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고시생과 지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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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고시생과 지킬 박사
  • 법률저널
  • 승인 2010.07.2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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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의 탄생

인간의 이중성을 소설화한「지킬박사와 하이드 」. 로버트 스티븐슨이 이 책을 펴낼 무렵, 영국은 최고의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경제적. 문화적으로 오늘날 미국에 버금갈 정도의  영향력을 지니고 있던 19세기 영국사회. 이 빅토리아 시대의 상류계급에게는 그 만큼의 도덕과 책임의식이 요구되었다. 이에 상류층들은 스스로를 절제하며 자선활동이나 종교활동 등을 통해 모범적인 삶을 살아갔다. 이러한‘노블레스 오블리주 '와 모순된, 요구되어진 삶으로부터의 일탈을 꿈꾸는 마음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지킬 박사인 ‘하이드’가 탄생하게 된다. 

 
이렇게 탄생한 하이드와 지킬박사로 대변되는 인간의 이중성은 누구에게서나 발견할 수 있다. 사회에서 규정짓는(요구하는) 나의 모습과 사회로부터 꽁꽁 숨겨놓은 잠재된 내가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과 소설은 엄연히 다르다. 'Real'세계에 소속된 우리는 내재된 욕망의 발현체인 ‘하이드’가 되어서도, 될 수도 없다. 그러나 예외 없이 적용될 듯한 이 진리가 ‘Real‘을 떠난 ’Second Life‘에서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진리가 전복되는 순간의 짜릿함,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사이버 공간으로 몰려드는 걸까.

Second Life - 그곳은 무중력 상태?

 
시험의 압박,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 시간·체력 싸움에 지쳐 몸이 천근만근으로 느껴지기 십상인 수험생활. 고시계(界)에서 살아가는 수험생에게 지워지는 짐은 무겁기만 하다. 물론 사회적 요구에 순응해 살아야했던 지킬박사와 달리, 수험생 스스로‘고시’라는 짐을 짊어졌다는 게 다르긴 하지만,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를 짓누르는 상황을 잠시 잊고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싶을 때, 손쉽게 찾아드는 곳이 각종 ‘인터넷 게시판’이다. 모니터와 두드릴 키보드만 있으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드나들 수 있으니 이만한 쉼터도 드물다. 게다가 이 휴식처에서는 고시생이 아닌 ‘어느 누구도’ 될 수 있다.


‘아무나’가 되어 특정인 혹은 또 다른 불특정인이 된 누군가에게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려도 ‘언제나 무죄’가 되는 곳. 책임이란 중력이 제거된 사이버 공간에서 자행되는 악플, 언어폭력은 정말 무죄일까.


최근 법률저널 홈페이지에서 벌어진 악플 사태는 무중력상태에서의 익명성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한 수험생의 합격수기가 기사화되어 홈페이지에 올라가자, 순식간에 엄청난 댓글이 달렸다. 물론 본인이 누구인지 밝히고 댓글을 단 이는 한 명도 없었고, 익명성에 숨어들어 행해진 악플 공격은 거침이 없었다. ‘악플 테러’가 발생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관련 기사는 삭제되었고, 집단 공격의 대상이 된 수험생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이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지금도 누군가를 비방하는 글이나 ‘카더라’를 통해 확산된 근거 없는 유언비어들이 깃털처럼 가볍게 온라인 게시판을 날아다니고 있다. 조용히 날다가 공격대상이 정해지면 ‘벌떼’처럼 모여들어 또 다른 악플 폭격을 행할 여지는 얼마든지 상존해 있는 것이다. 융단폭격에 따른 피해 혹은 피해자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그림 4
발을 땅에 붙이게 해 줄 ‘중력’은 어디에?

무중력 상태의 공간에서 깃털보다 가볍게 여겨지는‘책임’의 소재를 따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임의 부재’로 인해 상처받은 누군가를 가벼이 여긴다면 이는 더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우리 또한 그 ‘누군가’가 되어 있을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사이버 공간에서 가면을 쓴 채 ‘둥둥’떠다니는 즐거움만큼 ‘책임’이란 중력이 중요한 것이다.

중력이 없다면 모든 행성은 둥근 모양을 유지하지 못하고 찌그러지게 된다. 지구 중력의 1/6에 불과한 ‘달’도 중력이 존재하기에 ‘둥글’수 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삶을 찌그러뜨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이버 공간’, Second Life에도 ‘책임’이란 중력은 필요하다. 비록 현실보다 가벼운 중력일지라도 더 이상 ‘무중력’상태가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책임이 실종된 무중력 공간에서 우리 모두가 둥글게 둥글게 살 수 있도록, 더 멀리 날아오르려는 발에 잠깐 힘을 주자. 그리고 생각하자.


우리가 날아오르면서 짓밟을 수 있는 그 누군가가 저 아래에 있다면? 그 누군가와 눈높이를 맞춰, 그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본다면? ‘역지사지’의 자세, 이것 하나면 충분하다.


‘나를 잊고 타인까지 망각하게 하는 자유’는 통제할 수 없게 된 지킬 박사의 또 다른 분신인 ‘하이드’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이형원 인턴기자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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