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를 어찌 잠재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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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를 어찌 잠재우나
  • 법률저널
  • 승인 2010.06.2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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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처음으로 느낀 분노에 대한 추억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아주 사소한 개인적 경험이었다. 개구쟁이 시절이라, 복도에서 뛰면 안 되지만, 쉬는 시간에 복도를 뛴 것이 사단이었다. 당시에는 한 학년이 열세반이나 되었고, 한 반 학생 수도 70명 가까이 될 정도로 많았던 터라 교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화장실을 5분 남짓한 쉬는 시간에 다녀오는 것은 아주 바삐 서둘지 않으면 안 되는 중대사(?)였다. 어린 아이의 눈에 비치는 복도는 왜 그리 길었는지 모른다. 화장실에 다녀오던 중 수업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복도를 뛰게 되었다. 그때 마침 옆 반 교실로 들어가시던 선생님, 내 4학년 담임선생이시기도 하셨던 친한(?) 선생님과 마주쳤고, 반가운 마음에 뜀박질을 하면서 낭랑하게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드렸으나, 친절한 반응을 기대한 나의 예상과 달리 나에게 갑자기 날아온 것은 눈에서 번갯불이 번쩍 이는 따귀 한 대였다.

  선생님은 내가 복도를 뛴 것에 대하여 엄중한 처벌을 내렸고, 그 것은 전후좌우, 좌초지종을 묻지 않은 엄청난 징벌이었다. 얼마나 세게 따귀를 맞았던지 벌겋게 손자국이 날 정도였고,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이 새롭다. 어이없이 뺨을 맞은 뒤 수업시간 내내 4학년 때 내 담임선생님, 그때 반장을 했던 터에 나를 많이 귀여워해 주셨던 선생님으로부터 기습적인 따귀를 맞은 사실로 왜 그리 분노에 떨었는지 모른다. 아마도 “선생님,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에 “오, 시영이냐?”하며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시는 반가운 대꾸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내 기대와 달리 매서운 따귀가 날아온 것에 대한 심한 배신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여튼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지났음에도 그 날의 뺨 한 대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고 생생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청년시절, 시드니 셀던의 “천사의 분노”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착한 이미지의 천사에게 분노라는 이미지를 덧씌운 작가의 작명에 감탄한 바 있었다. 돈과 명예를 좇아 불의와 타협하는 변호사, 이를 막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또 다른 변호사의 이야기가 러브스토리에 녹아 함께 전개되는 법정소설인 천사의 분노를 읽으면서, “착한 천사도 분노한다는 사실”을 이미지로 깨달을 수 있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이 시작되었다. 세계인들이 축구공 하나에 일희일비하고 있다. 이렇게 세상은 월드컵의 열기로 들끓고 있지만 그러는 중에도 대한민국에는 여기저기에서 분노가 들끓고 있다. 붉은 악마의 함성이 넘쳐나고 있는, 즐거운 축제 한 마당이 벌어지고 있는 뒷마당에서는 하루하루 살아가기 힘든 국민들의 분노가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신마저도 세상 모두를 평화롭게 할 수는 없는지 월드컵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지구 곳곳에서는 여전히 테러와 폭발, 삶과 죽음의 아비규환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네 가정도 수많은 화병에 걸린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고, 학교를 마치고서도 취직을 하지 못하여 사회와 국가에 대한 분노가 가득한 젊은이들도 넘쳐나고 있다.

  월드컵을 둘러싼 FIFA, 국제축구연맹의 돈놀이도 장난이 아니고, 이를 독점중계하는 SBS의 광고수입도 장난이 아니고, 서울시청앞광장에서 벌어지는 축구응원 속에서도 여기저기에서 펼쳐지고 있는 기업들의 광고전도 장난이 아니다. 모든 정의가 돈 앞에 진실을 감추고 타협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분노에 휩싸인다. 그러면서 깨닫는 것은 축구공은 둥글구나, 그래서 굴러갈 수밖에 없구나 하는 것이다. 공을 차는 사람들이야 기분이 좋겠지만, 응원하는 사람들이야 신나겠지만, 경기시간 내내 축구선수들의 발길질에 뻥뻥 차이기만 하는 축구공은 무슨 죄가 있길래 저렇게 차이고 또 차일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태어날 때부터 차이기 위해 태어났다고 하지만, 바람 빠져 버려질 때까지 축구선수들에게 동네북이 되어 이리 얻어터지고 저리 얻어터지는 축구공이 갑자기 불쌍해진다.

  마치 젊고 예쁜 여자 리포터가 티브이 방송을 통해 파닥거리는 물고기 한 마리를 치켜들고, 호들갑스럽게 웃고 떠들며 목소리 높여 즐거워할 때 느끼는 “물고기에 대한 불쌍함”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물고기는 제 놀던 바닷물에서 강제로 잡혀 올라와 목숨이 경각에 달려 살기 위해 꼬리를 흔들며 몸부림을 치고 있는데, 여자 리포터는 물고기를 하늘 높이 치켜 올린 채 즐거워 박수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면 “인간 무의식의 잔인함”을 깨닫게 된다. 저 물고기의 생명은 저 여자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구나, 누군가 커다란 힘을 가진 자에게 있어 작은 생명은 아무런 인식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나는  세상이 무서워진다. 내가 언제 저 여자 리포터처럼 물고기를 치켜들고 있는 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아니 더 큰 힘에 의해 내가 그 물고기가 되어 아둥바둥 몸부림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무섭다. 그 어느 쪽이 되더라도 나는 무섭다.

