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저인터뷰]탁경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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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저인터뷰]탁경국 변호사
  • 법률저널
  • 승인 2010.03.19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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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주장 끝까지 듣고 변론해 무죄판결 이끄는 것이 변호사 역할
초심, 현실 ‘벽’ 부딪히기도…원칙 잃지 않을 것

 

“인내심을 갖고 피고인의 말을 끝까지 듣고 변론해 무죄판결을 이끄는 것이 변호인의 임무입니다.”


YTN 노동조합 변론과 일제고사거부 전교조 교사 해임취소 행정사건 등을 대리하면서 이름이 알려진 탁경국(사법시험 43회)변호사는 초창기 시절 노동사건과 인권사건을 맡으며 쌓은 경험으로 특히 형사사건 변호인으로 유명하다.


그는 17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변호사로서의 원칙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탁 변호사는 인터뷰 내내 보태지 않는 솔직한 답변을 들려줬다.

 

형사사건 무죄판결, 끝까지 안 듣기 때문

탁 변호사는 다양한 사건을 수임하면서도 특히 형사사건을 잘 하기로 입소문이 났다.


특가법상 도주차량(뺑소니)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이 찾아온 것도 이러한 소문이 알음알음 알려지면서다. 무죄를 주장하며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피고인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싸워볼만 하다는 판단으로 사건을 맡아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1심 재판 기록을 살핀 탁 변호사는 이 사건이 결코 녹록치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5~6차례 공판을 거치며 치열하게 공방을 펼쳤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무죄 판결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인가 고심하던 중에 피고인의 요청으로 사고현장을 찾은 탁 변호사는 그곳에서 승소를 확신했다. 그는 “현장과 기록을 대조해 보던 중 1심 증인들의 증언 중 재판부에서 배척했던 증언에 주의를 기울이고, 재판부가 받아들였던 증언에는 의심을 가졌더니 열쇠가 보였다”며 “이때부터 이길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술회했다.


결국 그는 1심 수사기록과 법정기록 뒤엎는 증거를 찾아 2심에서 무죄를 받아냈다. 재판부는 검사의 상고도 기각했다.


탁 변호사는 “유죄에서 무죄로 판결이 뒤집히는 상당한 이유 중 하나가 피고인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수사하는 데 있다”며 “피고인의 말을 끝까지 듣고 또 들은 후에 판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이는 법원과 검찰, 변호사 등 법률가 모두가 반드시 유지해야 할 자세”라고 덧붙였다.

 

‘농장 돼지’ 사건 승소 이끌어…법률가 책임감 깨닫는 경험

민사사건 중에서도 특히 그에게 교훈을 준 사건이 있다. 수험생들에게도 교과서를 통해 익히 알려져 있는 대법원 판례의 사건이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살펴보면, 원고 A는 B에게 양돈용 사료를 공급해 오던 중 B의 사료대금채권 3억 원을 담보하기 위해 B의 농장 돼지 전체 소유권을 매매대금 3억 원으로 정하고 항상 3,000두를 유지하기로 하는 내용의 양도담보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B가 A의 허락 없이 3,000두 전체를 C에게 3억 원에 매도하면서 농장도 임대했고 C는 다시 이 중 2,000두를 다른 농장을 경영하는 D에게 매도, 나머지 1,000두를 사육하다가 피고 E에게 매도, 농장도 임대했다. E는 외부에서 2,000두를 사들여 3,000두로 늘렸는데 A는 E에게 자신의 양도담보권을 주장하며 3,000두 인도 소송을 청구했다.


원고 A가 피고 E에게 청구할 수 있는 돼지가 3,000두 전체인지 1,000두에 한정되는 것인가가 주된 쟁점인 이 사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양도담보권의 효력은 현재의 집합물 전체에 미치게 되어 원고의 양도담보권의 대상이 된다고 판결, 패소했다. 탁 변호사가 2심부터 맡아 변론을 펼쳤지만 역시 패소 판결을 받았다. 처분금지가처분 소송이 대법원에서 패소한 영향도 컸다. 그러나 결국 재판부는 돼지를 인도해 주지 않아도 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탁 변호사는 이 사건에 대해 “유동집합물 양도담보계약의 효력범위에 있어서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무제한적으로 확장되는 것을 제어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 사건이 탁 변호사의 기억에 오래 남는 이유는 이러한 판결 의미 때문만은 아니다. 관련 당사자 사이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관계자가 2심에서 패소 판결이 나자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이다. 탁 변호사는 “최종 판결 후 관련 사건의 결과도 뒤집히는 일들이 이어졌지만 판결 하나로 한 사람의 생명이 잘 못 된 것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술회했다. 승소를 끌어냈지만 법률가 역할에 책임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청소년 교육 관심 커 관련 단체 자문도

탁 변호사는 청소년 교육에도 관심이 많다. 현재 그는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자문변호사이기도 하다. 입시위주의 교육 환경으로 인해 과열된 사교육 현실에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의 입장에서 안타까움을 느껴 동참하게 된 것. 앞으로 그는 이 단체가 추진하는 입법안을 검토하는 역할을 해 나갈 계획이다.


