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무지를 어찌하오리까?
상태바
나의 무지를 어찌하오리까?
  • 임정수
  • 승인 2010.08.13 11: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정수 법무법인 충정(구. 한승) 변호사, 전 서울고법 판사

필자는 영어울렁증이 심하기는 해도 때때로 영어 책을 읽고 영어 방송을 틀어 놓는다. 글이건 말이건 이해하는 정도가 너무 한심하여 한 동안은 어린이 동화책을 녹음한 CD를 듣기도 했다. 동화책이라고 하여 쉬운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줄거리의 윤곽이나 매우 단편적인 대목을 알아듣는 수는 있었다. 그 중 ‘Stone Fox'라는 아주 얇은 동화책에서 접한 어느 할아버지의 소신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할아버지는 미국 ‘깡촌’에서 감자 농사를 지으며 조실부모한 초등학생 손자 하나를 키우고 있다. 그 손자는 먼 거리를 걸어 학교에 다니는데, 어느 날 선생님이 할아버지를 불러 “아이가 너무 자주 엉뚱한 질문을 하여 교육에 어려움이 있다”고 불평을 한다. 할아버지는 선생님에게 ‘궁금해 하지 않고 또 질문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발전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한다. 할아버지는 나중에 손자를 불러 이렇게 격려한다. “궁금하면 곰곰이 생각해보고 책을 찾아보고 나에게 물어보고 선생님께 여쭈어 보라. 그래도 대답을 찾을 수 없으면 너는 정말 대단한 의문을 발견한 거다.”


사법시험을 공부하고 사법연수원에 다닌 것과 그 후 십수년의 법조 경력을 바탕으로 법률전문가라면서 변호사 생활을 하지만 모르는 것은 너무나 많고 그나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 알거나 업데이트가 안 된 경우가 잦다. 주변의 다른 변호사님은 물론 때때로 판사님도 잘못 알고 있으신 것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한 달 이내에 있은 일 몇 가지만 기억을 정리해 보자.


올해 막 파트너가 된 젊은 변호사 한 분이 얼마 전 필자에게 물었다. 구속적부심을 청구하였더니 검사님이 바로 기소를 해버렸고 판사실에서 ‘기소가 되었으니 구속적부심청구를 취하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전화가 와서 막막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즉석에서 ‘다른 방도가 없으니 취하하시라’고 단정적인 조언을 주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이제 2년차인 변호사 한 분이 법전을 들고 와서 ‘몇 년 전에 개정된 형사소송법은 구속적부심청구가 있은 후 기소가 되더라도 심리를 하게 되어 있다’고 알려주었다.


바로 어제 법정에서 겪은 일이다. 통상의 관례에 따라 법정 방청석 첫째 줄에 다른 변호사들과 나란히 앉아서 순서를 기다리며 앞 사건의 ‘방청’을 하고 있었다. 한 사건의 피고인이 수원지방법원 항소심과 인천지방법원의 항소심에 각각 재판을 받고 있어서 토지관할의 병합심리신청을 했으니 재판을 연기해달라는 진술을 하였다. 이 때 재판장께서 그 신청을 관할에 맞게 했는지를 피고인에게 묻자, 필자의 옆에 있는 변호사 한 분이 조그만 음성으로 ‘대법원’이라고 하셨다. 필자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변호사님이 한 때 법조문이나 법리 연구를 특별히 많이 하신 분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조금 있다가 재판장께서는 서울고등법원에 신청을 해야 된다고 피고인에게 설명을 하셨다. 몇 년 전에는 (어찌 보면 상식과 좀 다르므로 특별히 연구한 사람이 아니라면 잘 알 수 없게) 대법원이었는데 지금은 서울고등법원에 관할이 있는 것이다.


서울을 벗어나 재판을 간 김에 그 곳 법원 앞에서 개업을 한 동기의 사무실에 들러 차를 얻어 마셨다. 그 동기 변호사는 얼마 전에 집행유예를 기대한 사건에서 실형을 무려 3년 6월이나 선고를 받았다면서 그 사건 재판부의 양형이 가혹한 측면이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피고인이 과거 병역의무 때문에 공직에 잠시 있으면서 1억원 조금 넘는 돈을 받았는데, 가중처벌을 면하기 위해 5,000만원 내외 2건의 경합범으로 기소되었고 정상참작 사유가 매우 많아서 내심 집행유예를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약칭 특가법이 몇 년 전 개정되어 종전과 달리 1억원에 못 미치더라도 5,000만원이 넘는 뇌물을 받은 경우에 법정형이 7년 이상이므로 작량감경을 하더라도 3년 6월이 최하한이 되고 집행유예를 선고하지 못하는 점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덧붙여, ‘사람 그렇게 안 보았는데, 집행유예 안 되는 사건을 그렇게 해 주겠다고 속여서 수임하고 나중에 결과가 안 좋으면 재판부 탓을 하는 악덕 변호사시네’라고 우스갯소리를 하였다.


이처럼 우리 법조인은 정신적 수용능력의 한계를 묻는 법률지식의 홍수 속에서 늘 무지로 인한 오류를 저지를 위험을 안고 살고 있다. 소크라테스를 4대성인의 반열에 올리는 것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다. 필자는 그 의문 자체는 정당할 것이지만, ‘너 자신을 알라’면서 무지에 대한 자각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본 소크라테스의 안목과 각성이 신봉자나 조직적 추종자가 없음에도 그를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하기에 충분하다고 믿는다. 무지에 대한 자각과 이에 기초하여 의문을 가지고 찾아보고 물어보는 행동양식 및 습관이 무지로 인한 위험을 줄여줄 가장 크고 어찌 보면 유일한 방책이리라.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