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 교수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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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교수의 세상의 창
  • 법률저널
  • 승인 2010.10.0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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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학장/변호사/시인

대학수능과목에서 영어를 배제해야

김현승 시인은 “가을의 기도”라는 시에서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라고 노래하였다. 낙엽들이 지는 때, 이 세상은 비워져 간다. 세상은 쓸쓸해지고, 풍요 속의 공허가 찾아온다. 그런데 이 비워지는 공간을 채워 줄 유일한 위로를 시인 김현승은 “겸허한 모국어”에서 찾았다는 것이 신기하다. 위 시를 처음 접했던 고교시절, “겸허한 모국어”라는 시어 앞에서 한참 동안 눈길이 머물렀던 기억이 새롭다. 왜 그리 가슴이 콩당거렸을까?


언어는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는 최고의 앵커(Anchor)이다. 일본이 우리를 식민시대하던 시절, 그들은 우리의 언어를 말살하려고 눈에 불을 켰지만,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켜내기 위해 우리 선배들이 온갖 고초를 경험했던 쓰라린 기억을 가지고 있다. 중고등학창시절, 영어공부에 폭원이 졌던 어렸을 적 친구들은 우리가 식민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면 차라리 미국이나 영국의 지배를 받지 왜 하필이면 쪽바리 일본에게 지배를 받았는지 모르겠다며, 필리핀이나 인도 같은 나라는 영어를 잘 하는데 우리는 영어를 못해 개고생한다며 웬수 같은 영어라고 불평하지 않아야 할 불평을 툴툴거렸던 기억이 새롭다.


하지만 인터넷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모든 세계인들에게 통용될 수 있는 기본언어가 필요하게 되고, 그러한 현상으로 영어는 더욱 중요한 세계언어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영어의 지배를 받는, 우리의 의식이 영어에 지배당하는 현상이 일반화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글로벌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영어, 영어에 목을 매고 있지만, 언어구조가 유독 영어체계와 다른 우리네 어법이 발목을 잡고, 사교육시장의 황금어장이 영어학원이 될 정도로 모두들 영어에 매달리고 있지만, 투자한 것에 비해 영어를 제대로 못하기는 여전히 마찬가지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영어를 잘하면 좋은 대학에 가고, 영어를 잘하면 좋은 기업에 취직하는 이상한 사회구조가 되어 있다. 평생 외국인을 만나 한 마디 대화도 안 하고 사는 사람도 많은 나라에서 모든 학생이 영어에 매달리고, 많은 직장인들이 영어에 매달려 돈을, 시간을 소진하고 있는데, 그 효과가 미미하여 엄청난 투자 대 효과의 불균형이 생기는 현상을 어찌 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나는 간혹 혼자 이런 생각에 잠긴다, “대학수능고사에서 영어과목을 빼버려야 한다.”는 아주 절박한 생각 말이다. 지구촌이 한 마당이 되어 영어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서 무슨 생뚱맞은 생각이냐고 반론을 제기하는 분도 많겠지만, 나는 역설적으로 대학수능고사에서 영어과목을 빼버려야 영어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싶다. 영어는 우리나라의 국어처럼 그냥 영어권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일 뿐이다. 언어를 언어로 사용할 수 있으면 족하지, 무엇 때문에 외국 언어인 영어를 우리 학생들의 대학입학에서 당락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과목으로 부상시켜 그들의 일생을 결정짓는 “운명의 키”로 삼을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영어 이외에도 다른 재주를 많이 가지고 있는 청소년들을 영어 잘 하느냐 못하느냐에 의해 대학당락을 결정짓게 만들어 평생을 계급화시켜 버리는 우를 왜 범해야 하는가 말이다.


대학수능고사에서 영어과목을 빼버리면, 중고등학교 영어교과과정이 확 변할 것으로 믿는다. 중고등학교 영어교과과정에서 “영어문법책”을 아예 없애버려야 한다. 젖먹이 어린아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칠 때 언제 문법을 가르쳤던가? 그냥 반복해서 아이 엄마가 젖을 물린 채 “엄마, 엄마”를 반복해서 아이에게 들려줌으로써, 아이는 옹알거리기 시작하고,  “엄마”라는 말을 내뱉는다. 아이가 “엄마”라는 첫말을 뗄 때 자식을 키워본 모든 부모들이 얼마나 감격하고 환희에 사로잡히는지 우리는 경험을 통해 잘 안다. 여기저기에 전화를 하여, “우리 아이가 ‘엄마’라는 말을 했어요!”라고 자랑을 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아이가 말을 시작했다고, 자기를 엄마라고 불렀다고 아이 엄마는 자랑을 한다.


