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저널수기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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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저널수기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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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2.10.16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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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건희
서울대법대 4년/서울 관악구 봉천 4동

 

Ⅰ.들어가는 글


법률저널의 합격, 불합격 수기 공모모집 공고를 보고 처음에는 '일차만 합격한 놈이 무슨 합격기?' 하며 글을 쓸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일차 합격 발표가 있은 후에 재학 중에 일차를 합격해서인지, 나이가 많은 형에게 묻는 것이 편해서인지는 몰라도 후배들이 공부방법에 대해서 물어오는 것을 보고 이제 고시 공부에 접어드는 수험생들에게 저의 작은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램에서 이렇게 글을 적는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는 조속한 합격의 영광이 있기를 기원한다.

 

Ⅱ.사법시험을 보기까지


나는 경제적 사정이 여유롭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직업은 많이 바뀌어서 전에는 무엇을 하셨는지는 기억에 나지 않는다. 지금 아버지는 택시 운전을 하시고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을 하시고 계신다. 초등 학교 4학년 때에는 집이 빚더미에 올라 남들이 말하는 소위 '야반도주'를 하였다.


그 당시에는 왜 집이 빚더미에 올라 앉았는지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부모님이 법적으로 억울한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어머니는 그 당시 이야기만 하시면 눈물을 글썽이신다. 아마 이 때부터 나의 가슴속에는 법관에 대한 꿈이 생기게 되었던 것 같다. 그 때부터 7년간 부모님과 떨어져 살며 친척집을 전전하며 학교를 다녔었다. 이 당시 작은아버지가 많은 도움이 되어 주셨는데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부모님 못지 않은 도움을 주셨다. 중학교 3학년 때 즈음 어느 날 작은아버지가 시간이 나면 틈틈이 읽어보라고 말하시면서 책을 한 권 내밀어 주셨다. 그 책은 고시생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 쯤은 들어보고 대화 중간에 농담 삼아 이야기하는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지금도 그 책이 나오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책은 사법시험 합격생들의 합격 수기 모음집이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법관에 대한 내 자신의 꿈을 계속 가꾸어 나갈 수 있었고 나 보다 더 어렵게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구나 하는 생각에 부모님과 집안 사정에 대한 원망도 누그러뜨릴 수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 우리 소유의 집이 아니지만 부모님과 함께 살 수 있는 보금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공부도 그럭저럭 하게 되어 비록 삼수를 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가고 싶어했던 S대 법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 당시의 병역법에 의해 더 이상 군 입대를 연기 할 수 없었던 나는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 복무를 위해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만기 제대 후에 학교에 다시 복학하게 된 시기가 99년 3월이었고 지금 오늘의 시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렇게 사법시험 일차를 합격하기까지 이야기를 한 것은 어려운 시기를 다시 한 번 생각함으로써 앞으로의 수험생활에 있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으나 어려운 집안 사정이 사법시험을 공부하는데 있어서 공부방법을 정하는데 있어서 적지 않은 영향이 있었음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Ⅲ.수험 생활


군 제대 후에 사법시험에 대해서 아무런 정보도 없었던 나는 학교에 복학을 했는데 권영성 교수님의 헌법교과서와 이재상 교수님의 형법총론 그리고 곽윤직 교수님의 민법총칙 교과서 만 가지고 사법시험에 대한 대장정(?)의 길에 합류했다.


이 당시에 주거 공간으로 살았던 곳이 남도학숙이라는 지방자치단체 설립의 기숙사였는데 방을 같이 쓰는 룸메이트가 같은 과의 같은 학번의 일년 후배였다. 이 후배를 만난 것이 나에게 있어서 행운이었다고 생각된다. 그 당시 그 후배는 사법시험 1차를 친 법대 4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그 후배를 통해 사법시험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대충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일단 학교 수업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과 그 다음해에 사법시험 1차를 봐야한다는 생각 그리고 군에서 다져진 체력과 인내력으로 사법시험과 관련된 학교 교과과목을 닥치는 대로 들었다. 수강신청을 하지 않은 과목은 청강을 하였다. 심지어는 아무런 이해도 되지 않은 3학년 4학년 후사법 과목도 청강을 하였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자만심과 오만이었다고 생각되지만 사법시험 1차의 기본 삼법인 헌민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학교 수업에 충실히 하는 자가 결국은 좋은 성적을 얻을 것이라는 생각에 학원은 다닐 생각을 하지는 않았고 집안 사정도 여유롭지 못하여 한 강좌에 몇 십 만원씩 하는 학원강의를 들을 생각은 하지도 못하였다. 이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는 선배님과 후배들에게 부탁을 하여 강의 테이프를 빌려 두 세 번 반복해서 듣는 것이었다.(이 당시 강의를 테이프로 듣는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무척 신기했다.)


