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 3관왕의 합격비법(2)-"아버지와 할아버지 영전에 합격증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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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 3관왕의 합격비법(2)-"아버지와 할아버지 영전에 합격증을 바칩니다"
  • 법률저널
  • 승인 2010.12.24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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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승 진
경찰대학 법학과 졸업
제26회 입법고시 법제직 수석합격
제54회 행정고시 법무행정 차석합격
제52회 사법시험 합격
현재 국회사무처 근무

▲지난호에 이어서 연재합니다.

V. 진검승부, 재시(2009. 7. 6. ~ 2010. 7. 3.)

1. 1순환과 마음의 갈등


초시를 마치고 별로 쉬지도 못한 채 1순환이 시작되었습니다. 조금은 여유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1순환의 분량과 부담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특히 학원들의 일정이 엇갈리는 바람에 한 학원에서 상법 영상반을 들으면서 다른 학원에서 행정법 실강을 수강하는 다소 무리한 일정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 무렵 여러 사정으로 복직을 하게 되어 불법사행성게임장 전담수사관으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일과 시간은 물론 밤 11시, 새벽 2시 등 불시에 이뤄지는 게임장 단속에 공부할 엄두조차 낼 수가 없었습니다. 다들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때 혼자만 뒤쳐지는 느낌은 물론, 자칫 시험장에 들어가 보지도 못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초시 때 성적이 좋지 않았던 헌민형 1순환을 통째로 날려 버렸다는 것도 안타까웠고요.


복직 후 두 달 남짓 지나 합격자 발표가 났고 초시 성적도 알게 되었습니다. 법원과 검찰청을 드나들며 법조계의 실상이나 형사사법제도에 있어 경찰의 지위를 절실히 깨닫기도 했습니다. 오래 고민한 끝에 현재의 불완전한 실력만으로 공직에 남아 있기 보다는 조금 더 실력과 자격을 갖추어 법률전문가가 되는 것이 이 사회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고, 이대로 포기하면 일생에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으로 다시금 꿈을 위해 도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2. 다시 수험생으로


2순환이 시작되던 11월 하순에 직장을 접고 신림동에 복귀하였습니다. 1차에 이어 2차 때에도 남들보다 뒤늦은 시험 7개월 전에야 출발선에 서게 되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러나 불완전하게나마 내게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며 공부할 수 있음을 축복으로 여기고, 결과는 내 뜻대로 안 될지라도 과정만큼은 내 뜻대로 만들어 가겠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하기로 했습니다. 특히 2순환 막판부터는 기본3법에 심혈을 기울여 작년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체력도 집중력도 많이 떨어진 상황에 시간을 쪼개 행정고시와 입법고시 등에 응시하러 다니는 한편, 집안 사정으로 인한 건강보험공단과의 행정심판이나 예비군 문제와 같은 공부 외적인 일들을 처리하느라 학업에 전념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면 “맹자”에 나오는 “天將降大任於是人也 必先苦其心志 勞其筋骨 餓其體膚 空乏其身 行拂亂其所爲 所以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뼈마디가 꺾어지는 고난을 당하게 하며 그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 생활은 빈궁에 빠뜨려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용기를 얻었습니다.

3. 마무리


3순환이 끝나자 시험은 40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유난히 길었던 3순환 덕분에 4-2-1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고, 과목당 2~3회에 불과한 2시간짜리 4순환 시험을 보는 것도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후4법은 스스로 정리하고, 기본3법은 동차반 강의를 듣는 것으로 마무리에 갈음하기로 했습니다. 강의를 듣고 남은 시간에 정리를 하다보니 후4법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1달 전에 보는 것은 전날 정리만 할 수 있다면 시험장에서도 어지간히 기억이 나리라 믿었기에, 회독 수에 집착하기 보다는 꼼꼼하게 보는데 충실했던 것 같습니다.


6월은 굉장히 힘든 시기였습니다. 지방선거와 월드컵에 신림동도 들썩였고, 개인적으로는 입법고시 2차 시험 발표부터 3차 면접시험과 최종 합격자 발표, 채용후보자 등록 등이 시험에 임박하거나 시험을 치르는 도중에 한꺼번에 이루어져 페이스 조절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험장에 돌아오기까지 1년 동안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깨달았기에 시험장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이대로 모든 걸 걸고 시험을 치다가 쓰러져도 좋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버텼습니다.

4. 시험장에서


작년과 마찬가지로 학원 버스를 이용, 연세대에서 시험을 쳤습니다. 시험 전날 12시쯤 잠이 들었는데, 월드컵 나이지리아전 때문에 5시쯤 깨서 컨디션이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헌법은 첫날 첫 과목으로 지나치게 긴장한데다 잘 써야 한다는 욕심이 앞선 탓에 시간조절에 실패하였고 1문 20점짜리 문제를 목차와 결론 밖에 쓰지 못하였습니다. 1문은 1면 이상이 백지였고, 2문도 25점짜리 두 문제를 각각 3면, 1면에 나누어 쓰는 등 분량 조절에 실패하여 과락을 걱정할 만큼 위기에 몰렸습니다. 지난 2년간의 노력이 이렇게 물거품이 되는가 싶어 맥이 탁 풀리고,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패닉 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식사를 하며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음 시험에 임하기로 했습니다. 이후에는 너무 잘 쓰려고 하면 2시간 내에 다 쓸 수가 없다는 점을 깨달아 어깨에 힘 빼고 쓴다는 느낌으로 그냥 자연스럽게 써내려갔던 것 같습니다. 목차도 좀 느슨하게 잡았던 것 같고요. 민사소송법의 경우 “실기한 공방”이라는 작은 쟁점을 발견하기도 했으나 10점짜리 문제의 부분쟁점으로서 분량 조절할 자신이 없어 그냥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그럭저럭 시간 내에 분량을 채울 수 있게 되면서 조금씩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매 쉬는 시간 화장실을 다녀왔고 초시 때의 경험을 살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세로 책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시험지와 답안지를 나눠주는 와중에는, 법전의 목차와 조문 제목을 들여다보며 내가 찾아봐야 할 조문이 어디쯤에 있는지를 기억하려 했습니다.


출제된 문제를 살펴볼 때에는 이 문제가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답안은 논점들을 백화점 식으로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성을 갖춘 하나의 유기적 체계가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문제가 요구하는 방향을 빨리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특히 최신 판례나 시사적인 이슈가 자주 나오는 최근 경향에 비추어, 신문 잡지 인터넷 등에서 법학 쟁점들을 대할 때 어떤 식으로 출제될 수 있을지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지요. 제도를 물어볼 때에는 법전에서 조문의 체계상 위치나 개정일 등을 살펴 그 취지를 떠올리면 좋을 것입니다.


또한 고득점을 위해서는 판례에 공을 들여야 합니다. “判例는 A라는 사안에서 B라고 판시하였는 바 이는 C의 입장으로 볼 여지도 있으나, D라는 사안에서는 E라고 판시하여 F의 입장을 명백히 하고 있다.”라는 식으로 분량과 개수, 분석에 이르기까지 충실하게 써주어야 합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많은 판례를 깊이 있게 공부해야 할 것이나, 사실관계를 정확히 이해하면 암기 부담은 생각보다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식사는 작년에 이어 고시식당에서 챙겨준 김밥으로 해결했습니다. 소화가 잘 안 되어 죽을 드시는 분도 있지만 저는 너무 일찍 소화되어 허기가 지면 오히려 답안을 못 쓸 것 같아 김밥을 먹었고, 간식으로 초콜릿과 바나나도 챙겨먹었습니다. 다만 음료나 과일은 생리현상 때문에 피했고, 대신 목이 마르면 호올스나 목캔디를 입에 물고 시험을 치렀습니다.
학원 버스로 신림동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고 나면 6시가 조금 넘었고, 독서실에서 2교시 과목부터 빠르게 훑어본 뒤 1시 20분경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5시 50분에 일어났으니 4시간 30분 정도는 잔 것 같습니다. 체력이 초시 때보다 많이 떨어져서 버티기 어려운 것도 있었고요. 오전에도 많은 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 조금이라도 맑은 정신으로 1교시 과목을 보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시험기간의 집중력은 무서운 데가 있어서, 요약서나 암기장 위주로 빠르게 훑어보았다고는 하지만 어느 정도는 만족스러울 만큼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날 점심시간에 민법 3문을 준비하며, 1문과 2문에서 출제되지 않은 물권법이 반드시 나오리라 생각하고 윤동환 선생님의 “주제별 논리(사례)구조 및 필수 암기개념(요건,효과)ㆍ判例(평석)”을 정독했습니다. 그러나 3문에서 출제된 것은 임대차였고, 예상치 못했던 비전형적인 출제에 당황하여 25분 간 아무 것도 쓰지 못하다가 시간에 쫓겨 부랴부랴 답안을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끝내 (3)(4)번은 제대로 쓰지도 못한 채 제출하였고 발표 때까지 과락을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지요. 그런데 나중에 결과를 보니 3문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던 반면, 2문에서 1,3문 점수를 다 까먹을 정도의 형편없는 성적이 나와서 주관식 채점은 역시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5. 입법고시 응시


