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험생활 ]엄상익 변호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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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험생활 ]엄상익 변호사(1)
  • 법률저널
  • 승인 2002.09.04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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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 부장검사의 변호사 개업 파티장 이었다. 중앙에 얼음조각이 있고 그 양옆으로 호텔에서 가져온 음식들이 은쟁반에 아름답게 놓여 있었다. 검찰, 법원등 법조계와 정 관계 고위직들이 칵테일 잔을 들고 담소하고 있었다. 음악이 잔잔하게 깔려 흘렀다.


 "저를 혹시 알아보시겠습니까? "
 오십 중반을 넘겼을 초로의 남자가 다가와 거기 참석했던 내게 말했다. 낯이 익었다. 분명히 오래 전에 어디서 본 얼굴이었다.


 "예 낯이 익은데요----"
나는 자신 없는 대답을 했다. 워낙 여러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라 자신이 없었다. 
"예전에 광주의 고시원에서 같이 공부를 했었죠. 기억나세요?"


 그가 경기도 광주의 고시원 얘기를 하자 비로소 번쩍 그의 예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형법 책을 들고와 오전 몇 시간씩 나와 격렬한 토론을 벌였던 사람이다.


 "아 안녕하세요.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세요."
내가 인사했다.


 "저는 법원 앞 구멍가게에서 도장을 파고 문구를 팔고 있어요."
그의 얼굴에 돌이킬 수 없는 회한의 슬픈 기색이 짙게 떠올랐다.


 그는 물건들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그곳에서 가게 안내장을 돌리는 중이었다. 역마살이 낀 나는 고시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참 여러 곳을 방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고시원 에서 절간에서 방을 나란히 하고 밥을 함께 먹고 같이 울고 같이 웃었다. 시작은 비슷해도 삼 십 년이 가까이 지난 오늘 운명은 달랐다. 한 사람은 대통령후보가 되는 가 하면 다른 한 사람은 아직 수험생도 있었다. 검사장실에 의젓하게 앉아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주팔자를 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건 표면이지만 마음속 차이는 더 했다. 낙방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사람들을 정신적인 파탄상태로 몰고 가기도 했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한 친구는 자기가 고시에 합격을 하고 지금 선거준비중이라고 떠들기도 했다. 그게 고시의 현실이다. 직업이 문제가 아니라 떨어진 아픔은 평생을 가는 것이다. 신림동 고시촌에 대한 뉴스보도를 보았다. 3만 명에 해당하는 고시 준비생을 인터뷰하면서 출세주의로 몰고 있었다. 사회는 수많은 인재들이 뛸 광장도 마련해 주지 않고 비난하는 현실이다.


 미국의 학자 피터 드러커는 앞으로의 사회는 지식노동자가 지배하는 사회라고 예언했다. 부르죠아인 재벌의 자리를 연금 기금 같은 거대한 자본이 차지하고 사회는 변호사, 공인회계사 같은 지식전문가가 CEO와 대등한 지위의 프리랜서로서 꾸려간다고 했다.


 가난했던 회사원의 아들이었던 나는 세상에서 말하는 출세보다는 자유롭고 싶었다. 현실은 내게 자유를 줄 것 같지 않았다. 대학졸업장은 재벌기업의 사원이 될 수 있는 필요서류였다. 기업에 있어 사원은 무엇일까. 한보의 정태수 회장은 법정에서 사원은 자기의 머슴이라고 말했다. 천민자본주의 한국 부자의 속성을 차라리 솔직하게 말해 준 것이다. 가족이라고 떠들던 대우그룹의 수많은 친구들이 용도폐기 됐다. 나는 실직과 전락의 위협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변호사라고 생각했다. 출세보다는 인간답게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부자는 돈을 잃으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당장 김씨 서씨 등 비하된 호칭으로 멸시 당할 수 있다. 그러나 지식을 가진 전문가는 그렇지 않다. 가난해도 그들은 인정받는다. 지식을 가진 전문가가 농사를 짓거나 노동을 겸할 때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비칠 수 있다.


 고시생. 나는 그 단어자체를 사랑했다. 소박한 방안에서 책상 위에 법서 들을 펴놓고 밤이 이슥하도록 읽어 가는 그 모습은 현대의 선비다. 초라해 보여도 그들에게는 꿈이 있다. 어머니가 환갑이 되기 전에 합격을 선물하려는. 또 사랑하는 여인에게 출근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그런 꿈이다. 수험생활은 인생의 중요한 한 토막이었다. 부둥켜안고 사랑했다. 그 아픔은 내 존재의 테두리를 넓혀주기도 한 인생의 좋은 선물이었다. 소리가 너무 길었다. 그러면 다음부터 휘청거렸던 나의 수험생활을 정직하게 그려보겠다. 

 


▶약력:1954년 경기 평책 生/고대법대졸/안기부정책연구관/대도 조세형·신창원 등 변호/KBS 여기는 현장·SBS 사건파일 등 진행/현 변호사
▶저서:'변호사와 연탄구루마', '하나님 엄변호사입니다', 엄마 합의합시다' 등 다수
▶엄상익·진효근 합동법률사무소  전화 (02) 534-2202∼4 팩스(02) 534-5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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