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형국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
난 올해로 7년차 변호사가 되었다. 이제 좀 새내기 변호사 티를 벗은 정도라고 할까. 중견 변호사 더 나아가 훌륭한 변호사가 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최근에 미국 서부의 공익법 단체들을 탐방할 기회가 있었다. 2006년에 이어 공감 사무실에서 진행한 두 번째 미국 공익법 단체 탐방이었는데, 난 작년 8월부터 1년 여정으로 미국 서부에 머무르고 있어 이번에도 운 좋게 참여하게 되었다.
이번 탐방 때에도 역시 다양한 단체와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지난번 탐방 때에는 처음이어서 미숙한 점이 많았고, 우리 스스로의 경험도 일천하여 정신 없이 단체를 돌아다니기에 바빴다면, 이번 탐방 때에는 일정은 좀더 빡빡하였지만, 공감의 다른 구성원들도, 나도 좀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단체를 방문하고, 그곳의 사람들과 보다 깊은 소통을 한 것 같다. 탐방 중에 만났던 많은 분들 중에 특히 마음에 남은 변호사 한 분을 소개하고 싶다.
그분은 버클리(샌프란시스코 바로 옆동네)에 있는 DRA(Disability Rights Advocate - 장애인 권익옹호)라는 공익단체에서 일하고 계신 Sid Wolinsky(시드 월린스키) 변호사님이다. 올해로 73세이시고, 실무 경력만 48년이나 되는 노(老) 변호사님이다. Wolinsky 변호사님을 처음 접하게 된 건 올해 초 공감 사무실 변호사 한 명이 전달해준 메일에서였다. Wolinsky 변호사님이 ‘어린 공익변호사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공익변호사가 되지 않겠다는 9가지 잘못된 이유’에 관해 쓰신 글을 읽어보라고 전달해준 것. 그때는 뻔한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읽지 않았다.
그 이후 미국 서부 공익법 단체 탐방을 추진하면서 샌프란시스코와 LA 지역의 공익법 단체를 둘러보기로 결정되었고, 난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있는 공익법 단체 연락을 맡게 되었다. 공감의 다른 구성원들이 Wolinsky 변호사님을 꼭 만나고 싶다고 성화여서, DRA의 Wolinsky 변호사님께도 연락을 드리게 되었다. 전혀 알지 못하는 한국의 ‘공감’이라는 단체 소속 변호사의 메일이었고, 많은 소송 업무가 밀려 있음에도 흔쾌히 우리를 만나기로 해주셨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단체 방문 일정은 이틀 밖에 되지 않아 일행들이 서울에서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오전에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오후부터 단체 방문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방문단체는 그날 오후 2시에 있었던 스탠포드 로스쿨 공익법센터 담당자 미팅이었고, DRA 방문은 그날 오후 4시반에 잡혀있었다. 스탠포드 대학이 있는 팔로알토에서 DRA가 있는 버클리까지는 차가 막히지 않아도 1시간반은 잡아야 하는 거리였다. 오후 3시가 좀 넘어 스탠포드 일정이 끝났다. 차가 막히지 않더라도 오후 4시반에는 맞추기 어려울 듯하여 출발하기 전에 Wolinsky 변호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Wolinsky 변호사님은 커피를 준비하고 있을 테니 언제라도 오라고 말씀해주셨다. 거기에다 외국인이라고 영어를 잘 못 알아들을까 싶어 또박또박 천천히 말씀해주시기까지. 사실 많은 미국인들은 시간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굉장히 불쾌하게 생각하고, 공식적인 미팅을 하더라도 물 한 잔 주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전화로 그리 따뜻하게 말씀해주시니 마음이 훈훈해졌다.
다행히 그리 늦지는 않았다. DRA 사무실에서 처음 만난 Wolinsky 변호사님은 다정다감한 할아버지의 모습 그 자체였다. 약속시간에 늦어 서둘러 미팅준비를 하는 우리의 모습에 걱정하지 말고 커피 한잔씩 하며 숨을 돌리라고 하셨다.(안타깝게도 보온병에 들은 커피는 거의 바닥을 치고 있었다. 물론 Wolinsky 변호사님이 커피를 더 가져오라고 다른 직원에게 부탁을 하셨고...)
Wolinsky 변호사님은 단체의 활동에 관해 엉성한 영어로 우리가 질문하였음에도 매우 친절하게 천천히 또박또박 말씀해주셨다. 단체에서 진행되었던 소송과 수많은 활동들을 뿌듯한 표정으로 설명을 해주시는데, 그 연세가 되도록 어떻게 그리도 열정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을까 궁금해서 그 비결에 관해 여쭤보았다. Wolinsky 변호사님 왈, “이 일을 하는 게 너무 즐겁다. 공익법에 관한 나의 일이 너무 흥미진진해서 매일 아침 사무실에 갈 시간을 기다릴 수 없다. 또한 내가 하는 일로 인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는지 모른다...” 솔직히 7년차 밖에 안되는 나도 자신있게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73세의 연세에 변호사 경력 48년이신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 자체로 감동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73세의 연세에도 DRA의 소송담당 책임자로 일하고 계신다니...
1시간 반 가까이 진행된 미팅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고는 우리가 준비한 조그만(정말로 작은) 선물을 드리려고 가방을 뒤지고 있는데, 단체 15주년 기념 컵과 원두커피를 봉투에 싸서 선물로 주시는 것이 아닌가, 한국에서 미국에서 서로 연대하며 열심히 활동하자는 말씀과 함께...
단체탐방을 마치고 돌아와 바로 Wolinsky 변호사님이 쓰신 ‘공익변호사가 되지 않겠다는 9가지 잘못된 이유’에 관한 글을 읽어보았다. ‘로펌에서 훈련받아야 한다는 신화, 등록금 빚을 갚을 때까지만 회사일을 하겠다는 신화, 지적 도전에 관한 신화, 큰 회사를 위해 일한다고 해서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는다는 신화, 공익변호사는 이데올로기라는 신화, 돈을 주고 행복을 살 수 있다는 신화, 큰 사건을 한다는 신화, 소송에 관해 배운다는 신화, 변호사 공익활동에 관한 신화’ 등 공익변호사와 로펌에 관한 9가지 잘못된 신화를 조목조목 지적하는 글이었다. 구구절절 맞는 말씀이었고, 그런 9가지 이유로 공익변호사가 되지 못하겠다는 핑계는 댈 수 없겠다 싶었다.
하지만 왜 공익변호사가 되어야 하는가라고 질문을 만약 내게 한다면 난 그에 대해 “Wolinsky 변호사님을 보라, 그러면 왜 공익변호사가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있다.”고 답하겠다. 어느 변호사가 73세에도 공익단체 현직 소송담당 책임자로 있을 수 있을까. 어느 변호사가 48년 경력에도 공익변호사 일이 너무 흥미진진해서 매일 아침 사무실에 갈 시간을 기다릴 수 없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어느 변호사가 낯선 나라에서 온 젊은이들을 그리도 친절하게 맞이해주고 선물까지 줄까.
나도 Wolinsky 변호사님처럼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