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 교수의 세상의 창
상태바
오시영 교수의 세상의 창
  • 법률저널
  • 승인 2011.01.21 11: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시영 숭실대 법대학장/변호사/시인

당신은 고로쇠나무, 성자이십니다

수십 년 만에 찾아왔다는 겨울추위로 세상이 얼어버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얼어버리면 모든 것이 굳어버리는 게 이치인데, 그 굳음이 오히려 깨뜨림을 통해 감추어진 진실을 폭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여기저기에서 수도관이 얼어붙어 파열되고, 전기 공급이 끊겨 공장가동이 멈추고 도시가 암흑천지로 변하는 소식을 접하면서, 어쩌면 사람도 지나치게 강박당하면 생쥐가 고양이를 물 듯 얼어붙다 못해 깨져버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연을 우습게 아는 과학시대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 자연이 혹독한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중학시절, 추위에 얼어붙은 내 방 책상 위 잉크병이 그 굳음을 견디다 못해 깨져버리는 바람에, 그러다 그 얼어붙은 잉크가 녹아내리는 바람에 책상 위 쌓아놓은 책들이 시꺼멓게 변해버리는 봉변 아닌 봉변을 당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왜 그리 방안이 바깥 날씨 못잖게 추웠는지 모른다. 이마 위에 놓고 잔 그릇의 물이 밤새 얼어버리는 것이 예사였으니. 아마 그 이후부터 지나친 굳음은 제 스스로를 견디다 못해 폭발하고 마는구나 하는 생각을 줄곧 해 오게 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정병국 문화체육부장관 후보자와 최중경 지식경제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의 인사청문회가 끝났다. 두 사람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생중계되는 방송을 지켜보면서, 또 너저분하고 지저분한 그러면서 시시콜콜한 부패 같은, 교묘히 법망을 피해 나간 듯한 비리사실들이 공개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깨끗하게 세상살기 참 힘들구나 하는 생각에 잠긴다. 50년 넘게 세상 살아온 한 사람을 좋은 점만 이야기하려고 해도 몇날며칠로도 부족할 것이고, 나쁜 점만 이야기하려고 해도 몇날며칠로 부족할 것이다. 한 인간의 압축모형을 한 마디로 설명하는 것이야말로 장님이 코끼리다리만지기하고 무어 다르겠는가 싶다. 여당에서는 좋은 점만 보고 이만하면 장관직 수행에 큰 결함이 없다고 주장하고, 야당에서는 나쁜 점만 보고 이 정도에 이를 지경이라면 절대로 장관직을 수행할 적임자가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양 쪽의 주장을 들으면서 자칫 한편으로 누가 장관한들 뭐가 달라질게 있나 하는 자포자기적 생각에 빠져든다. 그렇지 않나? 누가 하든 뭐 별 게 있겠느냐, 안 그런가? 그 나물에 그 밥이니 말이다. 


구제역 확산으로 200만 마리가 넘는 소나 돼지 같은 동물들이 살처분되었다. 지난주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멀쩡하던 동물이 단지 구제역이라는 병이 들었다는 이유로, 인간들에 의해 무참하게 살처분되어 생매장되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저 동물들은 누구를 살리려 저렇게 죽임을 당하는가 하는 자문자답을 자꾸 하게 된다. 다른 동물을 살리기 위한 희생이라면 더 이상 고귀할 수 없겠지만, 그 한 마리 동물로만 보면 어디 이런 날벼락이 있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연초이다. 방학기간이어서인지 그 동안 읽지 못한 채 방치해 두었던 동료시인들의 시를 자주 읽게 된다. 나보다 조금 연배인 윤문자 시인의 시 “나무성자”를 읽는다. “그는 나무이면서//헌혈성자 고로쇠나무이다//사람들은 해마다//불멸의 기념일을 맞이하여//나무의 생체에 구명을 내고//그의 물관부리 혈관에//링거호스를 잇대어//줄줄이, 생혈을 받아가니//그는 나무이면서//헌혈성자//오! 독생자 그분 같다” (전문, 윤문자 시집 “분홍장갑”에 수록, 문학아카데미, 2010년 간).


고로쇠나무는 자신의 수액을 매년 봄이면 아낌없이 쏟아놓는다. 고로쇠수액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은 특성이 있어, 위장이나 간이 안 좋은 사람들이 몸 안의 노폐물을 배출하고자 봄에 많이 마신다.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마른 복어나 오징어와 함께 고로쇠물을 마시면서 나보고도 마시라고 해 마셔보았으나 텁텁하니 맛이 없어 싫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윤문자 시인은 고로쇠나무를 “나무성자”라 부르고 있다. 자신의 생혈을 인간에게 내어주면서도 묵묵히 서 있는 고로쇠나무가 링거바늘처럼 호스에 매인 바늘로 찔릴 때마다 얼마나 아팠겠는가마는,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에서 내어 놓으면서까지 인간구원 메시지를 전하려 했던 예수 같은, 아주 고귀한 존재로 인식하는 윤 시인의 마음은 선한 비단결이다. 저 고로쇠나무는 지금 이 순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추위 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공사장 인부아저씨일 수도 있고, 연탄 몇 장을 이고 지고 가난한 달동네를 찾는 보이지 않는 선한 마음씨를 가진 어느 아주머니일 수도 있다. 제자를 위해 헌신하는 선생님일 수도 있고, 자식들에게 이러저러한 명목으로 제 살점을 뜯기면서도 묵묵히 자식이 잘 되기만을 간구하는 부모일 수도 있다.