(1) 1차 시험
어렵게 신림동에 돌아와 재시를 준비하게 되었지만, 과연 얼마나 수험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2010년에는 반드시 하나라도 합격해서 수험생활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입법고시를 알아보았고, 워낙 뽑는 인원이 적어 두려움도 있었지만 용기를 내어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420.3 대 1의 경쟁률을 보고 나니 기가 질리더군요. 저 많은 수험생들 중 3등 안에 든다는 것은 사시 2차생으로서 800명 안에 드는 것보다 420.3배는 어려워 보였습니다.


평소보다 늦어진 일정 탓에 3순환 기간 중에 PSAT를 보았는데, 사시 일정에 쫓겼던 데다가 입시를 대비한 프로그램도 찾지 못하여 행시 때 실력으로 응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높은 난이도에 고전하며 3순환 수업까지 빼먹고 온 것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컷이 낮아진 덕분에 운 좋게 붙을 수 있었습니다.

(2) 2차 시험
3순환이 끝나갈 무렵 2차 시험이 치러졌습니다. 사시 2차가 불과 55일여 앞으로 다가온 긴박한 시기였기에, 합격을 장담할 수 없는 입법고시에 3일을 투자하는 것이 퍽이나 부담스러웠습니다. 매일 집을 나서며 “가지 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처음 공부 시작할 때의 간절한 마음으로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며, 떨어지더라도 최선을 다해야 후회가 없다는 생각으로 버텼습니다.


시험 전 주말부터 5일 동안 3순환은 강평만 듣고, 민법 1순환 인터넷 강의도 중단시킨 채 미흡하나마 입법고시 준비를 했습니다. 기출문제를 구해 자주 출제되는 주제에 대비했는데 단문이 자주 나오는 등 사법시험과는 다른 유형에 상당히 당황했던 것 같습니다.


시험기간에는 출근 시간에 여의도까지 나가는 게 여의치 않을 것 같아서, 매일 밤 택시를 타고 당산동 집에 가서 잤습니다. 식사는 전날 밤 준비한 김밥으로 해결했고요. 마지막 날 시험장에서 너무 지친 나머지 정신없이 자다가 시험지를 받고서야 부랴부랴 깼던 기억이 납니다.


첫날 첫 과목인 행정법에서는 위반사실의 공표가 불의타로 나와 고전했으나, 그 무렵 건강보험공단과 진행하던 행정심판과 유사한 준 사례 문제가 나와 쾌재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행, 재경의 쟁쟁한 실력자들과 함께 채점을 해서인지 50점대 중반으로 간신히 컷을 넘겼습니다. 다행히 다른 과목에서는 모두 60점을 넘겨 총점 280.65(평균 62.37)점으로 법제직 최고득점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시험 과목 중에 3순환 기간 중이거나 마친지 1달 이내인 것들이 많아서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던 덕분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수석은커녕 합격도 자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시 2차를 준비하는 틈틈이 인터넷을 검색하며 국회에 대해 알게 될 수록 합격에 대한 열망이 강해졌고, 그래서 2차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뛸 듯이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3) 3차 시험
합격은 기뻤지만 막상 사법시험을 코앞에 두고 면접을 준비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더군요. 선배님들이 운영하는 “입법고시 가이드” 카페에서 이런저런 정보를 얻기는 했지만, 자기소개서를 쓴 것 말고는 특별히 준비하지 못한 채 면접시험장에 다녀왔습니다. 면접은 집단토론과 개별면접으로 진행되었는데, 집단토론에서 최근의 미디어법 강행처리 사건과 유사한 헌법재판소 1997. 7. 16, 96헌라2 “국회의원과 국회의장 간의 권한쟁의” 사건이 출제되어 다소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국회의 자율권과 입법형성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위법하지만 유효하다는 헌재의 결정을 지지한다고 했다가 “해바라기 같다”는 비판을 들었습니다. 면접 대상자 4명 중 나이도 제일 어린데다가 저런 말씀까지 듣고 보니 떨어질 것만 같았고, 사법시험을 앞두고 어렵게 시간을 내어 다녀왔는데 떨어지면 타격이 클 것 같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최종발표 때까지 공부가 잘 되지 않았으나 다행히 합격할 수 있었고, 채용후보자 등록과 임용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험기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6. 행정고시 응시


(1) 1차 시험
작년 1차에 붙고도 2차 준비를 거의 못했던 기억을 거울삼아, 올해는 최종 합격을 목표로 법 과목이 많은 직렬에 도전할 것을 결심했습니다. 법무행정과 검찰사무를 두고 고민했는데 교정학(검찰사무)이 행정학(법무행정)보다 쉽다는 평도 있었으나 선발인원이 많다는 점과 행정학 면과락에 성공한 작년의 기억을 떠올리며 법무행정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2순환에 바빠 PSAT 준비를 따로 할 여유는 없었으나 준비 없이 응시했다가 떨어지면 타격을 받을 것 같아서, 일요일 오전을 이용 3회에 걸쳐 PSAT 모의고사에 응시하였습니다. 특히 제일 자신 없던 자료해석에 많은 신경을 썼던 것 같네요. 평균 60점대 초반의 저조한 성적이 나와 좌절한 적도 있지만 마지막 모의고사에서는 상위 6% 대의 좋은 성적을 올려 어느 정도 합격을 예감할 수 있었습니다.


시험장에서는 과목당 10분씩 늘어난 시험시간 덕분에 조금 여유 있게 문제를 풀 수 있었고 점수도 평균 85점 정도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영역별 고른 점수를 올린 가운데, 제일 약했던 자료해석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올린 것을 보고 준비의 중요성을 실감했습니다.

(2) 2차 시험
사법시험을 마치고 바로 행정고시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친족상속법 제외’라고 명시되어 있던 민법에서 가족법 논점이 나왔던 것을 제외하고는 어느 정도 예상한 주제들이 출제되어 비교적 만족스러운 답안을 쓸 수 있었습니다. 다만 행정학은 따로 준비할 시간이 없었기에 시험 전날 면과락을 목표로 이원희 교수님의 “쟁점분석 행정학”과 정경호 선생님의 “2010 핵심 행정학”을 벼락치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험장에서는 민주성과 효율성의 조화라는 관점을 유지하며, 세종시나 4대강사업, 국방예산 등의 시사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답안을 작성했던 것 같습니다. 아울러 법익 간의 비교형량이나 행정절차법상의 참여권 보장제도,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등 법학 개념을 차용하기도 했는데, 사회과학의 각 분야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제를 실천적으로 해결하는 차원에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흐뭇했던 기억이 납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버지의 모교에서 아버지가 준비하셨던 시험을 볼 수 있어서 가슴이 뭉클했고,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아버지께서 함께 해주시리라는 믿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답안을 써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아버지가 도우셨는지 많이 부족한 답안인데도 41점을 받아 가까스로 과락을 면했고, 다른 과목에서 선전한 덕분에 평균 64.81점을 얻어 직렬 2위로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3) 3차 시험 
3차 면접 시험은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려워 춘추관에서 실시한 주말 특강을 들은 것 말고는 거의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행정고시 사랑” 카페에서 합격자들의 경험담을 읽고, 법률저널에서 제공한 “2010 LEC 연수원 예비과정 및 사법시험 면접기출 Tip”에서 시사?법률 관련 이슈를 확인한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준비가 부족한 탓에 사전조사서도 주어진 시간 내에 다 쓰지 못하고 집단토론에서는 모두발언부터 결론을 얘기하는 등 좌충우돌했으나, 운이 좋아 합격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7. 과목별 교재와 공부방법


(1) 민사소송법
1순환 때 이종훈 선생님 강의를 들으며 이시윤 교수님의 기본서를 보기도 했지만 2,3순환은 이창한 선생님 강의를 수강하며 “통합 민사소송법”과 “사례 민사소송법”을 보았습니다. 약점이던 객관적, 주관적 병합에 대해서는 동차반 보강을 들었고, 6월 14일부터 6월 20일까지 “사례 민사소송법”과 추록을 중심으로 마무리를 했지만 출제예상특강은 듣지 않았습니다.