  오래전 “두 얼굴의 사나이”라는 드라마가 장기간 방영된 적이 있었다. 감마선에 노출된 후 분노에 사로잡히게 되면 괴물 같은 헐크로 변신되어 괴력을 발휘하는 물리학자 데이비드 박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두 얼굴의 사나이는 인간이 평온할 때와 분노에 사로잡힐 때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위 드라마는 그 뒤로도 영화와 에니메이션으로 리메이크되어 방영되었기 때문에 두 얼굴의 사나이 헐크는 우리 모두에게 친숙한 아이템이다. 어쩌면 그렇게 친숙하게 된 것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두 얼굴의 사나이가 잠복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월드컵이 열린지 일주일이 지났다. 벌써 각 출전 팀들은 한 번은 이기거나 아니면 졌다. 서로의 실력이 비등하여 비긴 팀도 있다. 그라운드를 질주하는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중들은 환호하고 탄식한다. 거기에서는 각본 없는 드라마가, 생생하고 리얼한 대장관의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기에 감동이 있고, 흥분이 있고, 좋은 의미의 분노가 있다. 지난주에 발표된 천안함사태에 대한 감사원감사결과를 보면서, 총체적 안보태세의 부실과 허위를 접하게 되어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자신들의 잘못을 은폐해 온 군에 대하여 분노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치수에 대하여는 건설사 사장을 해보아 누구보다도 잘 안다는 이명박 대통령이 청계천복원공사에 뒤이어 내놓은 4대강사업, 어찌 보면 이명박 대통령은 물을 잘 아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가 대통령 당선 직후에 발생한 남대문화재참사, 취임 직후 빚어진 용산화재참사, 미국소수입문제로 빚어진 서울시청앞광장에서의 촛불시위, 폭발로 빚어진 천안함사태, 지난해에 있었던 제1차 나로호 폭발사건과 지난주에 있었던 제2차 나로호 폭발사건 등 수없이 불로 빚어진 참사가 발생하는 것을 생각하면, 불로 인한 화마의 흔적이 여기저기에서 그를 상채기내고 있음을 본다. 그는 어쩌면 물을 잘 아는 대통령이라기보다는 불에 친숙한 대통령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쩐지 두 얼굴의 사나이 헐크처럼, 그가 무리하게 추진하는 물정책에 대한 반작용으로 불에 의한 사고가 기승을 부리는 것이 아닌지 두렵기조차 하다. 천지만물의 운행이 모두 기의 결합이라고 믿고 있기에 어딘가에서 물이 승하면 이를 잠재우기 위해 불이 기승을 부리고, 반대로 불이 기승을 부리면 물이 이를 잠재우는 이치가 질량불변의 법칙 속에서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그렇게 뜨겁게 달아오른 불의 분노가 이번 6ㆍ2지방선거였다고 볼 수도 있다. 국민의 입에 재갈이 물리고, 자기편이 아니면 무조건 배척당하는 지난 2년 남짓 기간 동안에 국민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정권에 대한 분노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던 것을 물대통령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를 귀먹고 눈멀게 만든 이들이 그의 주변에 넘쳐나고 있다. 호가호위라고, 호랑이 대통령을 등에 업은 수많은 여우같은 교활한 자들이 음으로 양으로 기획하고 집행하여 야금야금 자신들만의 영역을 넓혀가는 모습을 보면, 여기저기 개들이 오줌을 지려 제 영역을 표시하는 것과 흡사 닮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가 너를 밀었으니, 너는 내 편, 앞으로 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끼리끼리의 잘못된 상부상조가 넘쳐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한편에서는 물고기가 허공에 매달려 아등바등하고 있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좋아라고 손뼉 치는 모습, 한쪽에서는 골을 먹어 낙담하고 있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좋아라 환호하는 월드컵경기,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천사가 분노를 접고, 하얀 날갯짓을 하는 평화로운 모습이 그리울 뿐이다. 대통령이 새벽기도 중 그가 믿는 하나님이 보낸 천사를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국민의 분노를 경청과 사랑으로 잠재우고, 전쟁을 부추기는 잘못된 보수를 대대적으로 보수하는 지혜를 얻기를 기도한다. 월드컵에서 우리 팀이 16강에 오르지 못해도 좋다. 아무 선수도 다치지 않고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기만을 바란다. 그래도 이왕이면 16강에 오르고, 8강, 4강, 2강, 아니 우승하고 오면 얼마나 좋을까, 에잇, 이왕 간 거 우승하고 와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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