이렇게 일년을 공부해서 턱없는 실력이었지만 그 다음해 42회 1차에 응시하였다. 물론 불합격을 예상하였고 결과도 불합격이었다. 그러나 시험을 본 직후 시험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고 무엇이 취약한 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고 공부방법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이것은 42회 시험에 있어서 내가 거둘 수 있었던 수확이었다. 00년에도 그 전해와 마찬가지로 학교 수업에 충실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일년의 짧은 기간의 공부였지만 법학에 대해서도 무엇을 알아가고 있다는 지적 욕구를 충족하는 재미에 지치는 줄 모르고 공부를 하였다. 이 당시에도 학원 수업은 듣지 않고 여전히 테이프를 반복하는 공부방법을 선택하였다.


그렇게 또 다시 일년이라는 시간은 흘렀고 43회 사법시험날짜가 다가왔다. 선택과목을 잘 치르지 못했다는 약간의 불안함이 있었지만 시험을 보고 나와서는 합격할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기본 삼법을 채점해 본 결과도 총 10개만 틀려 합격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선택 과목은 떨려서 발표 때까지 채점하지 못 하였다.) 그러나 시험직 후  발표 때까지 나의 고시 생활에 있어서 가장 소홀히 보낸 시간이었다. 매일 법률저널의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을 들락날락하며 근거 없는 소문에 울고 웃고하며 2개월이라는 시간을 허비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2개월을 보내고 발표일이 다가왔다. 핸드폰도 꺼놓고 있다가 다시 켜니 수신된 여러 개의 메시지에는 '힘내라'라는 글만이 있을 뿐 축하한다라는 메시지는 없었다. 커트라인은 87.96 !! 하늘이 꺼질 것 같았다. 몇 일간 무엇을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내가 이 시험에서 합격할 수 있을까?'하는 내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계속 밀려왔다. '혹시 행정상의 착오 아니야?'하는 생각도 계속 들었다. 며칠 후에 점수를 확인해 보았다. 3문제 차이로 떨어졌다. 역시 선택과목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기본 삼법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선택과목을 한 번 씩만 보고 시험장에 들어간 것이 화근이었다. 친구에게 이야기하였더니 친구가 하는 말이 '사법시험은 어느 한과목이라도 소홀히 여겨서는 안돼!'라고 말을 하였다. 또 다시 나의 자만심에 하늘이 철퇴를 가하였던 것이었다.


마음을 다시 가다듬어야 했다. 또 다시 헌민형을 보는 것은 심적으로 많은 부담이 왔다. 그래서 여름 방학이 끝나기 전까지 후사법을 공부하기로 하였다. 후사법 교과서를 일괄적으로 다 구입하고 학원 강의 테이프도 자비로 구입하여 전부 3회독씩 하였다.(이 때 밑줄 긋고 가필하여 놓은 것이 이번 44회 2차 시험을 보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9월이 되자 헌민형 공부를 다시 시작하였다. 이 때에는 공부방법을 바꾸었다. 어차피 사법시험은 최종 2차를 합격해야지 하는 것이라는 생각과 그 다음해에는 동차를 노릴 생각으로 기본 삼법은 2차공부까지 병행을 하였다. 그래서 각 과목당 사례집과 판례집을 사서 동시에 보았다.(이 방법은 약간의 시간과 노력을 요하지만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헌민형을 몇 회독하고 나니 겨울 방학이 다가왔다. 갑자기 몸이 많이 안 좋아져서 광주 집으로 공부 장소를 옮기고 시험도 거기에서 볼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사법시험이 안되면 군법무관이라도 가야 한다는 생각에 동시 지원을 하였다.


그 때부터 오로지 의지와 약으로 버티는 하루 14시간의 내 자신과의 싸움이 2개월에 거쳐 진행되었다. 토요일 일요일도 없었다. 그저 휴식이라고는 일요일 오전에 목욕탕을 가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또 다시 시험일이 다가왔다. 시험을 마치고 집으로 어머니하고 돌아오는 길에 '시험 잘 봤니?'하는 물음에 대답할 힘도 없었고 그저 잠을 자고 싶을 뿐이었다. 이틀간 잠만 잤다. 학교 등교를 위해서 다시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 채점(이번에는 전과목 채점)을 하고 바로 2차공부에 들어갔다. 작년과 같은 바보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그렇게 기본 삼법과 후사법을 2회독 하고 나니 발표일이 다가왔고 여자친구가 새벽에 학교에 등교하고 있는데 전화로 "오빠 축하해"하고 1차 합격 소식을 전해왔다. 기쁨도 잠시로 접고 2차 공부에 더욱 매진하여 금년 2차 시험을 무사히(?) 치르고 내년 2차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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