민사소송법은 강의나 교재만으로 접근하기가 쉽지는 않은 과목이나 처분권주의 및 변론주의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소송절차 전반의 체계를 파악하면 상대적으로 고득점할 수 있는 과목 같습니다. 강의 때 말고는 기본서를 거의 보지 않았으나, 사시에서는 50.57점, 행시에서는 79점의 고득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2) 상법
상법은 초시 때와 마찬가지로 김혁붕 선생님의 2008년 예비순환 필기노트를 중심으로 정리하되, 어음수표법과 보험법은 2009년 1순환 필기노트로 보강했습니다. 1~3순환까지 강의를 들으며 “상법신강”과 “상법사례연습”을 보았고, 특히 약했던 어음수표법과 보험법은 동차반 보강을 들었습니다. 회사법 리마인드 특강 및 해상법 특강을 수강했고 5월 23일부터 6월 4일까지 어음수표법-보험법-총칙과 상행위-회사법 순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상법은 강의를 잘 따라가면 접근하기가 어려운 과목은 아니나 그만큼 다른 수험생들과 차별화된 답안을 작성하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사시의 경우 나름대로 수월하게 썼다고 생각했는데 민법을 제외하고는 제일 점수가 낮았고, 컷보다는 높았지만 20점짜리 문제를 거의 날려버린 헌법보다도 낮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어음수표법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출제가 되지 않아 약간 허탈하기도 했고요. 대신 선택과목이었던 행시에선 50점 만점에 37점으로 행정학 점수에 육박하는 고득점을 하였습니다.

(3) 행정법
민법과 함께 사시, 행시, 입시에서 모두 겪었던 과목입니다. 그러나 행시, 입시의 경우 점수가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행정법을 깊이 있게 준비한 다른 직렬 수험생들과 함께 경쟁하다보니 상대적으로 고득점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1~3순환 강의를 들으며 홍정선 교수님의 “행정법 특강”과 김기홍 선생님의 “행정법 GS1"“행정법 Case Book”을 보았고 약점인 각론 부분은 설 연휴에 류준세 선생님이 진행하신 특강으로 보완했습니다. 마지막엔 김기홍 선생님의 “행정법 쟁점정리 2”로 정리했고요. 4대강 사업, 세종시 문제, 지방선거와 같이 출제될 만한 시사적인 이슈에도 관심을 가지려 노력했습니다.


마무리를 시험 일정 역순으로 하다보니 시험 3일전인 6월 20일 저녁에야 행정법을 볼 수 있었는데, 그럭저럭 이틀 만에 마무리가 되더군요. 그러나 빠르게 정리하다보니 다른 과목에 비해 깊이는 부족했던 것 같고, 헌법을 망친 직후라 더 긴장했는지 생각만큼 고득점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4) 형사소송법
후4법 중에서는 가장 신경 썼던 과목이었고 점수도 54.64점으로 가장 높았습니다. 입법고시 때도 선택과목으로 골라 50점 만점에 30점이 넘는 고득점을 얻었고요. 이지민 선생님의 1~3순환 강의를 들으며 이재상 교수님의 기본서를 단권화 했고, 강의시간에 맨 앞자리에 앉는 바람에 동차반부터 출제예상특강까지 법전을 낭독하면서 조문과 친숙해진 것 같습니다. 경찰관 생활을 통해 얻은 수사 실무 경험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고요.


마무리로는 출제예상특강을 들은 후 6월 5일부터 6월 13일까지 이지민 선생님의 “Key-word Note”를 정리했고 3순환 때 프린트로 제공된 핵심 암기장을 제본하여 함께 보았습니다. 또 최근 시사적으로 이슈가 된 쟁점이 많았던 형사소송법 특성을 고려, 신문 기사나 최신 판례 전문 등을 꼼꼼히 챙겨 보았습니다.

(5) 형법
초시 때 과락의 아픔을 겪고 1순환까지 듣지 못해 정말 신경을 많이 쓴 과목이었습니다. 그래서 2순환 기간 중 오전에는 이인규 박사님의 AP모강을, 저녁에는 이재상 박사님의 GS순환 강의를 수강하기로 했습니다. 바람직한 방식은 아니었으나 그만큼 절박했습니다. 매일 2회씩의 시험을 치며, 앞 수업이 뒤 수업의 예습이 되고 뒤 수업이 앞 수업의 복습이 되는 치열한 열흘을 보냈습니다.


3순환 때에는 이인규 박사님이 2순환 때 프린트로 나누어준 쟁점정리 자료를 정리하며 기초를 다지는 가운데, 이재상 박사님 강평을 들으며 지난해 저를 과락으로 몰아넣었던 신경향 사례들에 익숙해져 갔습니다. 3순환 다음 주에 치른 입법고시에선, 감각도 살아있었던 데다가 “강간죄의 객체”와 같은 무난한 문제가 출제되어 66점으로 선전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사시에서는 이재상 박사님의 동차반 강의와 출제예상특강을 듣는 등 “신경향 형법사례연습”을 4회독하면서 마무리한 결과 52.39점이라는 고득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올해는 신경향의 비중이 그리 높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유형을 막론하고 폭넓게 그리고 깊이 있게 정리하다보면 어떤 시험에서든 고득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6) 헌법
역시 초시 때 과락이나 다름없는 점수를 받았고 1순환도 듣지 못해서, 걱정스러운 과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형법과 마찬가지로 차강진 박사님의 AP모강과 김유향 변호사님의 GS순환강의를 수강했습니다.


3순환 때에는 정회철 변호사님의 “사례헌법연습”을 정리 후 김유향 변호사님의 강평을 들으려 했으나, 때마침 입법고시 2차 시험과 겹쳐 기본권편의 경우 시험은 보지 못하고 강평만 들었습니다. 입법고시는 운 좋게도 3순환 때 살펴보았던 부분이 대거 출제되어 68.33점이라는 고득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김유향 변호사님의 동차반과 출제예상특강을 들었으나 차강진 박사님의 출제예상특강은 일정상 하루밖에 듣지 못하였고, 마무리로는 “사례헌법연습”과 추록을 빠르게 스킵하며 살펴보았습니다.


