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감정과 사법적 판단의 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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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감정과 사법적 판단의 괴리
  • 성낙인
  • 승인 2010.02.05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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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인 서울대 헌법학교수.한국법학교수회장

 

근래 한국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는 법조계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는 도를 넘어 심각한 수준이다. 영장청구와 관련된 법원과 검찰 사이의 해 묵은 갈등에 더하여 강기갑 의원의 소위 ‘공중부양’ 무죄 판결과,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더불어 온 나라를 광우병 공포에 몰아넣는 결정적 동인을 제공한 MBC PD수첩 프로그램 제작자에 대한 무죄 판결은 법률가집단 전체에 대한 국민적 감정의 갈등을 증폭시킨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헌법 제103조). 여기서 양심이란 법관 개인의 주관적 양심이 아니라 사회적 객관적 양심이어야 한다. 그런데 법관이 내린 판결에 대하여 수많은 이론(異論)이 제기될 수 있다. 세간의 관심을 끄는 사건일수록 일반 국민들의 평균인적 법감정과도 부합하면 이상적이다. 하지만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 그렇게 일의적으로 결론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중국 전국시대의 병법가 손자가 쓴 일벌백계(一罰百戒)는 하나에게 벌을 줌으로써 만인에게 경종을 울리는 전술전법이다. 우리 사회에도 흔히 일벌백계가 통용된다. 강기갑 의원의 기소를 통해서 국회 폭력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자 하는 취지에는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가 더 이상 폭력 앞에 무방비 상태에 빠져서는 안 된다. 하지만 국회에서 폭력을 일으킨 의원이 어디 강 의원 뿐인가라는 반론에 대하여 제대로 된 답변을 내 놓기가 쉽지 않다. 바로 여기에 검찰권 발동의 한계가 문제된다. 국회 폭력에 대한 국민적 비난 여론과 폭력의 원천적 차단을 요구하는 시대의 목소리는 맞다. 하지만 특정 의원만을 국회 폭력의 원흉으로 삼아서 형사처벌을 가하는 것이 옳은 것이냐는 별개의 문제다. 그간의 논의에서는 그 구별의 획이 없는 상태에서 혼란을 더욱 부채질한다.


PD수첩 건은 또 다른 문제이지만 따지고 보면 근본에 있어서는 별 차이가 없다. PD수첩은 프로듀서들이 제작보도하는 우리나라의 최장수 프로그램이다. PD수첩이 PD저널리즘이라는 새 분야를 개척하였다고 축배를 들 정도다. 방송 프로그램의 일종이기 때문에 보도의 자유도 만끽한다. 때로 정론의 날을 세우다가 방송사 습격까지 당할 정도로 나름의 자존을 지켜온 프로다. 하지만 PD수첩의 광우병 특집은 사실 인정에 있어서 왜곡된 측면이 존재한다. 시간을 다투는 뉴스 보도와 달리 PD수첩의 보도 내용은 오랜 기획을 통한 탐사보도 형식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오류가 발생할 소지가 적다. 그럼에도 상당부분에서 오류가 지적되었다. 스스로도 정정보도청구를 인용했다. 보도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판결은 형사처벌을 할 것이냐의 여부에 있다. 법원은 이 정도로는 형법상 명예훼손죄가 성립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결론에 일응 동의할 여지가 많다. 언론의 자유가 갖는 민주주의의 생명선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하지만 무죄의 결론 즉 언론보도를 형사처벌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판결문 속에 잘못된 언론보도에 대해서는 분명히 옥석을 가려주어야 했다. 즉 이미 제작진 측에서 인정한 오류뿐 아니라 고등법원의 판결을 통하여 인정한 정정보도청구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리 언론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적시해야 했다.


두 사건의 와중에 법원 내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법관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가 도마에 올랐다. 이번 판결과 우리법연구회 및 그 회원과는 무관하다. 그럼에도 우리법연구회가 논란의 표적이다. 심지어 군사정권시대의 하나회에까지 비견된다. 법관들이 자치적으로 연구모임을 갖고 연구 활동을 계속하는 것은 바람직하고 오히려 권장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동기가 순수하고 좋은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조직에 누가 된다면 문을 닫고 휴면하는 게 순리다.


이제 좀더 냉정을 되찾아 이성적 자세를 갖고 사법의 본질이 무엇인지, 사법개혁의 방향은 무엇인지, 추진은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할 때다. 특정 사건에 일희일비해서는 안 된다. 문제의 근본을 파고 더는 자세가 필요하다. 차제에 법률가에 대한 국민적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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