에 돌입했습니다. 작년에 워낙 열심히 했음에도 떨어졌기 때문에, 그 후유증인지 공부해도 2차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저를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포기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는 걸 알기에 무리하지 않으면서 하루에 8시간 정도씩 공부를 계속 했습니다.


2002년 6월
 
2차 시험 당일 저는 택시로 약 50분 거리에 있는 한양대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오가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잠자리가 바뀌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 대신 차가 밀릴 것을 우려하여 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첫날 제가 제일 먼저 교실에 와서 헌법책을 펴 놓고 보고 있는데, 60이 넘어 보이시는 여자 분이 들어오셨습니다. 저는 그 분이 노장수험생인 줄로 오해하고 대단하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허름한 가방에서 국화꽃을 꺼내시더니, 사랑하는 00이 아버지, 하늘에서라도 도와주세요. 00이 꼭 되도록.. 하고 기도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전 앞자리에 앉아서 제 책에 떨어진 물방울을 발견했습니다. 저도 그 분을 보며 저희 부모님을 생각했고 또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생각했습니다. 나도 꼭 되어야지, 꼭 되어서 부모님과 내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 친구들에게 기쁨을 줘야지. 그리고는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고, 저는 제 아는 한도 내에서만 당황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써내려갔습니다. 제 할일은 다 했다는 심정으로 말입니다. 그리고는 형소법까지 모든 시험이 끝났습니다. 43회 때와는 달리 잘 봤다는 감이 오질 않았습니다. 그냥 멍했습니다. 지하철 2호선이 건대입구를 지날 때 밖을 내다보며 '내가 지금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일까'


2002년 12월

부모님은 나에게 잘 봤냐고 물어보시지는 않았지만, 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시기도 하고.. 내심 속이 많이 타셨던 가 봅니다. 저는 12월 1일부터 밤에 잠이 오질 않더군요. 무서웠습니다. 작년의 그 느낌. 그 애타는 감정. 처음 느끼는 비현실감. 멍함. 다시 겪을까봐 너무 무서웠습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고시생활 다시 반복해야 하는 것일까. 발표 당일 전 아침부터 인터넷에 매달려서 명단을 기다렸습니다. 친구의 전화가 왔더군요. 자기는 떨어졌다고 확인해 보라고. 화들짝 놀라 터질 듯한 가슴을 부여잡고 확인을 했습니다. 명단에 있더군요. 명단에 틀림없이 내 수험번호와 이름이 나란히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소 홀가분하나 무거운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엔 이번에 기득권을 가지고 2차에서 떨어지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어떠한 말로도 지금 겪고 계신 감정에 대한 위로가 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심적으로 이 정도로 괴로울 수도 있는 거구나. 난 인생의 실패자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이런 말할 자격은 없지만, 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인생의 실패자는 실패를 겪고 쓰러져 일어서지 못 하는 사람이라고, 때론 산 정상에 있는 것보다 계곡에 굴러 떨어져 기어 올라갈 때가 더 즐거울 수도 있는 거라고.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힘을 내세요. 내년 1차에 떨어진다면 지금보다 더 힘든 감정을 체험하게 되실 지도 모릅니다. 아직 아무것도 끝난 것은 없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다시 한번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희망을 가지고 시작하세요. 희망을 가진 사람에게는 반드시 희망찬 내일이 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내 친구 강x인, 강x원, 장x호야, 힘내! 내가 지금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없구나. 운좋게 붙은 난 할 말이 없구나.                                      

운좋게 붙은 합격생/김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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