분량과 시간조절에 모두 실패하는 바람에 1문 20점짜리 문제와 답안지 1면을 하얗게 날려버려, 저공은 물론 과락을 걱정했으나 결과는 컷보다 높은 48점대의 선방이었습니다. 주관식에서 난이도나 점수는 체감한 바와는 많이 다르므로 섣부른 낙관도 금물이지만, 미리 단정적으로 포기할 필요도 없이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7) 민법
2월 이후 가장 신경을 많이 썼던 과목이었으나 그만큼 저를 힘들게 했고 시험에서의 명암도 엇갈린 과목이었습니다. 역시 1순환을 듣지 못한 어려움이 있었으나, 앞선 형법과 헌법에서 강의를 두 개씩 듣다가 너무 고생했기에 이번에는 예습과 복습에 충실하기로 하고 윤동환 선생님의 GS강의를 수강했습니다. 그러나 매일 시험을 치다보니 예습은커녕 복습진도도 점점 밀리고 막판에는 따라가는 게 너무 버겁더군요. 기초가 부족한 것을 절감하고 “민법교안”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김남훈 변호사님의 점심특강을 수강하면서, 윤동환 선생님의 1순환 인터넷 강의를 듣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매일 시험을 치며 진도 따라가는 것도 버거운 3순환에 따로 시간을 내어 1순환 인강까지 듣는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실강에 비해 인강 집중력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라, 1시간짜리 강의를 2배속으로 들으면 2시간이 걸리는 황당한 일들이 되풀이 되며 보강까지 20회분인 강의를 듣는데 거의 80일이 걸렸습니다. 동시에 3순환과 동차반까지 듣는 등 130일 사이에 교안과 “민법사례의 맥”을 중심으로 5번 정도 민법을 반복했습니다. 그 바람에 다른 과목 3순환에 충실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요.


집중투자가 결실을 본 덕분에 입법고시에서는 60.66점, 행정고시에서는 80.33점이라는 경이적인 점수를 얻었지만, 사법시험은 생소한 유형에 고전하다가 간신히 과락을 면하는 점수만을 받았습니다. 컷보다 낮은 것은 물론 초시 때보다 나쁜 성적을 기록한 유일한 과목이었지만, 합격자 발표 때까지 넉 달 동안 과락을 걱정했던 생각을 하면 그마저도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8. 체력 관리와 생활 습관


재시 때에는 체력이 많이 떨어져, 더 이상 1차 막판이나 초시 때처럼 오래 앉아 있지는 못했습니다. 수업을 빼고 하루 평균 4~5시간 정도 근근이 버티며 모의고사에 대비하는 것이 고작이었지요. 또한 입맛을 잃고 고시식당 밥에도 물려 신림동 맛집을 전전했지만, 시간적 경제적 부담이 너무 커서 계속할 수는 없었습니다.


3순환 때에는 너무 피곤해서 모의고사를 보다가 자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4월 중순에는 책을 보기 힘들 정도로 체력이 많이 떨어져 열린내과에서 링거를 맞기도 했습니다. 막판에는 광동제약에서 나온 파워라센이라는 앰풀을 4~5일에 한번 꼴로 복용했고 제법 효과를 보기도 했지만, 3주 간의 대장정 끝에 행시 마지막 날 다시 링거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평소 꾸준히 운동을 해야 했으나 마음의 여유가 없어 미뤄온 것이 아쉬웠습니다.


필기구는 굵고 진하며 부드럽게 써지는 펜을 좋아해 미쯔비시 사의 유니볼을 사용하였으나, 3순환 도중에 좀 더 가볍고 부드럽게 느껴지는 펜텔 사의 에너겔로 바꾸었습니다. 2시간 내에 8면의 답안지를 가득 채우려면, 글씨를 잘 쓰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교수님이 알아보실 수만 있을 정도로 빠르게 답안을 작성하는 것이 관건인 것 같습니다.


출제 유력한 중요 판례 전문이나, 강의 때 배부 받은 프린트 중 기본서에 단권화하기 힘들고 중요한 것은 과목별로 제본하여 틈틈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특히 시사적인 이슈가 출제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화제가 된 사안은 인터넷 검색이나 신문 기사를 통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려 했던 것 같습니다.

VI. 에필로그


2차 시험을 마치고 국회사무처 행정사무관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12주 간의 연수를 통해 동기들과도 친해졌고, 국회에 대해서도 조금 더 깊이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아울러 법제실 행정법제과에서 경찰 관련 법제 업무를 담당하며, 치안 현장에서나 법 공부를 하며 느낀 것들을 의원 발의 입법으로 구체화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기회에서 100%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아쉬움과, 이대로 떨어지면 다시는 도전할 수 없을 것 같은 걱정으로 조심스럽게 발표를 기다렸습니다.


사시 2차 발표날, 다른 일로 국회에 찾아온 친구들과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억지로 시간을 보냈지만 마음이 잡히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해마다 점심시간이면 발표가 났던 것을 떠올리며 연락을 기다렸는데, 점심을 다 먹도록 소식이 없어 낙담한 채 사무실로 돌아왔습니다. 양치를 하다가 걸려온 전화에 합격 사실을 알았고 여기저기서 쇄도하는 축하인사를 받고서야 합격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동료들이 많이 배려해 주긴 했으나 직장을 다니면서 면접을 준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어서, 법률저널에서 제공한 “2010 LEC 연수원 예비과정 및 사법시험 면접기출 Tip”을 간신히 1회독하고 들어갔습니다. 교원단체 가입 교사의 명단 공개와 관련된 법원의 가처분 결정을 주제로 한 집단 토론에서는 가처분의 요건을 중심으로 비교적 무난하게 논리를 전개할 수 있었지만, 개별 면접에서는 공시송달을 확인하지 못한 피고의 구제책을 묻는 질문에 허위주소송달 시의 구제책을 얘기했다가 틀렸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고, 형사소송법상 사인의 위법수집증거의 증거능력을 묻는 질문에 초원복집 사건을 얘기하는 등 실수투성이였습니다. 탈락률이 가장 높다는 둘째 날 오전이어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으나 다행히 심층면접에 가지 않고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VII. 맺는 글


지난 2년간의 시행착오를 돌아보며, 공부에는 왕도가 있을지 모르나 공부 방법에는 왕도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론을 제시했지만 이 중에는 “그래서” 합격했던 것은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격한 것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 그 모든 것을 떠나 운이 좋아서 붙었다는 게 정확하겠지요.


대세를 따라가면 덜 불안하겠지만, 혹시 자신에게 맞는 방법이 소수설이라 하더라도 “大鵬逆風飛 生魚逆水泳”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날고 큰 물고기는 물살을 거슬러 헤엄친다)라는 말처럼, 흔들리지 말고 한 글자라도 더 보는 것이 합격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기적 또한 반복의 힘에서 기인한다고 합니다. 강의, 교재, 방법에 구애받지 말고 집중력 있게 반복하시기 바랍니다.


고시 공부는 멘탈 게임인 만큼, 건강과 스트레스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될 사람은 어떻게든 된다’는 믿음을 갖고, 사소한 자극이나 모의고사 점수에 일희일비하기 보다는 합격이라는 큰 목표를 바라보고 차근차근 벽돌을 쌓아 올리시길 바랍니다.


공부가 잘 안된다고, 진도가 뜻대로 나가지 않는다고 너무 고민하지 마십시오. 어느 시점까지는 오래 참고 버티기만 해도 충분히 밥값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순간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버리면 그만큼의 진도도 나갈 수 없고 자꾸 되풀이되면 자포자기하게 될 것이므로, 힘들더라도 악착같이 버티셨으면 좋겠습니다. “若汝不狂 終不及之”(미치지 않고서는 미칠 수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저마다 이 공부를 처음 시작했던 때의 절실한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 합격에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고민하며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VIII. 감사의 인사


글을 마치며, 수험생활 내내 고마웠던 이름들을 떠올려 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행여 손자에게 짐이 될까 시험 끝날 때까지 버티다가 결국 합격을 보지 못하고 떠나신 할아버지의 영전에 합격증을 바칩니다. 그리고 철없는 아들 때문에 마음고생 많으셨던 어머니와 수험 생활에 여념이 없는 동생에게도 이젠 좀 더 성숙해진 아들, 부끄럽지 않은 형이 되고 싶습니다.


