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수기] 공무원시험 100일 전, 어느 수험생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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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수기] 공무원시험 100일 전, 어느 수험생의 하루
  • 법률저널
  • 승인 2010.09.13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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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현/서울지방직 일반행정 9급(2007년 합격)

 


바다거북은 상, 하현의 달이 뜨면 이를 신호로 언젠가 자신이 태어났던 바로 그 해변으로 모여든다. 조수가 약하고 바다마저 고요한 해변에 자리 잡은 어미거북은 달빛 아래에서 눈물과 함께 100여 개의 알을 낳고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

하지만 새끼거북의 98%는 바다를 보지 못하고 죽는다.

갓 태어난 새끼거북은 알에서 깨자마자 해변을 향해 기어가지만, 갈매기나 게 등의 해변의 약탈자들은 물론 학살에 동참하기 위해 해변으로 내려온 여우 등의 먹이가 되거나, 육지의 네온사인에 의해 방향을 잃은 채 육지를 향해 기어가다가 지쳐 쓰러져 죽고 만다.

오로지 2% 미만의 새끼거북만이 바다에 도달할 수 있다. 바다는 그들의 삶의 성공적인 끝이 아니라 단지 시작일 뿐이지만, 대부분의 새끼거북들은 바다가 주는 고통과 시련조차 부러워하면서 죽어간다.

1% 미만의 거북만이 무사히 어른이 돼 다시 이 해변으로 돌아올 자격을 얻게 된다. 자신이 언젠가 태어났던 그 달밤처럼 고요하고 적막한 밤에 눈물을 흘리며 알을 낳고 다시 바다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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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 너머로 희미한 아침 해가 발끝부터 훑기 시작해 얼굴로 다가와 머물렀다.

아침 6시, 나는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오늘을 무엇을 하기로 했던가, 잠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나는 신음과 함께 일어나 책상에 앉아 책을 편다. 책상 앞에는 100여일 앞으로 다가와 있는 시험까지의 월계획표, 주계획표, 일계획표가 나란히 정렬되어 있다.

계획표와 타협하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영어단어집을 꺼낸다. 계획에 의하면, 새벽에는 영어단어를 외워야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한동안 그럴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과학적 진리와도 비슷하다. 영어 성적을 올리려면 단어를 외워야 한다. 도플러, 자유낙하의 만유인력의 법칙, 상대성 원리, 진리는 항상 간단명료하다.

sleek………

obesity………

strive..........

momentous………

despise………

startling………

tenantable………

means………

toxic………

나는 생소한 발음을 입 속에서 굴리면서 생각에 잠긴다. 이것들을 어떻게 외워야 할까. startling…startling… 이건 그나마 쉽고, tenantable은 형용사형이니까 간단하군. sleek…… sleek……

나는 sleek의 사전을 찾아본다.

sleek〔〕〔slick의 변형〕 a.

1 매끄러운(smooth), 윤나는(glossy) <모발 등>

2 산뜻한, 맵시 낸 <옷차림 등>;날씬한;유선형의

a sleek sports car 유선형의 스포츠 카

3 말주변이 좋은;대인 관계가 부드러운

━ vt. 매끄럽게 하다, 광택을 내다;매만지다 《down, back》

━ vi. 몸맵시를 가다듬다, 모양을 내다;미끄러지다

sleek·er n. sleek·ly ad. sleek·ness n.

나는 어떤 쓸 만한 것을 찾고 있다. 이 단어와 연관시킬 이미지. 아주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까, 사소하지만 충분하다. 기억력을 되살릴 작은 뇌관. 방아쇠만 당기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다시 되살아 날 것이다. 하지만 영어사전과 백과사전까지 찾아봐도 그 어떤 실마리가 될 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sleek 위에 별표를 한다. 그 뒤에 아침을 먹고, 50개의 영어단어를 새로 외우고 그 동안 외웠던 200개의 단어를 다시 보고, 익숙해진 단어 50개를 ‘영어단어 Pool’에서 제외시켰다. 영어단어 공부가 끝이 났다.

시간은 벌써 11시를 넘어간다. 고시원의 작은 창 너머로 보는 세상은 조용하기만 하다. 마치 이 적막한 세상에 홀로 남은 착각이 들지만, 그것은 단지 내가 스스로를 가두고 세상과 격리되었기 때문에 느끼는 비극적인 착각일 뿐이다.