청소년 교육에 대한 관심을 갖다보니 관련 사건도 맡게 됐다. 2008년 10월 학업성취도 평가시행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교육청으로부터 해임처분을 받은 해당 교사들이 제기한 ‘일제고사 해임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탁 변호사는 공동변호인단으로 법적 공방을 벌여왔다.


지난해 말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는 소송을 제기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 6명에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현재 탁 변호사와 공동변호인단은 2심을 준비중이다.

 

법조인 회의 들어 대기업 입사, 다시 법조인으로

탁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88학번으로 입학해 학생운동을 하다 1995년 늦은 졸업을 했다. 법조인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법대에 입학했지만 대학시절을 지나면서 법률가의 역할에 회의감을 갖게 됐다. 좋은 기업을 만들어 사회에 기여하는 일이 더 의미 있다는 생각으로 졸업 후 대우자동차 해외계약팀에 입사했다.


그러나 업무 과정에서 변호사가 참여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차츰 사법시험에 도전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가 가진 역량을 보다 자유롭게 펼치고 싶은 마음도 컸다.


2년간의 직장 생활을 끝나고 97년 여름부터 사법시험을 준비한 그는 3년 반 만에 시험에 합격했다.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연수원에서는 고시공부를 시작하던 초심을 잠시 잊기도 했지만 진로를 결정함에 있어서는 결국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법원, 검찰 등의 직역 또한 매력적이었지만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함께하던 아내가 의미 있는 일을 하면 좋겠다고 권유한 것이 진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연수원을 졸업한 후 그는 각종 시국사건과 노동사건 등을 주로 변론해 온 법무법인 덕수에 합류했다.

 

‘원칙’으로 현실 벽 넘어가

인권변호사를 꿈꾸며 법조계 생활을 시작했지만 소속변호사로서 어려움도 따랐다. 굵직한 노동사건이나 시국사건이 시작되면 사무실 내 대부분의 직원이 매달릴 정도로 업무량이 과중하다. 빛나는 인권변호 뒤에는 이를 조력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일반 사건을 맡아 사무실을 운영하는 역할도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초임시절 3년간을 덕수에서 몸담은 그는 경험과 자신감 하나로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사건을 맡기 위해 무작정 독립해 나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사건이 드물었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사건은 늘어난 대신 수입은 줄어들게 됐다. 그러나 덕수에서 다양한 형사사건을 해 온 덕분에 입소문으로 찾는 의뢰인이 늘어 자리를 잡아갈 수 있었다.


탁 변호사는 노동법을 전문으로 했지만 노동자만을 대리하면서 사무실을 유지하는 것은 고단함을 넘어 일정부분은 현실과 등을 돌리는 일이라고 전했다. 기업측을 대리하면 되겠지만 이 또한 그의 원칙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다.

 

친구 도움 받아 고시 공부…법 원리 깨우쳐야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수험생활을 시작한 탁 변호사는 넉넉지 못한 경제적 상황에 어려움을 느꼈다. 이 때 누구보다 힘이 되었던 이들이 바로 친구들이다. 주변의 도움에 힘입어 수험생활을 해 나가던 그는 처음 치른 시험 2차에서 고배를 마셨다.


첫 낙방에서 크게 낙심해 잠시 방황도 했지만 굳게 마음먹고 다시 전념한 끝에 이듬해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그는 합격의 결과를 얻어낸 데 있어서 동기들과 함께 했던 스터디가 주효했다고 귀띔했다.


이어 탁 변호사는 “공부 방법을 연구하기보다 스스로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면서도 “무조건 외워야겠다는 생각보다 원리를 깨우쳐보겠다는 자세로 공부에 임하는 것이 스스로 공부하는 힘을 기르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무엇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현재를 충실히 보낸다는 원칙을 지켜나갈 뿐”이라는 짧지만 자신감이 묻어나는 대답을 했다.

 

 

허윤정 기자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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