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법률가상의 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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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법률가상의 정립
  • 성낙인
  • 승인 2010.09.0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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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인 서울대 헌법학교수.한국법학교수회장

예로부터 법률가는 누구나 선망하는 좋은 직업이긴 하지만 국민들로부터 그리 존경받지 못하는 경원(敬遠)의 대상이다. 즉 좋은 직업이기 때문에 수많은 인재들이 법률가가 되고자 하지만 막상 법률가에 대한 인식은 그리 좋지 않다는 의미다. 판검사로 상징되는 법률가는 지금도 결혼중개회사에서 제1 순위 신랑감으로 꼽고 있지만 좋은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을 갖는다.


필자는 최근에 소위 스폰서 검사문제가 대두되면서 대검찰청 진상규명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그런데 기자들에게 검사들이 대부분 본인의 제자나 후배들인데 너무 질타만 하지 말고 따뜻한 눈길도 필요하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가 온정주의자라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지금도 그 말이 그리 잘못된 표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왜 그렇게 비판을 받아야 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보면 그간 법조인들이 대체로 국민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아마도 법조직역이기주의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온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그 동안 법과대학에서의 교육은 사법시험에 얽매인 법학이론에 치우친 나머지 법률가의 역할과 사명에 대한 교육이 태부족 아니 거의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법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문제는 로스쿨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하여 과연 얼마나 미래 법률가에 대한 인성교육을 강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로스쿨에서 학점 취득의 대상으로서 법조윤리나 법률가의 사회적 책임만을 논할 것이 아니라 법률가의 삶이 어떠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로스쿨을 통한 법률가의 대량배출시대에 걸맞게 법률가들이 사회 곳곳에서 정의의 사도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정의와 형평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는 소양을 학생 때부터 길러야 한다. 동서고금의 좋은 양서를 통해서 성찰의 기회를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 한국적 법률가의 길을 선현들로부터 배워 나가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침 금년에는 독립운동가이자 한국적 법률가의 사표로 추앙받고 있는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 선생을 기리는 가인연수관이 고향인 순창에 건립되고 로스쿨 학생들을 대상으로 제1회 가인 법정경연대회까지 개최되었다. 이 기회에 한국을 대표하는 법률가들의 삶을 탐색해 보는 것도 법률가의 삶을 이어갈 학생들에게 좋은 양식이 될 것이다. 서울법대 최종고 교수가 저술한 ‘한국의 법률가’(서울대학교 출판부 간)는 사표가 될 법률가에 대한 종합 다이제스트 판이다. 예컨대 헤이그에서 망국의 한을 안고 순직한 이준 열사는 서울법대가 전신으로 삼고 있는 1895년에 개설된 법관양성소의 제1회 졸업생으로서 구한말에 검사로 임용되어 활동한 근대 초기의 법률가이다. 서울법대 총동창회에서는 그 분의 높은 뜻을 기려 자랑스러운 서울법대인으로 추서한 바도 있다.


일반적으로 국민들의 눈에는 개업 변호사는 사적 이익만 추구하는 무리들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선배 변호사들 중에는 공익을 위해서 헌신하여 소중한 변론서를 통해서 기념비적인 판례를 남긴 이들도 많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이석태 변호사와 한인섭 교수가 대표편집한 ‘한국의 공익인권 소송’(경인문화사 간)은 공익인권 소송의 이론서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 공익인권 소송의 실례를 소상하게 밝혀준다. 예컨대 이 책의 제2편 사례연구에서 첫머리를 장식하는 사건이 ‘망원동 수재 집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다. 한택근 변호사가 정리한 이 사건은 작고한 조영래 변호사가 남긴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이다. 이 사건을 통해서 집단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우리 법조계에 살아 있는 실례를 남겼다. 조영래 변호사가 제시한 소장, 준비서면, 증거보전신청서는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1984년의 시점에서 본다면 집단소송의 새로운 시대를 연 명품이다. 이와 같은 소장을 통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판결을 이끌어 낸 선배들의 고귀한 삶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는 점은 후학들의 행복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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