나는 다시 시간표를 짚어본다. 내 방에서 어겨서는 안 되는 두 가지 법칙이 있다. 시간표와 기상시간은 이 작고 슬픈 세계에서 가장 절대적인 법칙이고 원칙이자 세계의 근원이다. 타협은 허용되지 않는다.

시간표에 따라, 나는 적어도 12일까지는 ‘핵심 국사 문제집’을 모두 풀고 오답노트까지 작성해야 한다. 14일까지는 김중규의 행정학 강의를 완전히 들어야 한다.

나는 타임워치를 확인한다. 벌써 12시 반이지만 공부한 시간은 5시간에 불과하다. 아직 점심도 안 먹었는데 어째서 1시간 반이나 부족하단 말인가. 아침 먹은 후에 잠시 인터넷을 한 것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인터넷 영어사전을 찾다가 홀려서는 이런 시간낭비를 한 것에 잠시 자책한다.

나는 밥을 먹는다. 고시원의 1층에 있는 식당은 점심시간에도 사람이 많지 않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독서실이나 학원에서 공부하며 사먹기 때문이다. 난 덕분에 식당을 독차지 할 수 있으니 나쁠 건 없다.

나는 이렇게 혼잣말을 하며 김치와 계란이 전부인 초라한 점심을 먹는다. 설거지를 끝내고 4층으로 올라와 화장실에 가는데 더운 여름이라 옆방의 청년이 문을 열고 있다.

옆방의 청년은 오늘도 컴퓨터에 매달려 게임에 여념이 없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이 청년의 뒤통수와 그의 책상과 컴퓨터를 봤지만 한 번도 게임을 안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책상 한편에 쌓아둔 공무원 책들은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은 모습으로 쌓여있다. 아마 내일도 그렇겠지.

‘고시원 30만원에 독서실 10만원에 밥까지 사 먹으면서 게임이나 하다니….’

나는 길 잃은 어린양을 위해 기도하며 화장실로 간다.

오후는 고통의 시간이다. 졸음과 지루함과 권태가 몰려오기 때문이다. 창 밖에서는 아이들이 꺄르륵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아마도 초등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며 재잘대는 소리겠지. 가끔씩은 저 소리를 녹음해서 우울할 때 듣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나는 잡생각을 떨치고 다시 공부에 집중하려 노력한다.

밤이 다가오면 외롭고 슬퍼져서 공부하기가 싫어진다. 그럴 때면 나는 고승덕씨를 생각한다. 그는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롤모델이다. 차갑고 기계적인 그의 공부법은 항상 나를 부끄럽고 비참하게 만든다. 그는 항상 내가 나태와 태만과 교만에 빠지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밤 12시가 됐다. 나는 그 동안 가볍게 동네 한 바퀴를 뛰었고 일기를 쓰고, 음악을 듣고, 아무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는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시 혼자서 저녁을 먹었다.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한 지 오래 된 것 같다.

아, 난 정말 외로운 사람이구나. 혼잣말을 한다.

도서관도 나가고, 스터디니 뭐니 하여튼 그런 걸 좀 해야겠어. 미칠 것 같아.

나도 학우와 커피를 마시면서 수험생의 고충을 토로하고 농담도 하고 서로 격려도 하고 그렇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이유는, 나는 그런 식으로 공부를 할 수 있는 놈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야.

시험까지 100여일이 남았구나. 나는 스톱워치의 정지버튼을 누른다. 오늘 총 공부시간은 11시간 30분. 좋지는 않지만 그렇게 나쁘지도 않아. 나는 방의 불을 끈다. 창밖으로 거리의 가로등이 희미하게 비쳐 들어온다.

오늘도 더디고 작고 볼품없는 발걸음, 하나의 작은 전진이었지만 분명히 나는 똑바로 걷고 있는 거야. 올바른 방향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어. 아직도 흔들리지 않고 걸어야 하는 100여 걸음이 더 남아 있어. 내가 오늘도 편안한 마음으로 잠이 들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오늘도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야.

나는 다시 깊은 잠 속에서 바다거북의 꿈을 꾼다.

그래, 최소한 바다는 보고 죽어야지.

 

* 합격수기에 소개된 공부 방법·교재 등은 글쓴이의 개인의견입니다.

 

자료 제공: (http://www.korea.kr/newsWeb/pages/brief/jobInfo/view.do?metaId=exam_pass&dataId=148698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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