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년 새해, 지혜와 순발력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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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년 새해, 지혜와 순발력의 조화
  • 성낙인
  • 승인 2011.01.07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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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인 서울대 헌법학교수.한국법학교수회장

신묘년 새해가 밝아 왔다. 새해에는 누구나 나름대로 많은 구상과 설계를 해 온다. 올해는 토끼해이다. 토끼는 흔히 거북이와 연상시킨다. 거북이가 느림의 미학이 있다면, 토끼는 빠르면서도 지혜로운 미물이다. 용왕님께도 스스럼없이 거짓을 부릴 수 있는 순발력과 기지가 가득차 있다.


법학도들도 거북이의 느림의 미학과 토끼의 지혜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법학이란 하루아침에 완결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학문이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랜 사회과학으로 자리 잡고 있는 학문이다. 그런데 최근 로스쿨이 도입되면서 법학은 실무가의 전유물인 것처럼 오해되는 측면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법학만큼 학문적 완결성을 갖춘 학문도 드물다. 오랜 세월의 연륜이 이를 잘 말해 준다. 수천 년을 이어오면서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세월을 함께 해 온 법학의 특성을 깊이 새겨 보아야 한다.


첫째, 우리는 영미법계와 달리 대륙법계처럼 성문의 법전을 갖고 있다. 따라서 성문의 법전을 항시 염두에 두고 법이론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성문법 체계의 특성상 법의 해석에 있어서 그 출발점은 법의 문의적 해석에서 비롯된다. 성문의 법전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천착하지 않고서는 공허한 담론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한 구절 한 구절 조문의 의미를 되새김질 하는 가운데 법학의 묘미를 음미할 줄 알아야 한다. 법학만큼 완결적이고 정치한 학문도 드물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치열한 학문적 접근만이 법학도로서의 성숙도와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둘째, 성문법에서 출발하여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외면할 수 없다. 구체적 사안에서 무엇이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를 탐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학자들이 쌓아올린 법이론과 판례를 결합해서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판례는 흔히 살아있는 법이라고 지칭된다. 그만큼 구체적인 사실관계에서 이를 어떻게 법리적으로 파악할 것인가가 판례 속에 녹아들어 있다. 하지만 그 판례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론과 현실을 조화시킨 결과물이다. 그간 우리는 외국의 판례에 천착해 있었다. 비록 외국의 법제를 계수해 왔지만 환력이 넘는 세월에 걸쳐서 외국의 법제가 우리의 토양 속으로 스며들었다. 따라서 우리의 법체계에 상응하는 판례는 우리의 것으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우리의 것이 부족할 때 외국의 판례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참조하면 된다.


셋째, 법학이론과 판례의 흐름을 꿰뚫어 본 다음에 비로소 현실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핸들링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는 실무의 몫이 중요해 진다. 구체적으로 주어진 사안에서 실무적으로 어떻게 접근하여 사안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할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된다. 아무리 이론으로 무장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구체적인 사안에 부닥치면 멍해질 수 있다. 따라서 실무적인 훈련은 현장 감각을 제고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실무에 접하는 과정에서는 테크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순발력과 지혜를 함께 습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법학이론, 판례이론에 치밀하게 접근한 다음에 최종적으로 부닥치는 현실의 구체적 사안에서 이를 종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그 어느 것 하난 놓칠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법은 생활 속의 학문이다. 공허한 공리공론에 치우칠 수 없는 이유다. 의학이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학문이라면 법은 사람의 삶을 지배하는 학문이다. 법학만큼 사회성이 요구되는 학문도 드물다. 더구나 법적 분쟁은 인간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야기된다. 학부과정에서 모든 영역에서의 전공자들이 각자의 전공을 최대한 살리면서 법이라는 이름으로 융합해 가는 과정이 로스쿨의 장점이기도 하다. 대륙법계 심지어 영미법계의 모국인 영국에서도 우리가 종래 해오던 학부법학 교육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미국식 로스쿨을 채택한 이유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새해 새아침 법학도들의 앞날에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학부법학교육에 익숙한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법학도들이나 로스쿨에서 새로운 실험을 해 나가는 법학도 모두에게 민주법치국가 대한민국의 희망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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