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수기] 연예인 매니저 출신의 교정직 공무원 합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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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수기] 연예인 매니저 출신의 교정직 공무원 합격기
  • 법률저널
  • 승인 2010.08.30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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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직 7급 특채(2007년 합격)


본인의 요청에 따라 실명을 공개하지 않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합격이라는 꿈만 같던 시간이 어느덧 3년째가 돼간다.

28살에 교정직 특채에 합격했는데 공부기간이 1년 반 정도로 남들에 비하면 길지 않은 시간이다. 그래서 남들은 내가 28살에 공무원 합격했다고 하면 군 생활 마치고, 대학 4년의 시간이 지난 후 합격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난 20살 때부터 사회에 나가 일하기 시작했고 8년이란 시간을 남들보다 쉴 새 없이 달려온 듯하다.

대학 입학 후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방황하던 시기에 중·고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들이 하나, 둘 유명 연예인이 되자 나는 자연스럽게 연예인의 매니저 일을 시작하게 됐다. 20살 청년에게 있어서 연예인의 매니저 일이란 마냥 신나고 즐겁고, 흥미로웠으며,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TV에서만 보던 유명 연예인들을 실제로 매일 볼 수 있었고, 무대를 비추는 화려한 조명이 나의 인생도 환하게 비춰줄 거라는 터무니없는 환상 속에서 살고 있었다. 난 그 당시에 한창 잘나가던 연예인의 매니저 일을 2년 동안 무척이나 열심히 했고 나의 성실한 태도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하나 둘씩 인정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군대 문제가 남아 있었다. 가장 열심히 일하고 재미를 느낄 때쯤 브레이크가 걸려 버린 것이다. 그렇게 난 어느 해 8월 무더운 여름날 모든 것을 뒤로 하고 훈련소로 들어갔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군 생활을 성실히 마치고 제대를 한 뒤 다시 매니저 일을 시작하게 됐는데 유명 연예인의 일보다는 신인들의 일을 도맡아야 했고, 예전의 화려한 전성기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희망찬 포부를 품고 일했지만 자꾸 예전의 기억들만 떠오르고 점점 일에 흥미를 잃어갔다.

그때쯤 친구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됐다. 미술대학에 다니던 여자친구는 졸업하기도 전에 일을 하고 있었고, 늘 자신감 넘치고 당차고 야무져서 항상 지쳐 있던 나를 채찍질 해줬다. 그런 여자친구를 난 진심으로 좋아했고,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여자친구를 위해서라도 이제부터라도 다른 인생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한쪽 머릿속을 꽉꽉 채우고 있었다. 밤낮이 없던 매니저 일을 떠나 안정된 직장생활이 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난 20살 때 가졌던 화려한 매니저로서의 꿈을 접게 됐다.

친구의 소개로 일반 직장에 들어가게 됐지만 하루 종일 앉아서 사무 보는 일은 나에겐 무척이나 힘이 들고 고통이었다. 이 또한 열심히 노력은 했지만 나의 종착역은 아니었다.

그렇게 또 1년이 지나가고 어느 날 여자친구가 교정직 공무원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해왔다. 처음에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한 지도 한참 지났고 당시 치열했던 공무원 시험에 합류한다는 것은 달걀로 바위치기처럼 생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저녁 퇴근 후에 집에 돌아왔는데 자꾸만 ‘교정직 공무원’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고, 손가락은 이미 인터넷 창을 띄우고 검색을 하고 있었다. 교정직 공무원 시험을 보려면 무슨 과목을 보는지, 시험문제 유형은 어떤지 등을 검색하다 보니 순간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죽어라 열심히 공부해서 여자친구와 주변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에게 치열한 경쟁을 물리치고 당당히 시험에 합격한 나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졌다.