강의를 통해 합격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신 모든 강사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힘들었던 시절 희망을 주신 금동흠, 이지민, 윤동환, 김혁붕, 김기홍 선생님께 각별한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수험기간 내내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었던 대성고시원장님과 덕영빌딩 건물주님, 일천독서실 관계자 분들과 체리, 에덴고시식당의 임직원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마음고생 많던 시기에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신 윤재옥 전 경기경찰청장님과 최무성 팀장님, 어윤삼 경사님을 비롯한 광명경찰서 직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경찰관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언제나 국가와 국민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대학 생활에 이어 신림동에서도 동반자이자 길잡이가 되어준 희수와 재현이에게도 정말 고맙습니다. 두 친구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앞으로도 둘을 믿고 의지하며 따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또한 대학에서부터 제주, 광명, 신림동에 이르기까지 줄곧 함께하며 힘든 시기마다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준 주호에게도 감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부족하나마 이제는 저 또한 주호에게 작은 힘이 되고 싶습니다.


수험 과정 내내 중흠, 택형, 연석, 현웅이의 조언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아직 힘든 수험과정에 있는 현우, 재빈, 범석, 창민, 상현, 진성, 태우, 형준, 계형, 희환, 갑철, 창균이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며, 시험 준비 중인 모두의 합격을 기원합니다.


힘든 치안업무에 시달리면서 수험생의 푸념까지 들어주느라 고생 많았던 승재, 기둥, 서현, 성진, 성헌이, 그리고 어느 한 사람 소중하지 않은 이 없는 경찰대학 21기 동기들과 원철, 정배, 승환, 병찬, 재환, 희호, 동한 형부터 정, 상홍, 상우, 효정, 혜리, 성곤, 관동이까지 입법고시 26기 동기 모두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연수 기간 동기 못지않게 잘해주신 김준기, 채미강, 문은진, 이종민, 김병관 사무관님과 이현경, 유재원, 임주현, 이주연 변호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공부의 시작이고 끝이었던 그 분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가득 담아 인사를 전합니다.


어려운 상황에도 대학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해준 경찰대학과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제공해 준 고시라는 제도에 감사합니다. 특히 고시가 없었다면 저는 이 자리에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부족한 저에게 기회를 주신 만큼 성실한 공직자, 훌륭한 법조인이 되기 위해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실력 있는 젊은이들이 자기 힘으로 공직과 법조계에 진출할 수 있도록, 고시 제도가 계속되길 소망합니다.


수험생활 내내 많은 정보를 제공해 준 것은 물론, 부족한 저에게 수기를 쓰도록 지면을 허락해 준 법률저널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많은 수험생들에게 희망을 주는 등불과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보잘것없는 글 끝까지 읽어주신, 꼭 신림동 어딘가에서 스쳐 지나갔을 것만 같은 모든 수험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새해에는 기필코 희망하는 시험에 합격하시기 바랍니다.

 

※ 고시 3관왕의 합격비법 '1'을 읽지 못한 독자를 위해 같이 게재합니다.

 

고시 3관왕의 합격비법(1)-‘尙有十二 舜臣不死’라는 이순신 제독을 떠 올리며...

I. 들어가며


법률저널의 부탁을 받고 몇 번이나 사양한 끝에 컴퓨터 앞에 앉기는 했지만, 저는 글을 쓸 정도로 대단한 사람은 아닙니다. 어쩌다보니 3관왕이라는 분에 넘치는 영광을 얻었지만 처음부터 3관왕을 목표로 공부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어느 한 가지 시험이라도 꼭 합격해서 수험생활을 마무리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 평범한 수험생이었을 뿐입니다. 셋 중 어느 하나에 합격하신 분이라면 다른 시험도 충분히 합격할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분들보다 낫기는커녕 시행착오로 가득한 수험생활을 해온 제가 이런 수기를 쓴다는 게 여러 가지로 민망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부끄러운 수험생활의 기록일망정 지금 공부하는 분들께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부족하나마 수험생활의 과정을 떠올려 보고자 합니다.
 
II. 공부를 시작한 계기

저는 서울 광문고 3학년이던 2000년 아버지가 산업재해로 돌아가셨으나, 주변 많은 분들의 보살핌에 힘입어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와 경찰대 법학과에 합격했습니다. 대학 선택을 고민하다가 하루라도 빨리 공직에 진출하여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경찰대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준비 없는 대학생활은 힘겨웠습니다. 제복과 기숙사로 상징되는 통제로 학업에마저 의욕을 잃었고 결국 3점대 초반의 학점과 중하위권의 성적으로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경찰에 대한 애정과 훌륭한 동기들을 얻게 된 것이 대학생활이 제게 준 축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졸업 후 제주해안경비단과 광명경찰서에서 근무하며 맞닥뜨린 현실은 더욱 만만치 않았습니다. 격무 끝에 A형간염을 얻는가 하면, 주취자들과 실랑이를 벌이며 밤을 새우는 날들이 계속되었습니다. 2008년에는 형법, 경찰실무, 행정법의 3과목을 보는 승진시험에 응시했으나 합격 예정인원의 3배수에도 들지 못하며 떨어졌고, 사회적 약자를 돕는 전문 수사관이 되겠다는 꿈으로 여성청소년계 팀원 모집에도 응모했으나 역시 탈락했습니다.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08년 6월의 촛불시위였습니다. 사회적 갈등의 현장에서 그 어려움을 온 몸으로 감당해내면서도 비난의 표적이 되는 동료들의 아픔을 느끼며 경찰이 생각하는 정의와 시민들이 생각하는 정의가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을 고민하게 되었고, ‘법대로’한다는 경찰에게 국민적 분노가 집중되는 모습을 보며 제도적으로 뒷받침되는 권한과 깊이 있는 법 실력이 없다면 소신 있게 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2008년 7월 1일부터 고시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III. 1차 수험생활(2008. 7. 1. ~ 2009. 2. 21.)

1. 기본강의


233일 남은 시점에서 51회 사법시험 1차시험을 목표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뒤늦은 출발이었으나 부족한 시간은 성실함과 집중력으로 만회하겠다는 의지로 충만해 있던 시기였습니다. 이미 신림동에서는 민법과 형법의 기본강의가 모두 끝나고 헌법 기본강의가 한창이었으나 수험생활의 성패는 민법에 달려 있다는 판단 하에 모 대학 고시반에서 진행하던 정일배 변호사의 민법강의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 사정으로 총칙도 끝내지 못하고 신림동으로 옮겨 이태섭 선생님 기본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의 뜨거운 의지는 여자친구와 헤어지며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낯선 신림동 분위기와 무더운 날씨 그리고 이해조차 되지 않는 민법 문장들에 막혀 미아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가슴을 날카로운 칼로 저며 내는 듯한 아픔과 무언가 화끈한 것이 치밀어 오르는 듯 답답한 마음에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어 하루에 세 시간을 공부하는 것도 버거웠지만, 어렵게 얻어낸 기회인데도 이대로는 틀림없이 낙방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더 우울해지곤 했습니다.

2. 진도별 모의고사


가까스로 기본강의를 끝내고 진도별 모의고사 시즌이 돌아왔습니다. 헌법과 형법 기본강의를 듣지 않은 채 모강을 듣는 것이 옳은가 고민했지만 기왕 신림동에 왔으니 최대한 시스템을 따라가자는 생각으로 집중강의를 수강하며 서브노트를 만들어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또한 민법 기간에는 형법, 형법 기간에는 헌법 기본강의 테이프를 들으며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려 했지만, 매일 계속되는 시험의 압박과 진도에 대한 부담으로 성적(민법 38점, 형법 55점대)도 저조했고 테이프(형법 106개 중 26개, 헌법 86개 중 68개)도 다 듣지 못했습니다. 마음은 급했으나 실력은 미치지 못하고, 점수도 나빴지만 문제에 대한 해설조차 이해할 수 없었던 한심한 수험생이었습니다.


