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을 못 즐기는 법조인-Lawyer’s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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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을 못 즐기는 법조인-Lawyer’s Mind
  • 오사라
  • 승인 2010.11.19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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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a Oh 미국 Maryland 지방법원 Commissioner(Magistrate)

며칠 전 부모님을 모시고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에 뮤지컬을 보러 갔다가 나는 그만 피식 웃어버렸다. West Side Story를 관람하며 무의식적으로 각 장면을 법리적으로 분석하고서 좋아라 하는 내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법조인의 마인드라는 것은 정말로 신기한 것이다. 법원에서 형사사건을 매일 다루다 보니 단순한 생활의 일상도 법정에 제출되는 일종의 영상증거물로 보이는가 보다. 문득 로스쿨 시절에 실력파 유대인 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농담처럼 말씀해 주셨던 “Once a Lawyer, Always a Lawyer” 속담이 생각났다. “앞으로 졸업해서 실무를 하게 되면 가족과 휴일에 무심코 TV 코미디 장면 하나만 보아도, 그 상황에서 어떤 소송이 발생할 것이며 법정에서 무슨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있는지 1-2분 내에 자동적으로 훤히 머릿속에 그려질 겁니다. 한번 법조인이 되면 그 마인드에서 빠져 나올 길이 없어요.”


다른 관객들이 뮤지컬배우들의 화려한 댄스 실력을 감상하는데 한창 바쁠 동안 나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각종 소송을 생각하며 상상의 날개를 폈다. 극의 줄거리는 험한 도시의 패싸움 한가운데서 반대파 남녀의 순수하고 애틋한 사랑이 비극으로 끝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뉴욕판이다. 찬찬히 살펴보니 극중 등장인물 100%가 여러 소송에 휘말릴 요지가 있고 패소나 유죄판결을 받을 찬스가 높았다. 특히 패싸움 장면에서는 갱단 멤버들이 권총을 사용하거나 반짝이는 은색 포켓나이프를 호주머니에서 찰칵 꺼내어 휘두른다. 양쪽 갱단 두목들과 남자 주인공이 극중에 살해된다. 당연히 수많은 중범죄목으로 구속기소가 가능하다고 보였다. 재판에서 살인죄의 최고 형량은 미국 관할에 따라 사형 또는 종신징역이 될 수도 있다.


뮤지컬이 쉬는 시간이 되자, 천장의 샹들리에 불빛이 환하게 밝아졌다. 관객들이 허리를 펴며 기지개를 켰다. 나는 옆자리에 앉으신 어머니께 웃으시라고 조크를 했다. “엄마, 여기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구치소 생활 좀 하겠는데요.”


“일 생각은 좀 그만하고 그냥 재미로 보아라. 그런데 여기서 남미사람들이 모두 영어가 아닌 스패니쉬를 쓰고 있으니 재판에서 언어장벽이나 인종차별을 호소하는 인권 변호를 써 보면 되지 않겠니.”


생각지도 않았던 어머니의 예리하신 지적에 동의를 하고 있는데 동생이 끼어들었다. “갱단 멤버로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미성년자 청소년인데, 어차피 소년법원 측으로 넘어가면 그다지 오래 구속되지는 않겠지?” 


법조인의 가족도 결국 법조인이 되고 만다는 실무 경험가 교수님의 옛 멘트가 새삼스럽게 기억이 나서 나는 머리를 조아렸다. 작가 로렌츠가 1950년대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제작하며 훗날 법조인들이 자신의 뮤지컬을 관람하고 어떤 생각을 할는지 과연 상상해 본 적이 있을까 궁금하다. 나 말고도 수많은 형사계 법조인들이 휴일에 가족과 뉴욕 브로드웨이에 무심코 구경을 왔다가 결국엔 이 뮤지컬에 표출된 법률적 상황을 곰곰이 속으로 분석하며 집에 갔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생각에 잠겨 극장 밖으로 나와 보니 어느새 이미 해가 진 저녁시간이었다. “우리 어디서 따끈한 국물이나 한 그릇 먹고 이제 들어가죠, 내일 법정에 나가서 저는 또 한바탕 신나게 전투를 벌여야 하거든요.” 언젠가부터 내 덕분에(?) 법적 공방 토론을 엔조이하게 된 가족을 모시고, 잘 하기로 소문난 우동집으로 추워지는 늦가을 뉴욕의 밤거리에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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