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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세 가지 시험과 현실 속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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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세 가지 시험과 현실 속의 우리
  • 법률저널
  • 승인 2010.12.1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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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학장/변호사/시인

성경 누가복음 4장에는 예수가 선지자로 나서기 직전 사탄으로부터 세 가지 유혹을 당하면서도 꿋꿋이 이를 이겨내는 모습이 나온다. 그 첫 번째가 먹는 문제이다. 마귀가 광야에서 배고픔에 시달리던 예수를 향해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유혹하였다. 이에 대해 예수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예수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달리 사는 그 무언가가 있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 무언가가 무엇일까? 나는 아직도 그 무언가를 찾고 있는 중이다.


두 번째가 세상권력의 문제이다. 마귀는 예수에게 천하만국을 보여주며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네게 주리라.”고 높은 자리를 줄 것으로 유혹했다. 이에 대해 예수는 다시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답변했다. 세상권력이 아닌 절대자를 향한 절대적 가치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갈파한 것이다. 세 번째가 마귀가 예수를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로 끌고 가 “뛰어 내리라, 하나님의 사자들이 너를 받아 지키리라.”고 유혹하였다. 어리석은 만용적 행동을 하도록 하여 사람들로부터 명성-인기를 얻도록 해 주겠다고 꼬드긴 것이다. 이에 대해 예수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일침을 가했다. 어리석은 인간들이 절대자인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되지도 않을 경거망동을 함부로 해서도 안 되고 설령 뛰어내려 하나님이 이를 받아 지켜줌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행동을 보고 환호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위 이야기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신심이 깊은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실제로 마귀들에게 끌려 다니며 위와 같은 시험을 이겨냈을 것이라고 믿을 것이다. 나야 신심이 깊지 않으니 감히 그러한 믿음이 있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그렇지만 위 세 가지 시험을 당했다는 이야기에 대해 나름대로는, 예수는 당시 로마의 속국이 되어 식민지배를 받고 있던 자신의 조국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하여, 패배 의식에 사로잡혀 사분오열되어 있던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로 결집시켜 힘을 키우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계몽목표를 세워야 할 것인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학적 기반을 확립한 자기 결심의 과정이 아니었겠는가 미루어 짐작해 본다.


위 세 가지 유혹의 키워드는 빵, 권력, 어리석은 만용-인기이다. 예수의 첫 번째 철학적 인식은 세상 사람들 모두가 가장 많이 매달리는 먹는 문제, 즉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기 위해 양심을 팔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는 죽는 날까지 집 한 채 없어, 오죽하면 하룻밤 잠 잘 거처를 찾아 동분서주하는 제자들을 향해 “인자가 머리 둘 곳이 없구나.” 하며 거처할 곳이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였을까. 마지막 공생애를 마칠 때 그의 제자 가롯 유다는 은전 30냥이 욕심나 자신의 스승인 예수를 반역죄로 고발하였는바, 예수가 가난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의 제자들에게 풍족한 재물을 나눠주었더라면 아마 제자인 가롯 유다에게 배신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돈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예수의 결심이 역설적으로 그의 목숨을 앗아간 결과가 되고 말았음을 알 수 있다. 세상사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예수의 두 번째 철학적 인식은 세상권력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이라 하겠다. 예수가 갈릴리 호수가에서 설교할 당시 수천 명의 무리가 “호산나, 왕의 왕”이라며 구름떼처럼 몰려들어 그를 추종하였음에도 예수는 그들을 조직화하지 않았고, 단지 진리의 말씀만을 설파하였을 뿐이다. 그의 제자들은 예수가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으로 믿고, 예수가 왕이 되었을 때 자신들의 권력서열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놓고 다투는 장면이 성경에 기록되고 있는바, 스승과 제자의 길은 그렇게 서로 달랐던 것을 알 수 있다.