이 무렵, 친구 결혼식에 갔다가 다들 잘 나가는데 혼자 뭐하고 있는 거지? 하는 자괴감에 합격할 때까지 외부 교류는 최대한 자제할 것을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집과 신림동을 버스로 오가며 수업을 듣고 독서실에 다녔는데, “전쟁터에 나온 장수가 출퇴근하는 법이 있는가. 떨어지더라도 신림동에서 죽자”라는 생각으로 10월 1일부터 신림2동 고시원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옆방 사는 친구 희수의 권유도 있었지요. 한동안은 불면증에 잠 못 이루었고 언덕길을 오를 때면 이 고비를 몇 번이나 넘어야 합격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한숨짓기도 했지만, 가까이에 친구가 있어 좋았고 원장님의 배려로 크게 불편한 것 없이 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일 늦게 시작한 헌법 모강 기간에는 다 듣지 못한 기본강의 테이프를 마저 끝내는 가운데 실강으로 집중강의를 들었더니 짧은 기간 반복효과가 생겨서 조금 이해가 되는 듯 했습니다. 강의를 통해 판례 전문을 분석하여 결론을 이끌어내는 논리구조를 파악하게 되자 헌법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고 모의고사 성적도 안정이 되었습니다. 이 무렵부터 친구 희수, 재현이와 함께 공부하기 시작하며 심리적으로도 한결 여유가 생겼고, 오전 강의를 듣게 되니 생활 습관도 아침형으로 바뀌어 공부시간 확보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앞자리에서 수업을 듣고 싶어 5시 40분에 일어나 6시~6시 10분 사이에 자리를 맡곤 했는데, 새벽에 고시원을 나서면 아직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별빛이 반짝이고 12월의 칼바람이 매섭게 얼굴을 때리곤 했습니다. 힘들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꿈속을 헤매고 있을 때 앞서 나가는 듯한 느낌이 상쾌했고, 몇 명 와 있지 않은 강의실에 도착하면 비록 지금 내 실력은 이 강의실에서 꼴찌일지 모르지만 성실함 만큼은 열 손가락 안에 들 수 있으리라는 사소한 자부심으로 행복했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尙有十二 舜臣不死”(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고 이순신이 죽지 않았다)라는 결의로 명량해전에 임했던 이순신 제독을 떠올리며 용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치열한 시간들을 보낸 끝에 헌법은 평균 72점대의 성적으로 성적우수자에게 주는 5만원의 장학금을 받게 되었고 공부를 시작한 후 처음으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무렵 전 범위 모의고사를 보았는데, 헌법 83, 형법 57, 민법 40점으로 헌법에 비해 민법과 형법은 갈 길이 멀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3. 마무리


진도별 모의고사가 끝나고 시험이 임박함에 따라 “모강을 거치며 잘 정리된 기본서를 반복하여 회독수를 늘려가는” 공식을 따라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제 기본서에는 정리는커녕 낙서와 구별 안 되는 밑줄만 몇 개 그어져 있던 터라, 과감하게 기본서를 포기하고 OX문제집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민법은 OX문제집 “핵심지문총정리”(이하 핵지총)를 반복하되, 기본서의 흠결은 조문+판례+기출의 3종 세트로 메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하여 12월 15일부터 권순한 박사의 객관식판례강의를 수강했는데 오전 오후 두 타임 강의를 듣고 나면 정리할 시간도 빠듯하더군요. 강의 진도는 하루 두 타임에 평균 120페이지 정도 나갔지만, 남은 한 타임에 아무리 열심히 복습을 해도 80페이지 이상을 따라잡기가 힘들었으니까요. 결국 복습을 포기하고 강의에 집중하되, 남는 시간은 김태윤 선생님의 조문강의 테이프를 듣고 법률저널에서 나온 진도별 기출문제집을 풀며 예상지문을 외워 나갔습니다. 


1월 4일 실시된 전범위 모의고사에서는 민법 60점, 평균 70점을 목표로 노력했으나 헌법 72, 형법 59, 민법 46, 국제법 30점에 그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이후 핵지총을 교재로 한 권순한 박사의 마무리 강의를 들으며 강의 진도에 맞추어 혼자 지문을 풀고 아는 지문, 애매한 지문, 모르는 지문을 O△X로 표시하되, 애매하거나 모르는 지문은 반드시 해설을 읽고 그 자리에서 외우는 식으로 핵지총을 1회독하였습니다. 그 결과 1월 18일 모의고사에서는 민법 70점을 받아 조금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로는 표시된 지문을 중심으로 핵지총을 반복하되, 확실히 외운 지문은 지워나가는 방식으로 4회독 만에 핵지총을 마스터할 수 있었습니다. 확인사살을 위해 한번이라도 표시된 지문만 다시 한번 돌리는 방식으로 마지막 정리를 하였습니다.


형법은 신호진 선생님의 마무리 강의를 듣고, 그 교재였던 OX문제집 “출제의 포인트”를 핵지총과 같은 요령으로 반복하였습니다. 판례는 “형법판례총정리”를 보려다가 분량 탓에 포기하고, 경찰승진시험 준비할 때 봤던 “2백형”이라는 서브노트형 교재와 “1백형”이라는 핸드북형 OX로 보완했습니다.


헌법의 경우 민법과 형법에 바쁘면 아예 안 보게 될까봐 금동흠 선생님의 객관식 판례강의와 부속법령 특강을 들었습니다. 최종정리는 정회철 변호사의 기본서로 할 생각이었으나 진도 맞추기가 쉽지 않아서 중요하다 싶은 20개 주제를 발췌독하는 식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선택과목인 국제법은 모강을 수강한 것 이외에는 전혀 살펴보지 못하다가 설 연휴에 이종훈 선생님의 마무리 강의를 들으며 교재를 정독했습니다. 복습 진도가 밀려 외시생도 아니면서 시험 20일을 앞두고 국제법에 시간을 1주일 가까이 투자하는 등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고생한 덕분에 2월 1일 모의고사에서는 40점, 2월 8일 모의고사에서는 46점이라는 고득점을 하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기본 3법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최신판례의 경우 민법은 실강으로 듣고 형법은 테이프를 구해서 학습하였으며 헌법은 판례 강의를 통해 정리하고 따로 강의를 듣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5번의 전범위 모의고사를 치르며 실전 감각을 키워나갔습니다. 시간이나 결과에 대한 심리적 영향 때문에 걱정도 되었지만 시험을 치르는 노하우도 실력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점수보다는 시간 배분이나 낯선 문제에 대응하는 요령을 집중적으로 고민하였던 것 같습니다. 2월에 친 모의고사는 둘 다 헌법 70점대에, 민법 58점과 형법 56점으로 점수대는 비슷하였으나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 했고, 일요일 오전은 교회를 가지 않으면 어영부영 보내게 마련인데 모의고사라도 쳤으니 밥값은 했다는 생각으로 시간에 대한 부담도 갖지 않으려 했습니다.

4. Final 그리고 시험장에서


그 즈음부터 마지막 날 무엇을 보며 최종정리를 할 것인지를 고민했습니다. 진도별 모의고사 막판부터 수첩을 만들어 여러 번 들여다봐도 잘 외워지지 않는 부분과 단순 암기사항, 머리글자 등을 적어 두기 시작했습니다. “10회독 한 사람보다 방금 본 사람이 더 무섭다”는 수험가의 격언처럼, 시험 직전에 봐서 문제만 풀면 된다는 생각으로 막판에 한꺼번에 볼 요량이었습니다. 특히 헌법의 헌정사, 각종 정족수와 같은 통치구조에 관한 암기사항과 국제법의 조약, 판례들을 집중적으로 적어두었습니다. 1교시 과목은 잘 보면 기선을 제압할 수 있지만 못 보면 심리적 타격이 크다는 생각으로 시험 전날과 당일 오전에는 헌법과 국제법에 더욱 신경을 써서 보았던 것 같습니다.


아울러 핵지총과 출제의 포인트에서 한번이라도 표시된 지문을 전부 골라 다시 읽고 확인했으며, 헌민형 조문들을 스킵하면서 빠르게 1회독하였습니다. 막판까지 약했던 형법은 1백형, 2백형으로 판례를 스크린하면서, 자주 출제되는 총론상의 이론적 쟁점들을 학설에 따른 결론과 비판까지 정독하여 3~4점으로 배점되는 박스형 문제에 대비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전년도 1차 시험 기출문제를 구해 실전처럼 시간 내에 풀어 보았습니다. 하루 전날이다 보니 시간에 부담도 되고 이미 눈에 익숙한 지문이 많아 큰 효과가 없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실전과 거의 유사한 수준의 점수가 나왔고, 형법에서 37번까지 잘 풀다가 38번에서 막혀 시간을 오버하는 실수를 했는데 이 경험이 다음날 시간 관리할 때 약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시험 전날, 일찍 자리에 누웠는데 잠이 들지 않더군요. 1시간가량을 뒤척거리다가 한참 불면증이던 시절에 복용하던 수면유도제 반일치를 먹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시험날은 아침식사 후 학원에서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시험장까지 갔습니다. 1교시에는 생소한 지문과 판례들이 다소 보여서 어려움을 겪었으나, 먼저 푼 국제법에서 시간을 번 덕분에 그럭저럭 쫓기지 않고 시간 내에 마무리 지었던 것 같았습니다.


