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바람에 부러진 고목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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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바람에 부러진 고목을 보면서
  • 임정수
  • 승인 2010.09.10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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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수 법무법인 충정(구. 한승) 변호사, 전 서울고법 판사

필자는 나무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불과 어제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다반사이면서 누가 어떤 나무 이야기를 하면 같은 수종의 나무를 어디에서 보았던 것인지 기억이 한꺼번에 떠오르기도 한다. 지금도 참나무 숲을 걸을 때면 ‘코르크층의 두께나 모양이 아니라 나뭇잎만 보고서 굴참나무와 상수리나무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는 등의 도무지 생계유지에 도움이 안 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또 누구나처럼 호기심이 충만한 어린 시절부터 비원(秘苑)이 어떤 곳인지 무척 궁금했고 가보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 모은 1960년대의 청사진 같이 인쇄된 우표 한 장 때문에 그런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매달려 살다보니 정작 창덕궁 후원을 찾은 것은 40대에 접어든 후였다. 숲속 도처에 희귀한 주목(朱木)이 있는 것을 보고 과연 궁궐의 정원은 다르다고 느꼈다.


다시 금년 봄 어느 날 가족들과 두 번째로 구경을 갔었다. 필자는 마음이 무척 아팠다. 한때 규장각이던 주합루(宙合樓) 층층대 아래 한편에 있던 큰 소나무가 베어지고 없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은 눈치를 채지 못했겠지만, 아직 송진의 흔적이 남은 그 그루터기를 한참이나 어루만졌다. 지식인들의 사랑을 받는 정조, 다산 그리도 많은 규장각 학자들의 눈길이 머물고 추억이 깃들었을 유물 하나가 지난 200년 넘어 아무 일이 없다가 하필 금년 봄에 이렇게 쓰러져간 것이다. 자세히 보니 부용지(芙蓉池) 가운데 섬 위의 조그만 소나무도 가지 몇 개가 부러졌다. 연초부터 봄날까지 끊임없이 내리던 눈, 특히 습기와 점성이 높은 막바지의 눈이 지난 수년의 겨울 동안 눈이 내리지 않아서 잔가지 하나 부러지지 않고 잎이 무성하게 자란 소나무를 태산처럼 짓눌러 결정타를 가했으리라.


더위가 한풀 꺾인 며칠 전 이른 아침에는 큰 바람이 불었다. 창문으로 올려다 본 뒷산의 큰 참나무가 활처럼 휘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하루 내내 재판을 다니느라고 차를 타고 지나면서 목격한 길가의 숲과 나무들은 처참했다. 아예 완전히 쓰러지거나 부러져 목숨을 다한 나무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기울어져 위태로운 상태에 있는 저 많은 상이용사들은 누가 어떻게 간호할 것인가.


사무실이 있는 5층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서초역 사거리의 향나무는 다행히 치명상은 면했으나 가지가 몇 개 부러지는 상처를 입었다. 왕복 8차선의 대로가 어쩌지 못한 지역의 상징물을 한 무리의 바람이 해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자정 넘어 퇴근길에 잡아 탄 택시의 기사님이 갑자기 뒤를 돌아보더니 ‘정말 부러졌네’라고 한다. 이 분도 그 가족들이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살기는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올해 연초의 폭설이나 늦여름의 태풍 곤파스는 그 자체로 대단한 자연재해라고 할 것이 아니다. 유독 지난 몇 년 간의 따뜻한 겨울이라거나 늦장마로 땅이 무른 상황이 전자는 잔가지를 많이 만든 침엽수에, 후자는 뿌리를 깊이 내리지 않은 나무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인생에 비유하여 ‘호경기에 늘 불경기를 대비해야 한다’거나 ‘모름지기 기초를 튼튼하게 해야 한다’는 억지 교훈을 이끌어 내는 정도로 그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마음 속 슬픔이 가시지 않고 계속 남아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나 자신이 무력한 존재라는 점에 대한 발견과 어쩔 수 없는 시인이 이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무지개를 좇다가 그 끝자락을 잡을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것은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인가.


사실 인간은 무력한 존재이다. 지금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천문적 질서가 만들어진 것은 거의 확률이 없는 기적과 같은 일이다. 또 언제라도 그 질서에 교란이 올 수 있고 조그만 변화로도 인류의 운명은 지금 목도한 나무들보다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소설 ‘더 로드’의 절망적 상황은 정말 기존 질서의 아주 미미한 변화가 가져온 결과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가 이런 기적 속에서 겨우 찰나를 살면서 아름다운 고목조차 지키지 못함에 불구하고 그래도 더 귀중하게 지키는 것이 있다면 이는 같은 인간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문명사는 나무에 비유하자면 장대한 고목과 같은 영웅을, 의인을, 아니 관목에 불과할지 모르는 평범한 이웃을 무고하게 희생되거나 실제 저지른 오류보다 더 무겁게 처벌받지 않도록 하는 노력과 투쟁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오늘의 현실에서는 법조인이 전문적으로 이런 일을 전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인류의 보배였던 화학자 라부아지에가 재판의 이름으로 단두대 앞으로 걸어가지 않고 또한 인류가 그와 같이 확신을 하게 된다면 이는 무력감으로 상처를 입은 마음에 큰 위안이 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법조인은 참으로 중요한 일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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