예수의 세 번째 철학적 인식은 어리석은 행동을 통한 군중의 시선을 사로잡는 인기나 명예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며 선한 일에 힘썼던 예수였지만,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목을 매기도 했지만, 예수는 그들이 멀지 않은 날에 자신을 향해 돌팔매질을 할 것이라는 것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성난 외침을 퍼부을 것임을 알았기에 인기라는 게 하루아침의 물거품에 불가하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수가 2000년 전 고민했던 돈, 권력, 인기(명예)의 문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엄청난 사탄의 괴력이 되어 군림하고 있다. 그러한 유혹을 이겨냈던 예수가 십자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듯, 그러한 유혹 앞에 굴종하고 있는 우리 역시 역사의 심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기독교 장로 출신의 이명박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때 많은 기독교인들은 장로대통령의 출현에 대해 “하나님, 아멘”이라고 기도했음을 나는 알고 있다. 지금도 대한민국 거의 모든 교회의 예배시간에 “장로대통령인 이명박 대통령에게 하늘의 권세를 주어 세상을 올바로 다스리게 해 달라.”는 기도가 끊이지 않음도 사실이다. 이와 더불어 세상 모든 다른 종교를 사탄의 종교로 규정짓고, 모두 멸망하게 해달라는 유일신사상에 충실한 기도를 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예수가 공생애 첫 활동을 시작하면서, 돈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겠다는 결심을 하였지만, 외관상 그를 따르는 이명박 장로대통령은 국민들의 돈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의 철학적 기반을 보면, 대기업의 CEO출신답게 돈 문제,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는 아주 천박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이란 게 묘한 거라,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는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아니, 빵만으로 사는 게 아니라고 설파한 예수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번에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된 2011년도 예산안에 대해 뒷말이 무성하다. 소위 형님예산, 영부인예산이라는 이름으로 회자되는 비상식적(?) 예산편성이 야당 및 국민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고, 불교계에 약속했던 템플스테이션 예산을 비롯하여 저소득층에 대해 지원하기로 약속했던 예산들이 줄줄이 누락되는 황당한 현상을 연출하고 있음을 보면서 말 그대로 후안무치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예수가 두 번째 한 결심, 세상권력으로부터 자유롭겠다는 다짐, 그걸 우리는 모두 권불십년이라는 말로 다들 알고 있다. 현재 힘을 가졌다고 그 힘이 영원할까, 언젠가는 그 권력 때문에 심판 받아야 할 일도 생기지 않겠는가? 그러기에 권력을 가졌을 때 조심해서 행사해야 할 터, 이번에는 군전력강화를 한답시고, 멀쩡히 2년 임기제여서 아직 임기가 남아 있는 황의돈 육군참모총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대통령의 고교후배인 김상기3군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에 임명하고, 같은 동향인 포항 출신인 경북 포항 출신인 박종헌대장을 공군참모총장에 앉히는 것을 보면서, 권력의 행사가 지나치다는 비판적 여론을 피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 해군참모총장까지 경남 진해 출신으로 완전 영남권 인사들로 육해공군 최고수장을 임명하는 지역편중인사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예의염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예수가 세 번째 한 결심, 인기에 영합하지 않겠다는 생각, 그것을 우리는 인기는 물거품 같은 것이라고 한다. 어쩐지 이명박 대통령은 이러한 인기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은 어찌 보면 철저하게 지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전 두 경우와 아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민들이 그렇게 지탄의 말을 쏟아내는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을 교체하지 않는 것이라든지, 국회에서 예산안처리시 동료 국회의원에게 주먹질을 가하여 동료의원의 피투성이 얼굴을 전국에 방영케 한 김성회 한나라당 국회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김성회 의원으로 하여금 15일자 헤럴드경제의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께서 지난 주 예산이 처리되던 날 밤 (인도네시아ㆍ말레이시아 순방차) 비행기에 타시기 전에 직접 전화를 주셔서 ‘국회에서 예산이 처리되는 데 애써줘서 고맙다. 수고했다’고 하셨다.”는 감격의 말을 하게 한 것을 보면 정말 인기에 연연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얼마나 역설적인가?


지금 예수는 과연 어디에 있기나 하는 걸까? 연말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 여기저기에서 구세군냄비가 보이고, 선한 사마리아인들의 십시일반의 손길이 따뜻하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돈, 권력, 인기에 영합하여 자신의 영혼을 파는 이들이 넘쳐나고 있으니...... 과연 예수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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