고로쇠나무는, 저 앞의 인사청문회장에 불려나와 부동산투기 의혹, 논문표절의혹, 세금포탈의혹 등 각종 의혹을 받으면서도 자신들이 떳떳하다고 큰 소리 치는 장관 후보 아저씨들이 아니라,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소시민에 불과한 바로 우리일 수도 있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람은 누구나 저 시 속의 고로쇠나무일 수 있고, 성자일 수 있는 것이다. 묵묵히 서 있는 고로쇠나무의 모습에서 성자를 읽어내는 시인의 눈은 연륜만큼이나 해맑다.


내친 김에 윤문자 시인의 또 다른 시 한 편을 같이 읽고 싶어 소개한다. “떡을 떠억 하고 불러봅니다.//고금 이래 괜찮은 자리다 싶으면 어느 새//한자리에 떠억하니 앉아 차지하고 있더라는 겁니다.//요즘 말로 그 흔한 뿔 하나도 없고//반반한 뼈대 하나 없으면서//그렇다고 패션이 두드러진 것도 아닌데//많은 이들이 변함없이 불러 주고 내어줍니다//하지만 앞서서 잘난 척하지 않고//제자리를 지켜 나가는 그가 좋아서//맘이 즐거운 자리에 나갈 때면//떠억하니 앞에 모시고 가는 떡//그러다 보니 어떤 시인은 나를 보면//내 시보다는 떡이 먼저 생각난다고//만만한 떡 주무르듯 나를 놀렸지만 상관 없습니다.//말하건대 떡을 앞세우고 가면//나도 모르는 어떤 힘이 생겨나는 떡!” (윤문자 시인의 “떡!” 전문, 위 같은 시집에 수록)


윤 시인의 다른 글에 보면 어렸을 때부터 무척 떡을 좋아했다는 고백글이 있다. 고희에 이른 지금도 자신의 집에 여러 종류의 떡을 만들어놓고 한 끼 식사를 대체하여 밥 대신 떡을 먹을 정도로 떡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윤 시인은 떡을 떠억이라고 길게 장음화함으로써 말랑말랑한 떡을 태산처럼 단단하고 든든한 수호천사로 인식케 하는 놀라운 언어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다. 말랑말랑하다고, 뼈대가 없다고 떡을 만만하니 보지 말라고, 떡을 떠억하고 보란 듯이 내어 놓은 것이다. 그러면서 어떤 잘났다고 착각에 빠진 시인이 “내 시보다는 떡이 먼저 생각난다고//만만한 떡 주무르듯 나를 놀려”대는 것에 일침을 가하고 있다. 떡을 밥보다 좋아하는 윤 시인은 자신의 마음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그 맛있는 떡을 먹이고 싶어, 시인들끼리 모이는 이러저러한 모임에 마음을 담아 떡 선물을 들고 갔는데, 사람의 마음을 귀신처럼 궤뚫어본다는, 혜안이 빛난다는 소위 잘 나가는 시인이라는 자들이 그 진심을 알아보지 못하고, 윤 시인을 시인이 아닌 떡배달 아주머니쯤으로 여기는 교만을 내뿜는 것이다.


그 잘난 시인이라는 작자는 사람을 얼어붙게 만드는 겨울추위가 되어 윤 시인을 얼어붙게 만들려 했지만, 어디 윤 시인이 만만한가? 떠억하니 떡을 내려 놓고 떠억하니 그 잘난 시인을 무시해버리는 “떠억의 왕배짱”이 얼마나 떠억 같은가? 얼어붙음을 오히려 터진 웃음으로 만들어 떠억 버티어 버리는 윤 시인의 마음이 아름답다. 그러면서도 그 조심스러워 하는 마음 한편의 연약함이 함께 느껴져, 그냥 나라도 윤 시인 앞에 떠억 버티고 서서 함께 씨익 웃어주고 싶다. 나는 윤 시인의 마음을 잘 알 것 같습니다. 떡이 참 맛 있네요 하면서 말이다.


올 한해, 우리 모두는 누군가로부터 “당신은 성자이십니다.”라는 말을 한번쯤 듣고 살았으면 한다. 토끼처럼 소리 없이, 그러면서도 귀를 쫑곳 세우고 남의 말을 잘 들어주며, 고로쇠나무처럼 내 한 켠의 생혈을 내어주는 사랑을 실천하는, 정말 다른 시인에게 떡을 먹이고 싶어 여러 시인에게 떠억 떡을 내놓은 그 따사로움을 실천하여, “당신은 성자이십니다.”라는 그 말 한 번쯤 들으면 좋지 않겠어요? 우리 함께 앞에 있는 이에게 한 마디 해볼까요? 당신은 내게 온 성자이십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