드디어 굳은 결심을 하고 노량진의 생활을 시작했다. 우선 책상 앞에 앉아 있기만 하면 몸이 나른해질 것 같아 집 앞에 값싼 헬스클럽을 등록했다. 오전에는 집에서 아침공부를 하고 나른해질 정오쯤 운동으로 땀을 뺀 후에 노량진 학원으로 향했다. 노량진 학원가의 공기는 예상한 것보다 살벌하고 답답했다. 자유롭고 화려했던 일을 해왔던 나는 노량진 분위기에 적응하는 것부터가 고역이었다. 모두들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고,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릴 뿐 대화도 거의 없으며, 마치 전쟁터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 무수한 사람들 속의 나 자신은 너무나 초라한 외톨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 여자친구는 디자인 일을 접고 또 다른 인생을 펼치기 위해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그런 여자친구를 보면서 나도 이번 공무원 시험에 반드시 합격하고자 나 스스로를 옥죄고, 더욱 힘들게 했다.

집이 용산이었기 때문에 노량진과 용산을 벗어나지 않고 오로지 공부에만 열중했다. 여자친구와 데이트할 때도 영어단어 퀴즈놀이를 하며 공부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지루하고 힘들었던 1년이 지나 시험날이 다가왔다. 모의고사 성적이 꽤 잘 나왔기 때문에 내심 1년 안에 성공을 거둬서 힘들었던 공부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조마조마했던 시험이 끝나고 나올 때 난 확신했다. 느낌이 너무 좋았다. 여자친구를 만나 가채점을 해보는데 이 정도면 합격선이었다. 내 예감은 확실했다. 1차 통과!!! 드디어 내가 해냈다는 생각에 그동안의 책을 모두 정리하고 공부하려고 모아놓은 남은 돈으로 라식수술을 했다.

나에게 다가올 새로운 삶의 대한 부푼 기대감과 핑크빛 꿈은 충만한 자만심 탓일까? 한순간 물거품이 돼버렸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1차를 합격했는데 설마 떨어질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2차 면접에서 탈락한 것이었다. 난 완전한 패닉상태였다. 다시 공부를 시작할 돈도 의욕도 없었다. 합격하면 즐겁게 건배하며 마시려고 아껴두었던 선물 받은 양주 한 병을 집에서 모두 마셨다. 정신없이 혼자 마시고 술에 취해 울며 잠이 들었다.

가정형편상 부모님께 의지할 수는 없기 때문에 시험공부는 잠시 접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서울에 있는 한 고등학교 급식실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나르기도 했고, 아파트를 돌며 아파트 현관문에 전단지를 붙이는 일도 했다. 여자친구는 하루빨리 다시 공부하기를 원했지만 마음을 다잡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27살의 청춘이 지나가고 있을 때 즈음 다시 특별채용의 기회가 왔다. 과목수도 적었고 시간이 없는 만큼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을 거란 기대도 들었다. 그래서 세상과의 담을 쌓고 오직 합격의 길을 향해 질주했다.

경기도에서 혼자 일을 하고 있는 친구의 집에 들어갔다. 친구가 출근할 때 같이 나와 도서실로 향했고 친구 퇴근시간에 맞춰 도서실을 나왔다. 시간이 얼마 없었기에 나에겐 시간이 금쪽같고 절실했다. 절실했던 만큼 합격의 열매는 매우 달콤했다. 난 그 열매의 달콤함 뒤에는 쓰디쓴 고된 시간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생각지 않던 공무원 시험을 제안하고 항상 곁에서 나를 지켜봐주고 독려해준 나의 사랑스런 여자친구. 지금은 그 여자친구와 결혼해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을 키우며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더 많은 고통과 노력으로 공무원 합격을 이뤄낸 사람들에 비하면 나의 수험생활이 소소할 수도 있겠지만 20살에서 30살까지의 내 인생은 ‘열정의 시간’이였다고 자부한다.

현재의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준 ‘공무원 합격’이라는 이 단어를 난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 합격수기에 소개된 공부방법·교재 등은 글쓴이의 개인의견입니다.

 

자료제공:공감코리아 (http://www.korea.kr/newsWeb/pages/brief/jobInfo/view.do?dataId=148698114&metaId=exam_pass&pWise=main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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