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그리고 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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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그리고 친절
  • 임정수
  • 승인 2010.12.1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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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수 법무법인 충정(구. 한승), 전 서울고법 판사

천상병 시인은 『행복』에서 ‘좋아하는 막걸리를 아내가 다 사주고 하느님을 믿어 가장 강력한 빽이 있으니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고 노래했다. 마치 양녕대군이 ‘동생 하나가 임금이니 살아서 걱정이 없고 다른 동생이 부처님 제자이니 죽어서 걱정이 없다’고 한 장면을 연상시키지만 왕족이 못되는 범인(凡人)에게는 아무래도 시인의 고백이 더 울림이 있다.


생업으로 변호사를 하는 사람이, 즉 법률적 지식 및 관련된 무형의 정신적 가치를 제공하고 그 상대방으로부터 직접 대가를 받는 사람이 업무에서 행복을 느끼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우선 당사자에 대한 관계에서 변호사의 역무에 대한 평가절하, 결과에 대한 과도한 집착, 때때로 생기는 어이없는 약속 위반이 자주 상심하게 한다. 그 외에 결정권을 가진 공직자의 독단과 전횡, 업계의 지나친 경쟁과 깊어가는 상호불신 등이 어쩔 수 없는 스트레스 요인이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어 위안으로 삼는 부분도 있다.


먼저, 내 마음에 없는 말을 하지 않아도 큰 지장 없이 생업이 유지된다는 점이다. 당사자를 대할 때 판단이 어렵거나 실망을 우려하여 간혹 침묵하는 경우는 있어도 속으로 생각하는 바와 다른 이야기를 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변호사 사무실을 찾는 사람은 대부분 어려움에 처해 있다. 그런 사람에게 나의 실제 능력을 벗어나는 낙관적 기대를 갖게 하여 보수를 받으며 사건을 유치하고 어쩌면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었을 그 사람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윤리 문제를 떠나 참으로 내키지 않는 일이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업무 때문에 바쁘다고 느끼고 사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실제로 무능함으로 인하여 업무가 바쁘게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 행복감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다).


다음으로, 지금의 형편이 오로지 혹은 주로 생업을 위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생존과 생계를 위해 벌이는 인간 활동은 장엄한 영역의 일이다. 그럼에도 실의에 빠진 친구의 술 상대가 되어 주는 것이 때때로 힘에 겨울 수가 있는데, 소원한 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들어 올리는 술잔은 얼마나 무겁겠는가.


‘개체의 존재 목적이 그 유전자의 전파’라는 견해가 과학적임을 알지만, 그래도 ‘만물의 최고 목적은 행복’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이 유효하다고 믿는다. 나는 할아버지, 아버지의 은혜로 생겼고 자식들을 통해 더 이어지겠지만, 내가 이 세상을 사는 존재의 이유는 그것만이 아닐 것이다. 중요한 존재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지금 여기에 현존하는 나의 행복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행복이 그 사람에게 너무나 소중하고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는 것처럼.


10년 남짓 전에 공직에서 모시던 분이 어느 날 붓글씨 몇 점을 동료들에게 보여주시면서 고르라고 하셨다. 다른 동료들이 먼저 선택하고 남은 것이 ‘지기추상 대인춘풍(持己秋霜 對人春風, 한문으로 이렇게 쓰여 있다)’으로 내 차지가 되었다. 나는 존경하는 그 분에게 ‘저는 제 자신에게 추상 같이 할 생각이 없고 지기춘풍할 겁니다’ 하니 ‘그래, 자기에게 그렇게 해야 남에게 춘풍 같이 대할 수 있지’라며 좋아하셨다. 지금도 ‘춘풍’을 메신저 ID로 쓰고 있다. 영문을 모르는 사람은 ‘이 자가 바람기가 있나’ 하시겠지만.


그 무렵에는 그 분 덕택에 ‘나는 과연 무엇이고, 어떤 마음과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는 등의 생계유지와 무관한 생각을 곰곰이 하는 일이 잦았다. 마치 맥크릴랜드가 여러 성취인의 행동특성을 연구하여 ‘지위지향적이 아니라 과업지향적’이라고 정식화한 것처럼, 성인(聖人)과 대 인격자의 의식 및 생활자세가 ‘조건 없는 친절’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하며 나름대로 압축해 보기도 하였다. 일상생활에 매몰되어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는 지금은 과거와 같은 고상한 시간을 갖지는 못하지만, ‘조건 없는 친절’이 그 자신을, 상대방을, 나아가 사회를 훈계보다, 매질보다, 혁명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는 별로 변함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덕(德)을 좇는 활동이 행복’이라고 한 것처럼, 성인과 군자는 그분들의 의식과 태도에 따라 사시는 것이 행복했으리라. 그 분들에 비교하자면 큰 불경이 되겠으나, 나도 ‘조건 없는 친절’의 순간은 행복감을 느낀다. 그래서 지난 짧지 않은 기간 이 지면을 준비하는 일이 참으로 행복하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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