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선발의 새로운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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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선발의 새로운 패러다임
  • 성낙인
  • 승인 2010.10.01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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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인 서울대 헌법학교수.한국법학교수회장

외교부장관 자녀의 외교부 특채 파문이 고시제도 전반에 대한 재검토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 고시제도는 1948년 건국 이후 한국적 인재등용의 지름길이자 개천에서 용이 나게 하는 첩경이었다. 개발연대에 마땅히 취업할 데가 없는 상황에서 공직은 엘리트의 최고의 등용문이었다. 일제시대부터 내려온 고등고시는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위한 최고의 안식처였다. 건국 이후 고등고시는 1부(사법), 2부(행정), 3부(외무)로 시작되었다. 고시에 합격하기만 하면 첫 직장생활의 시작부터 ‘영감님’ 자가 붙게 된다. 판검사를 말할 것도 없고 행정고시에 합격해도 사무관으로서 바로 군수발령을 받았다. 지금은 사무관이 읍면장직이고 보면 금석지감이 든다. 척박한 나라에서 고시에 합격한 엘리트들은 법조인으로서 우리나라 법치주의의 근간을 형성했고, 행정 관료들은 산업화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했다.


그런데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세계를 누비는 수출입국의 뒤에는 산업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인재들의 빛나는 노력이 돋보인다. 그 과정에서 고시 합격만 하면 부귀영화를 누리던 시대를 마감해 간다. 박봉의 공직에 비하면 유수의 대기업 임원에 오르면 엄청난 부를 누린다. 게다가 공직자로 사생활에 얽매이기를 싫어하는 젊은이들의 새로운 풍속도와 맞물려 많은 엘리트들이 공직보다는 사직으로 눈을 돌린다. 삼성전자만 해도 2천명이 넘는 박사군단이 포진해 있다.


이 와중에 정부도 고시제도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특채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한다. 외교관은 외교아카데미를 통해서 배출하고, 행정 관료도 행정고시보다는 특채로 전환하고자 한다. 사법시험도 로스쿨 도입과 더불어 2017년에는 종언을 고한다. 시대의 흐름은 고시과목 위주의 시험을 통한 인재의 선발보다는 교육을 통한 인재의 배출을 원한다. 그 변화의 기폭제가 바로 로스쿨의 도입이다. 지금의 법령상으로는 로스쿨을 졸업하지 않으면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가 없다.


이미 지난 정부에서부터 시작된 다양한 인재의 적재적소 충원 방침은 굳이 나무랄 필요는 없다. 국가를 이끌어갈 인재를 충원하는 시스템은 시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공정성 투명성 객관성이 먼저 담보돼야 한다. 세계를 누비는 외교무대에 뛰어난 어학실력의 소유자는 당연히 요구된다. 주재국의 언어도 못하면서 영자 신문인 인터내셔널 해랄드 트리뷴만 읽고서는 정상적인 외교역량을 발휘할 수 없다. 행정의 전문화 다기화가 심화되고 있음에도 고시과목 위주의 학습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세계화시대에 끝없이 이어지는 국내외적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제 공정한 법의 잣대가 우선돼야 한다. 로스쿨의 도입취지도 학부에서 다양한 전공을 이수한 학생들이 사회 전반에 걸쳐서 법의 지배를 구현하고자 한 것이다. 그렇다면 로스쿨 졸업생들이 각자의 전문성과 능력에 부합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법정을 오가는 판검사나 변호사만 배출하겠다면 굳이 로스쿨을 도입할 필요가 없다. 세계에서 최초로 영국식 법학교육제도를 버리고 로스쿨제도를 도입한 미국의 예를 보더라도 사법은 물론이고 행정부와 입법부에 로스쿨 졸업생들이 널리 포진해 있다.


의치학전문대학원이 사실상 학부 의치대로 회귀하는 현상을 보면서 법학전문대학원도 새로운 제도의 틀에 대한 모색과 기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의치학의 경우에는 전문대학원 제도만 채택하고 있는 나라가 전 세계에서 없을 뿐 아니라 우리도 그간 투 트랙이 병존해 왔다. 하지만 로스쿨은 외형적으로는 순수한 대학원 형태의 미국식을 답습하고 있을 뿐 아니라 법령사항이다. 이제 무늬만 로스쿨 형태를 취할 것이 아니라 실질에 있어서도 로스쿨 이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법률상의 제도가 더 이상 실험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다만 로스쿨 졸업생에게만 주어지는 변호사시험 응시제도가 학부에서 법학을 이수한 절대 다수의 법학도들에게 제3의 길을 모색할 수는 없을 것인지 다 같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모든 법학도들에게 “각자에게 그의 것을” 부여할 수 있는 공정한 길이 열기길 희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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