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자루를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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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자루를 들고…
  • 오사라
  • 승인 2010.02.19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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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a Oh 한국외대/전 미국 지방법원 Commissioner (Magistrate)

 

미국 수도 워싱턴 근교에서 눈보라에 갇혀 창밖을 내다보니 온 세상이 새하얗다. 125년 레코드를 깨는 엄청난 Snowstorm이다. 학교와 공공기관들은 모두 서둘러 문을 닫았고 심지어 시내버스까지 운행을 멈추었다.

 

날씨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방관할법원 구치소에 볼일이 있어서 들르게 되었다. 가는 길에 도로가 눈 녹은 물에 깊이 잠겨 자동차들이 지나가다가 풍덩~ 빠지는 광경이 자주 보였다.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커다란 나무들이 길에 쓰러져 누워 있었다. 과연 뉴스에서 “State of Emergency”라고 부를만한 위험한 상황이었다.

 

차디찬 공기에 옷깃을 여미며 로비에 도착하자 흑인 부판사가 반갑게 문을 열고 오피스 안으로 나를 맞았다. “Wow, you didn't close!!!” 내가 들어가면서 신나게 소리쳤다.

 

“We never close”, 나이 지긋하신 행정사무장께서 밝게 웃으시며 대답했다. “우리는 365일 24시간 운영입니다. 주말도, 연휴도 없어요.”

 

“연행된 피고인의 인권을 보호하는데 있어서는 사법시스템의 신속한 절차와 일처리가 완전 필수입니다. 겨우 날씨가 나쁘다고 해서 하루라도, 아니 단 한 시간이라도 불필요하게 자유를 구속당한다면 그것은 인권침해지요.”

 

“연행된 피고인은 최소한 48시간 이내로 법관 앞에서 불구속심사를 받을 권리가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구속된 시민에게는 48시간도 많이 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관할에서는 ‘As soon as possible’ 사법절차를 수행하여, 최대한 인권을 보호하려고 노력합니다.”

 

상투적으로 법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이지만, 현재 밖에 일어나는 비상사태를 실제로 막 경험하고 들어온 상황에서 듣게 되니 느낌이 새로웠다. 같은 법조인으로서, 형법을 대하는 자세가 참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 법조인의 일은 언제나 화려하고 럭셔리한 것만은 아니다. 물론 월스트릿에서 몇백만불 연봉을 누리며 사는 변호사도 있지만, 시민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순수하고 털털한 법조인도 많이 있다. 비록 물질로 부유하지 못할망정, 맑은 마음으로 사회에 대한 임무를 다하는 것이 진정한 부자가 아닐까.

 

나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 볼까 하고 동네 사람들과 함께 삽과 빗자루를 들고 나섰다. 쌓인 눈을 쓸어서 막힌 길을 뚫어내고, 얼음 속에 빠진 자동차를 같이 밀어 끌어냈다. 힘은 들었지만 보람이 있었다.

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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