고시식당에서 준비해 준 김밥으로 점심을 먹고 2교시에 임했는데 몇 문제를 빼고는 느낌이 너무 좋았습니다. 여기까지 합격을 노려볼 만하다는 생각으로 민법에 대한 긴장감이 더 커졌습니다. 그런데 민법은 너무나도 어렵더군요. 1문제당 최대 2분을 넘어가면 다음 문제로 넘어가려 했는데, 시험 시작 후 10분이 지난 시점에서 5번 문제까지 하나도 풀지 못했습니다. 문제별로 확실히 정답이 아닌 지문을 추려내 2-3개 정도로 압축하기는 했지만 정작 답을 찍어내지 못하니 눈앞이 캄캄해지며 아찔한 느낌이 들더군요. 결국 발상을 전환하여 모의고사 때 수없이 연습했던 대로 뒤에서부터 풀기 시작했습니다. 앞부분에 어려운 문제들이 많이 배치된 탓인지 뒷부분은 상대적으로 수월했고 앞부분을 다시 풀 때쯤에는 감각이 살아난 덕인지 1번부터 15번까지 중 1번만 틀리고 나머지는 다 맞추었습니다. 난이도나 점수는 주관식 뿐 아니라 객관식도 체감한 바와는 많이 다르므로 끝까지 확인해 봐야 아는 것 같습니다.


가장 자신 없었던 민법부터 채점했는데 의외로 선전하는 것을 보며 합격을 예감할 수 있었고, 가채점 결과 합격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여유 있는 점수를 얻어 바로 2차 시험 준비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동차를 준비하려면 1차 준비 기간에 2차를 함께 공부하기 보다는 1차 점수를 여유 있게 받아서 합격자발표 때까지 걱정 없이 2차 공부에 전념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습니다.

5. 행정고시 1차 응시


2009년 사시 1차 접수 후 행시 접수 기간이 있었습니다. 사시 1차 합격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라 자연스럽게 1차 시험 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합격하면 2차 준비를 하면 되지만, 떨어지면 한동안은 1차 기본강의든 2차 예비순환이든 마음을 붙이기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어렵게 들어온 신림동인데 허송세월하고 싶지는 않아서 사시에 떨어질 경우, 행시 1차에 응시하여 합격하면 2차 시험까지 행시 준비를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2차에서 법 과목을 많이 보는 직렬에 응시할까 고민했으나 1차도 통과하기 힘들 것 같아서 가장 많은 인원을 뽑는 일반행정에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사시 1차를 앞두고 PSAT를 동시에 준비할만한 여유는 없어서 PSAT 공부는 사시 1차가 끝나고서야 시작했습니다.


문제 유형을 익히고 시간 내에 푸는 훈련을 하기 위해, 법률저널에서 나온 “2008년 PSAT 기출문제 분석”을 사다가 풀었습니다. 전년도 행시와 입시 기출 문제를 풀었는데 평균 60점대 초반 정도가 나와서 잘하면 합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실전에선 의외로 언어논리 92.5, 자료해석 72.5, 상황판단 87.5점으로 평균 84점이 넘는 고득점을 받았습니다. 통계와 대조해 보니 일행 6등이었고 행정직 전체를 통틀어서도 20등에 해당되는 좋은 성적이더군요.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OX문제를 많이 풀면서 객관식 감각이 최고조에 올라와 있었고, 4문제를 풀지 못한 채 찍었던 자료해석을 제외하고는 시간관리에 성공한 덕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음해의 경우 시험시간도 10분씩 늘었고, 시험 전 3주 동안 매주 학원 모의고사에 응시하며 준비했는데도 점수가 크게 오르지는 않았거든요. 법 관련 직렬로 응시할 걸 그랬다는 후회도 들었지만, 어차피 사시 2차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므로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6. 건강과 생활습관, 사소한 이야기들


함께 공부하던 친구가, 한국시리즈를 준비하던 야구선수들이 단체로 독감예방접종을 맞았다는 기사를 보고는 자기도 독감주사를 맞았다더군요. 시험 준비하는 입장에서 사소한 변수도 곤란했기에 저도 독감예방주사를 맞았고 다행히 강행군 속에서도 특별한 건강상의 문제는 없었습니다. 다만 1차 시험 열흘 전에 전범위 모의고사를 치고 왔더니 몸살기운이 있어 푹 쉬었던 적이 있습니다. 진도 부담이 상당했지만 상태가 악화되면 아예 시험을 못 볼 우려가 있어서 하루를 포기하더라도 건강을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다음날부터는 정상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건강, 체력과 관련된 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정신력이 강해도 몸이 아프면 버틸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잘 먹고 잘 자야 하는데, 수험생이 되다보니 생활환경이 여의치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저 같은 경우 고시식당 밥을 먹을지언정 친구들과 함께하며 입맛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가끔 돈을 들여 영양보충도 하곤 했습니다. 또 잠을 줄이지 못하는 스타일이라 적어도 하루 6시간의 수면시간은 확보하되, 늦게 잠들면 같은 시간을 자도 더 피곤하고 기분도 좋지 않으므로 공부를 일찍 마치더라도 가급적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려 했습니다.


신림동에서 생활한 초기에는 불면증 때문에 고생이 많아서 수면유도제를 복용한 적도 있지만 1일치를 다 먹으면 다음날 오전까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졸려 잠이 정 안들 때 반일치만 먹곤 했습니다. 1차 시험 전일에도 그랬고요. 부득이한 경우를 위한 최후의 수단이기는 하나 별로 권할만한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 공부의 최대의 적은 인터넷이었습니다. 처음 공부를 시작했을 때 친구에게 들었던 조언이 “너는 인터넷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폐인 수준으로 인터넷에 중독된 저를 알았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공부는 어렵고 마음은 잡히지 않아 유혹에 굴복하기 일쑤였고, 독서실 지하의 인터넷휴게실도 모자라서 PC방으로 나가는 일도 자주 있었습니다. PC 앞에 앉으면 공부할 때와는 달리 어찌나 시간이 잘 가고 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은지 두세 시간을 후딱 보내기 마련이었습니다. 친구와 같은 독서실에서 공부하게 되며 인터넷을 끊기로 마음먹고 자리를 휴게실과 멀리 떨어진 4층으로 옮겼습니다. 전에는 화장실을 갈 때 인터넷 휴게실을 꼭 들르게 마련이었는데, 자리를 옮기니 화장실을 가거나 쉴 때에도 4층이나 옥상을 이용하게 되므로 인터넷 접근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었고, 자리를 오래 비우거나 인터넷을 하다가 친구를 만나면 민망하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인터넷과는 멀어졌습니다. 1,2월에는 원서접수 등 꼭 필요한 때에만 인터넷을 하게 되어 공부시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공부시간을 늘리기 위해서 친구의 조언에 따라 스톱워치로 매일 공부시간을 체크하여 달력에 기록하고, 목표치(학원 강의를 제외하고 하루 7시간)를 초과하면 O표를, 미달하면 X표를 치며 공부량을 확인했습니다. 대신 시간만 채우면 진도를 밀리는 것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한 과목만 수십 년씩 강의하신 대 강사 분들도 계획된 진도를 지키지 못해 보강을 하는데 여러모로 부족한 내가 계획을 어기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휴대폰은 가지고 다녔지만 통화하면서 시간을 빼앗기는 것은 물론 바깥사람들과 접촉하면 마음이 흔들릴까 싶어서 거의 전원을 꺼두었다가 식사시간에 잠깐 확인하여 필요한 연락만 취했습니다. 송년모임이나 경조사 등에 일체 참석하지 못해 마음이 무거웠으나 지금 흔들리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될 거라는 생각으로 꾹 참고 버텼던 것 같습니다. 수험생 입장에서 최고의 안부는 합격자 명단에 걸린 내 이름 석자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지요.


