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저인터뷰]가정의학과 전문의 김연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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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저인터뷰]가정의학과 전문의 김연희 변호사
  • 법률저널
  • 승인 2010.07.23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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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의료행정체계를 고치는데 기여할 것"

김연희 변호사(44회.의성법률사무소)는 가정의학과 전문의 출신이다. 김 변호사는 95년 의과대학 졸업 후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가정의학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약 10년간 의학 관련 생활을 해온 셈이다. 그랬던 그가 돌연 의료전문 변호사로 변신, 세간의 화제가 됐다.


그 동안 의사를 하다가 다른 직업으로 직종을 전환하는 경우는 드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사법고시에 뛰어든 그는 수험생활 3년 만인 지난 2002년에 당당히 합격의 기쁨을 누렸다.


법률저널이 그를 만나 성공적인 직업전환을 하게 된 노하우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병원에서 변호사의 길 모색

"의사로 일하면서 의외로 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많았다"고 운을 뗀 김 변호사는 대표적인 계기로 ‘보라매 병원 사건’을 꼽았다. 사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97년 보라매병원에서 뇌수술을 받고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한 환자의 가족들이 생활고를 이유로 의료진 측에 퇴원을 거듭 요청했다. 처음에는 이를 극구 거부하다 결국 환자의 가족들의 성화에 못 이겨 해당 환자를 퇴원시킨 의료진은 살인방조죄로 처벌받게 된다.

김 변호사는 이 사건을 두고 "치료를 계속 했으면 소생 가능성이 비교적 높아질 수 있었던 환자를 퇴원시킨 건 엄연히 병원 측의 잘못"이라 말하면서도 "그러나 내가 의사로 일하던 사건 당시엔 법원 측 판결이 다소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에게 따르면 사람의 생명은 ‘연속선상’에 있다. 즉 ‘보라매 병원 사건’이 벌어진 그 때는 환자의 건강 상태가 ‘살 가능성’이 더 높은 쪽에 있는지, 혹은 오히려 반대인지 등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법적인 기준을 제시해두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당연히 의사 입장에선 퇴원 여부에 대해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보라매 병원 판결 이후 의료진과 환자 가족들의 모습에도 변화가 있었다. 우선 치료비를 감당할 형편이 안 되는 가족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환자를 퇴원시켰다가 혹여 살인죄로 기소될까 봐 발만 동동 구르는 경우가 늘었다.

의료진 입장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른바 ‘죽을 권리’를 주장하며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당장 퇴원시켜줄 것을 주장하는 환자 가족들의 성화를 일일이 감당해야만 했다.

"마침 내가 가지고 있는 의료 지식을 사장시키지 않으면서 직업을 성공적으로 바꾸려면 뭐가 있을까 하고 고민하던 차였다"고 고백한 김 변호사는 본 사건을 통해 의료 관련 문제 발생시 이 같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전문 법조인의 필요성을 느꼈다.

즉 ‘의료 전문 변호사’를 그가 가질 수 있는 최적의 직업이라고 확신하게 된 것. 이런 결심을 하게 된 배경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는 “솔직히 의사 생활이 지루했다. 전문의 생활 4년을 합치면 의학에 거의 10년 동안 종사했다. 그래도 항상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면서 “정적인 직업인 의사보다는 좀 더 동적인 변호사로서 활동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괴짜 의사에서 전문 변호사가 되기까지

“전문의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사법고시를 준비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다 놀라지 않았나”하고 묻자 김 변호사는 “놀라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며 다소 예상치 못한 답을 했다.

알아보니 김 변호사는 대학 시절 ‘괴짜 의사’, ‘팔방미인’으로 유명했다. 항상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자세와 자신감을 잃지 않는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고 한다.

일례로 그는 예과부터 본과 3학년 때까지 연극반 활동을 활발히 했다. 으레 본과에 올라가면 학업으로 인해 잠 잘 시간도 없이 바빠진다는 것은 의대생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사실. 하지만 그는 수면 시간을 ‘반납’하는 것을 꺼리지 않고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열성을 다했다.

그는 “연극반 내에 의과대학 출신은 나 밖에 없었다”면서 “연극에 성실하게 출연하면서도 학과 상적을 항상 상위권 수준으로 유지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의대 내에서 ‘여행가’로도 유명했다. 최소 일년의 한번은 ‘나 홀로 전국 여행’을 떠났다. 여자 혼자 전국 여행을 다닌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는 그것을 즐겼다.

때문에 이런 전력(?)을 가진 그가 사시에 도전한다고 주변에 알리자 그의 지인들은 놀라기보다는 “너라면 분명히 합격할 것”이라며 오히려 격려하는 반응을 보이게 됐다.

“목적이 합격이면 공부가 힘들 수밖에 없다”

괴짜 의사 출신답게 김 변호사의 수험 생활을 살펴보면 역시 독특하다. 합격에 걸린 기간은 약 3년이지만 이 중 약 1년 정도는 고시촌 근처 병원에서 틈틈이 의사 일을 했다. 학비와 생활비를 모으기 위한 것도 어느 정도 이유가 되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변호사로서의 목표 의식이 희미해질 때 다시 의사로서 환자들을 대해보며 ‘왜 법조인이 되고자했는지’ 초심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던 게 바로 그의 의도였다.