영어도 그렇게 배우도록 해야 한다.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이상한 영어학습방법, 5형식 문장이 어떻고, 전치사 in이 들어가야 하느니, 아니면 at이 들어가야 하느니 하면서 정력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영어를 처음 배울 때 그냥 영어동화책을 가지고 읽히고 읽히면 된다. 학년별로 영어단어의 난이도에 따라 문법을 철저히 배제한 채 영어책을 읽게 만들고, 독해에 주력하는 교육방식을 취해야 한다. 영어로 읽고, 이해하고, 말하는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 그 하나의 방법으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우리 동요 “산토끼”나 “학교종이 땡땡 친다”를 “영어가사”로 번역하여 우리 말 동요도 부르고, 그냥 그것을 영어로도 부르게 만들어, 자연스럽게 영어문장을 읽히고 암기할 수 있도록 하면 될 것이다. 영어시간에 문법을 가르치지 말고, 좋은 문장으로 된 팝송을 골라 가르치고, 좋은 소설책이나 에세이書를 교과서로 정해 그냥 읽히고 읽히고 또 읽히고, 들려주고 들려주고 또 들려주는 방법으로 영어강습법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그렇게 수능 영어공부에 매달리는 시간을 실제로 생활영어를 배우고, 말하는 방식으로 바꾸게 되면 아이들은 실질적인 시간을 확보하여 자유롭게 영어공부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입수능고사에서 아예 영어를 빼버려야 한다. 그렇게만 하더라도 아마 중고교 수업시간의 분위기가 180도로 변할 것이다. 아이들은 동요로 영어를 배우고, 팝송으로 영어를 배우고, 영화를 보면서 영어를 배우고, 이처럼 춤과 노래로 영어를 배우게 된다면, 영어를 지겨워하지도 않을 것이고, 대입수능점수에 얽매여 죽어있는 영어공부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만 영어에 대한 최소한의 수학능력을 보유하였는지 여부를 측정할 수 있도록 영어자격시험제도를 개발하여, 일정 점수 이상을 취득하였다는 확인서를 대학에 제출하도록 하면 될 것이다. 그 시험도 모의고사 형식으로 전국 고등학교에서 치룬 뒤 그 점수를 제출하면 될 것이고, 구태여 토익이나 토플처럼 접수료를 따로 내고 시험을 보게 할 필요도 없다고 하겠다. 물론 검정고시 등을 통해 대학에 응시하고자 하는 젊은이들도 고교에서 치루는 모의고사에 응시하여 재학생들과 함께 시험을 치루도록 하면 비용 등을 절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유학 등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이면 거기에 맞춰 토익이나 토플, 아이비티 등의 시험을 치루게 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불필요하게 위와 같은 시험에 응시하는 비용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위 시험의 난이도를 구태여 높일 필요도 없고, 대학에서도 그 점수 분포에 따라 가산점을 부여하지 못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즉 최소한도의 영어 듣기, 말하기, 독해 능력을 갖추면 대학에서 충분히 따라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수준만 요구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청소년들을, 직장인들을 영어로부터 해방시켜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 말도 제대로 떨어지지 않는 영어공부에 매달려 한창 뜨거운 가슴과 몸을 가진 젊은이들을 골방으로, 영어학원으로, 독서실로 내모는 지옥 같은 현재의 교육체제는 하루 속히 개선할 필요가 있다. 또다시 대학수능시험이 임박해지고, 아이들은 지금 정신들이 없다. 최고 1등만 살아남는 이상한 교육체계 하에서 아이들은 영어수능점수 1점을 더 올리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경주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영어를 하고서도 영어로 소통하는데 망설이게 되고, 영어로 말 한 마디 제대로 못 건넨 체 얼굴이 빨개지는 이상한 영어교육은 개선되어야 한다. 물론 지금의 젊은이들이야 영어교육방법이 많이 개선되어 회화도 능숙하게 하는 학생들이 예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늘었지만, 매년 수조 원을 넘는 사교육시장에서 그렇게 많은 돈을 투자하고서도 얻는 효과가 미미하여 비효율적인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까닭에 나는 대학수능고사에서 영어시험을 빼버리고, 대학입학사정 시 영어점수를 평가대상에서 제외하여야만 오히려 역설적이지만 영어공부가 제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영어문법교육을 빼버리고, 듣고, 말하고, 읽기만을 가르치는 교육방법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교육체계를 이루더라도 높은 수준의 영어를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깊이 있는 영어공부를 할 것이다. 그렇게 모든 학생들이 일상언어로서 영어를 접하게 만들고, 영어를 업으로 삼아야 하는 특별한 사람들은 더 깊이 있는 체계적인 영어를 접하게 하면 된다.


저녁 아홉시면 어김없이 뉴스를 전하는 방송앵커, 그 앵커가 닻이라는 의미의 영어단어 anchor임을 그냥 알아듣는 영어공부가 되어야 한다. 월터 크롱카이트, 미국 CBS 이브닝뉴스를 20년간 보도하면서,  F 케네디 전 대통령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부터 최초의 달 착륙, 워터게이트 사건, 베트남 전쟁, 이란 인질 사태에 이르기까지 미 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도하여 “신뢰받는 뉴스”와 동의어로 불리면서 진실이 파도에 표류하지 않도록 중심을 잡은 닻의 역할을 하였다고 하여 최초로 뉴스진행자에게 “앵커anchor”라는 호칭을 붙여주었다는 것을 영어공부로 알게 해야 한다.


영어를 대학수능고사과목에서 삭제하고, 영어교육방법을 개선하여 청소년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를 덜어주어야 한다. 겸허한 모국어로 된 시 한 편을 더 읽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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