그 밖에 사소한 것들로 컴퓨터용 사인펜은 동아에서 나온 둥근 촉 사인펜이 마킹시간을 절약해 주었고, 벨이 울림과 동시에 시험지봉인을 바로 뜯을 수 있도록 칼을 준비했던 것 같습니다. 승진시험 준비할 때에 실패했던 생리현상 통제를 위해, 시험전날에는 지사제를 먹고 커피나 물, 기타 음료수도 최대한 자제했던 기억이 납니다.

IV. 동차를 목표로(2009. 2. 23. ~ 2009. 7. 3.)

1. 동차반 수강


행시 1차를 치고 바로 동차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생동차는 어려우니 1순환 때부터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도 들었으나, 7개월 반만에 1차 시험에 합격한 자신감과 함께 합격 인원은 해마다 줄어드는 반면 동차에 실패해도 실력은 남을 거라는 생각으로, 친구 희수와 의기투합하여 동차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친구와 함께 예비순환을 인터넷 강의로 듣고 동차반은 실강으로 수강하며 짧은 기간에 2회독을 확보했습니다. 시험에도 꼬박꼬박 응시하며 답안 쓰는 법에도 익숙해지려 노력했고요. 중간에 민사소송법 수강을 포기했다가 다시 영상반에 합류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예비인강, 동차실강’으로 상법, 민소법, 형사소송법을 2회독할 수 있었고 행정법의 경우 예비순환과 동차반을 전부 실강으로 수강했습니다.


그러나 처음 접하는 후4법은 어려웠고, 1차 합격으로 목표가 달성되었다는 생각에 마음도 해이해져 1차 때만큼 열정적으로 공부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기본 3법의 경우 후4법에 바빠 동차반 수업 시간 외에는 거의 신경을 못 썼습니다.

2. 시험 전 정리


2차시험 한 달 전부터 계획을 세워 시험과목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실력도 시간도 없어 4-2-1은 꿈도 꾸지 못하고, 그저 얇은 교재들을 골라 이해 및 암기될 때까지 읽어나갈 뿐이었습니다. 상법의 경우 김혁붕 선생님의 2008년 예비순환 필기노트를 어음수표-보험-총칙과 상행위-회사법의 순으로 읽으며 회사법 리마인드 특강을 수강했습니다. 형소법은 이지민 선생님의 key-word note, 민소법은 이창한 선생님의 사례집을 통해 정리했습니다. 동차반 수업을 듣고 남는 시간에 정리를 하려다 보니 심한 과목은 2주 가까이 걸리기도 했고, 시험 보는 역순으로 정리를 하다 보니 시간에 쫓긴 행정법은 동차반 쟁점정리 교재도 다 보지 못한 채 시험장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헌법과 형법은 동차반 필기 노트를 들여다보았으나 크게 신경 쓰지는 못했고 민법은 윤동환 선생님의 암기장을 중심으로 논리 사례 구조를 익혀 나갔습니다.


개별 쟁점에서 부딪힐 경우 시간과 실력 모두 부족한 초시생이 이기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판단에서 쟁점에 대한 암기는 요약서나 암기장으로 갈음하는 대신, 전체의 체계나 논리적 흐름을 파악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특히 소송법에서는 프로세스 전반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경험이 초시는 물론 재시 때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네요.

3. 시험기간


시험 기간에는 새벽 1시 40분쯤 자고 5시 40분쯤 일어났고 부족한 수면은 저녁식사 후 잠깐의 낮잠으로 보충했습니다. 방이나 택시를 잡을 엄두가 나지 않아서 학원에서 운행하는 버스로 시험장까지 이동했습니다. 첫날 헌법시험을 앞두고 감독관이 지시하는 대로 순순히 가방을 맡기고 책상에 앉아 있는데, 많은 수험생들이 시험장 뒤편에서 끝까지 책을 들여다보는 풍경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시험지를 나누어 줄 때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기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매 쉬는 시간 화장실을 다녀왔지만 긴장을 해서인지 얼마 되지 않아 생리적인 욕구를 느꼈고, 충분히 식사를 해도 늘 허기가 졌습니다. 혹시 시험에 방해될까봐 물과 음료수, 국물이 있는 음식은 거의 먹지 못하고 김밥과 바나나, 초콜릿 등으로 끼니를 떼웠는데 다행히 소화가 안 되는 일은 없더군요.


첫날 헌법에서 “사법권의 독립”이 큰 문제로 출제되는 등 대부분 과목에서 어느 정도 준비한 쟁점이 조금씩은 출제되어 아무 것도 못 쓰고 앉아 있는 고역은 피할 수 있었지만, 실력도 답안지 쓰는 요령도 부족하다 보니 분량 조절이나 목차 잡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대부분 과목에서 7면정도 답안을 작성할 수 있었으나, 형법은 1문에서 너무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바람에 6면도 채우지 못하고 결국 과락을 맞았습니다. 평균 5점차 불합격, 컷을 넘긴 과목은 없었으나 후4법은 44~45점에서 비교적 안정된 점수가 형성되었고, 민법도 65점대를 기록하는 등 나름대로 선전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형법 과락은 물론 1차 때 지식만을 믿고 안이하게 생각했던 헌법도 40.55점에 불과하여, 1차와 2차는 별개라는 점과 기본 3법에 보다 많은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이후 실력이 쌓이며, 많이 부족했으나 운이 좋아 높은 점수를 얻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합격을 목표로 치열하게 공부하며 쌓인 실력과 넉 달 만에 대부분 과목에서 과락을 면했다는 자신감, 4일간 실전시험을 치르며 0.01점이라도 더 받기 위해 노력했던 경험들은 이듬해 재시를 치는 데에도 든든한 밑천이 되었습니다.

4. 행정고시 2차 응시


사시 2차를 마치고 행시 2차 기간이 되었습니다. 동차 준비를 하느라 행시는 전혀 신경 쓰지 못해서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으나, 결과를 떠나 좋은 경험이 되리라는 생각으로 끝까지 응시했습니다. 법과목은 따로 준비하지 않았고 경제학은 황종휴 선생님의 “다이제스트 경제학”, 정치학은 신희섭 선생님의 “수험 정치학”, 행정학은 이원희 교수님의 “쟁점분석 행정학”을 교재로 벼락치기에 나섰습니다. 첫날 행정법은 그럭저럭 답안을 채울 수 있었으나 점수는 다소 실망스러웠고, 경제학은 벼락치기만으로는 역부족이었는지 게임이론에 대한 문제만 조금 쓸 수 있었습니다. 결국 22점을 받았고 당시에도 과락이 확실했으나, 2차 시험장에 들어갈 수만 있어도 좋을 것 같던 1차 때의 간절했던 마음을 떠올리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응시했습니다. 정치학도 생소하기는 마찬가지였으나 헌법에서 자주 언급되는 다수결원리가 나와서 56.33점이라는 생각지도 못했던 고득점을 했고, 선택과목이었던 민법도 다른 과목보다는 그나마 수월하게 썼던 것 같습니다. 행정학은 전혀 예상도 못했던 신제도주의가 출제되는 바람에 횡설수설했으나 의외로 과락을 면했고 이때의 자신감이 이듬해 행정학에 대한 두려움 없이 법무행정에 응시할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지칠 대로 지친 상황에 떨어질 게 뻔한 시험을 1주일씩 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공부 시작할 때에만 해도 생각지도 못했던 “여름에도 시험보자”는 목표를 두 개나 달성하여 쟁쟁한 경쟁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시험을 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꼭 합격할 수 있도록 실력을 키워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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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023-01-06 15:52:25
ho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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