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험생활]엄상익변호사 (6)
상태바
[나의 수험생활]엄상익변호사 (6)
  • 법률저널
  • 승인 2002.10.16 13: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암자 방에 앉아 책을 읽던 어느날 오후였다. 갑자기 방문이 확 열리면서 털모자를 쓴 영감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순간 나는 멍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응 그래도 자리에 있긴 있구만"


학장영감이었다. 예고대로 불시에 들이닥친 것이다. 나는 벌떡 일어나 꾸벅 인사를 했다. 학장이 댓돌 위에 신발을 벗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옆방 앞방에서 알아차리고 부지런히 모여들었다.


"민법 책은 누구 걸 읽느냐?"


학장이 내게 물었다.


"서울대 곽윤직 교수가 쓰신 걸 읽습니다."


순간 그가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그 양반은 나라면 오십 미터는 도망가는 위인인데 허허-----"


두 학자는 서로 학문적 라이벌 관계였다고 들었다. 옆에 있던 사람이 살짝 귓속말로 이렇게 속삭였다.


"민법책 김기선 교수 거 본다고 말해 그래야 기분 좋아해"


"요즈음 공부하는데 힘든 문제는 없느냐?"


학장이 인자한 얼굴이 되어 물었다. 모두들 방에서 책을 읽는걸 보고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만약 수험생들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대노했을까 모골이 송연했다.


"치질 때문에 피가 나와요."


내가 대답했다.


"그렇다고 그걸 핑계로 나가 돌아다니면 안 된다."


학장영감이 나에게 못박았다. 그의 훈시가 시작됐다.


"너희같이 젊은 놈들은 절에서 주는 영양가가 작은 음식만 먹어야 해. 고기를 먹고 힘이 넘쳐나면 밖에 나가 오입질을 할 수 있어. 그저 음식은 공부만 간신히 할 수 있는 정도로 들어가야 해."


당시는 그런 통제에 불만을 가졌었다. 그러나 오십에 이르는 지금에 와서는 충분히 그 의미를 안다. 학자는 연구에만, 종교가는 기도에, 혁명가는 혁명에 전념해야 송곳이 판자를 뚫듯 일이 성사되는 것이다. 그는 치질연고를 사다가 던져주고 떠났다. 입은 험하고 마음은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 암자에는 고시생뿐 아니라 당시 반독재투쟁을 하다가 도피해온 고교 후배도 있었다. 그는 매일 러시아 혁명사, 불란서 혁명사 같은 사상서적을 읽고 있었다. 박정희 영구독재를 의미하는 유신헌법책을 보면서 나는 부끄러웠다.


그러나 난 아직 사회의식이나 정치의식이 성숙하지 못했다. 몇 년 후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되고 계엄령이 선포됐을 때 나는 수도권지역 군 검찰관이었다. 군이 전권을 장악한 시기였다. 나는 데모를 선동한 영등포 껌 공장의 여공대표를 보러 유치장 감찰 겸  나갔었다. 까마귀 같은 잡범 들이 추워 벌벌 떠는 가운데 그녀는 학이었다. 촉수 낮은 알전구 아래서 그녀는 당당히 책을 읽고 있었다. 근로자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걸 합동수사반은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걸어버린 것이다. 나는 불기소처분으로 그녀를 석방하면서 원당암 시절 부끄럽던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다시 얘기를 해인사의 원당암으로 돌리겠다. 하루는 주지의 방에 불려 갔다가 눈매가 날카로운 스님을 보았다. 그 스님은 고시생인 나를 알아보고 못마땅한 듯 외면했다. 그 스님이 법정스님이었다. 후에 나는 그 분의 수필집들을 읽고 서야 출세주의자들의 도량점거에 대한 불쾌감인걸 알았다. 수정 같은 얼음 속으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외로움에 가슴을 앓았다. 이때 나는 지금의 처와 연애를 시작했다. 시간조차도 없지만 잘해주고 싶었다. 그 암자에 묘각 이라는 스님이 있었다. 끌 한 자루를 나무에 대면 보살이나 부처가 살아있는 듯 탄생했다. 내가 그에게 솔직히 부탁했다.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데 스님 작품을 선물하고 싶어요. 하나 만들어주면 정말 감사할텐데-----"


그가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대답했다.


"나도 행자 신세라 딴 짓 하면 주지가 싫어할텐데---그런데 만들면 뭘 만들까?"


"선물할 거니까 예술작품을 만들어줘요. 색다른 걸로."


"알았어. 주지 몰래 작업해 볼께."


그가 쾌히 공범이 되기를 승낙했다. 그는 다음날 커다란 나무둥치 하나를 구해다가 물에 담갔다. 충분히 불린 후 그늘에 말려 조각해야 나무가 트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열심이었다. 절 뒤 공터에서 사포 질을 반복하고 콩기름을 먹이고 말렸다. 동자가 구름기중을 이고 가는 작품이 완성됐다. 나는 무거운 그 작품을 커다란 배낭에 넣고 대구행 만원 시외버스에 하루를 시달리면서 지금의 아내에게 선물했다. 그 순간 불행은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약력:1954년 경기 평택 生/고대법대졸/안기부정책연구관/대도 조세형·신창원 등 변호/KBS 여기는 현장·SBS 사건파일 등 진행/현 변호사


▶저서:'변호사와 연탄구루마', '하나님 엄변호사입니다', 엄마 합의합시다' 등 다수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