고시 합격자들에게 수험생활에 대한 추억을 물으면 대부분은 ‘합격에 대한 부담감으로 수험생활이 힘들었다’는 것이다. 반면 김 변호사는 “공부가 정말 재밌었다”며 이색적인 답을 했다.

그는 “처음 법학을 접했을 때 공부하는 게 몹시 재밌어서 놀랐다. 특히 형법의 경우 딱 한번 공부하고 다시는 안 볼 정도로 각인이 될 정도였다”며 “즐겁게 공부하니 합격에 대한 자신감은 저절로 뒤 따라왔다”고 말했다.

공부가 힘들어질 때면 현장에서 의사 가운을 입고 법을 공부하게 된 이유를 진지하게 고민해보며 자신을 다잡았다던 그는 현재 고시를 준비하는 수험생 후배들에게 “목적이 합격이면 공부가 힘들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만일 후에 합격을 못하게 된다면 그동안 자신이 공부해온 과정이 전부 무효화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논리대로 설명하자면 “목표를 합격에 두지 말고 더 높고 더 먼 곳에 두라”는 게 김 변호사의 생각이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소임을 다하며 열심히 즐겁게 공부하면 어느 샌가 합격을 거머쥘 수 있다는 것. 

이어 그는 “비록 나중에 불합격되더라도 수험 공부에서 획득하는 모든 지식과 경험들이 종국엔 내 인생 전반에 쓰이는 지식이자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훗날 돌이켜보면 청춘을 바쳐서 열정적으로 공부했던 현재 자신의 모습이 굉장히 자랑스럽고 멋있는 일로 기억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변호사, TV로 진출하다

약 3년 전 어느 날, 김 변호사 사무실에 모 케이블 TV 제작 피디가 찾아왔다. 법률 사건 관련 재연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김 변호사가 진행을 해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브라운관에서 변호사들이 패널로 참여해 법률 자문을 해주는 사례는 있었지만 변호사가 한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하는 일은 없었다.

바쁜 일정이었지만 김 변호사는 프로그램 진행을 흔쾌히 응했다. 첫 녹화 당일 연극반 출신답게 카메라 울렁증도 없었다. 1년 6개월 정도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그가 얻은 건 바로 ‘다양한 시각’이다.

실제 사건의 판결문을 토대로 영상화된 프로그램인 만큼 진행자로서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자극적인 사건을 접할 수 있었다. 그는 “방송 진행 경험이 의뢰인 상담시 긍정적인 작용을 톡톡히 했다”며 “방송에서 실로 다양한 사건 사례를 간접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나를 찾아오는 의뢰인들에게 ‘이 정도는 인생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위로하고 안심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운명 같은 ‘김 할머니 사건’

‘보라매 병원 사건’으로 인해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김 변호사에게 운명 같은 사건이 찾아온다. 바로 ‘김 할머니 사건’.

지난 2008년 세브란스병원에서 조직 검사 중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 모 할머니의 가족이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지’를 주장하며 헌법소원, 민사소송을 제기한 사건으로 그는 병원 측 변호사로 나섰다. 김 할머니 사건에서 얻게 된 결과는 무엇일까?

예전부터 이런 판결을 기다려 왔다는 김 변호사는 “법원에서 명시적으로 ‘죽을 권리’라는 자기 결정권을 인정해줬다는 것이 의미가 크다”며 “또한 어떤 경우에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줄 것인가를 명시적으로 제시해줬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지난 5월 본 사건에서 환자의 평소 말과 행동을 통한 추정적 의사를 인정했다.

이어 “어느 한 쪽이 이기겠다는 소송은 아니고 어떤 기준을 이끌어내기 위한 소송이었다”고 강조한 그는 “환자의 추정적 의사가 어떤 단계를 거쳐서 도출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왔는데 굉장히 환영할 만한 소송”이라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 정도 사회적 합의가 도출될 수준이 됐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덧붙였다.

“선례를 남기고 싶다”

김 변호사는 오는 9월 의료법을 전공으로 하여 성균관대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다. 사람들에게 많이 인용될 수 있는 논문을 쓰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그는 “우리나라 의료법이 아직은 초기단계라서 보건 의료 관련 법률에 대한 해석을 비롯해 법률, 판례 자체가 정리가 잘 되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이런 부분을 고려해 논문을 쓰고 싶다. 내가 쓴 논문이 앞으로 판결 상에서 혹은 다른 학자 분들이 글을 쓰거나 할 때 많이 인용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아직 판례가 집적되지 않은 분야에서 선례로써 남을 수 있는 소송을 하고 싶다”며 “특히 의료 행정 분야의 소송에 힘쓰고 싶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기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왜곡된 의료행정체계를 고치는데 기여할 만한 선례를 남기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라며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김포그니 기자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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