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변호사의 법정스케치-따뜻한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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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우변호사의 법정스케치-따뜻한 법
  • 법률저널
  • 승인 2009.12.31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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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90대가 가까운 촌로와 얼굴이 검게 그을린 아들 3명이 법률 상담차 찾아왔는데 법이 없어도 살 수 있을 듯한 순박하고 착한 분들로 보였다. 다들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으면서도 "어이구 변호사님"이라는 표현을 남발하셔서 미안할 지경이었다. 어쨌든 그분들의 얘기에 의한 사건의 개요는 가족의 배경을 비롯하여 다음과 같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택시회사를 운영하면서 벌어들인 돈으로 서울 인근에 있는 땅을 매입하기 시작했는데 다만 회사에서 적지 않게 자동차 사고가 나서 매입한 땅의 명의를 큰 아들로 하였다고 한다. 이는 채권자들로부터의 집행을 피하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큰 아들이 장자이니 할아버지로서는 장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차후 가족을 책임지고 돌보라는 뜻도 있었다. 또한 할아버지는 큰 아들에게 기대가 커서 의사가 되기를 바랐고 서울로 유학도 보내주고 모든 것을 뒷바라지 해 주었지만 큰 아들은 기대와 달리 젊은 시절 사고를 치기 일쑤였다고 한다. 반면 큰 아들을 제외한 둘째 동생부터 막내까지는 농사를 지으면서 지냈는데 큰 아들과 달리 제대로 교육받지도 못했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 할아버지의 본처가 사망하고 재혼을 하면서 새어머니가 들어오자 그것이 못마땅하던 큰 아들은 할아버지에게 갖은 행패를 부렸고 할아버지가 보관하고 있었던 큰 아들의 명의로 되어 있던 이른바 '땅문서'를 모조리 가져가기에 이르렀다.


그 후 세월이 흘러 2000년 이후 서울 인근에 신도시가 계획되어 이 계획에 포함된 토지에 대하여 조 이상의 토지보상금이 풀렸고 마찬가지로 큰 아들 명의의 토지도 약 10억여 원의 보상금이 곧 지급될 예정이었다.


할아버지는 본인의 가난함과 큰 아들의 패륜과 욕심 때문에라도 큰 아들이 뺏어간 땅을 반환받고 토지 보상금도 당신께서 받게 해달라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씀하셨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나니 우선 시급한 것은 큰 아들 명의 토지의 처분금지가처분 및 국가가 수용할, 즉 보상금이 지급예정인 토지에 대해서는 보상금지급금지가처분(신청인: 할아버지, 피신청인: 큰 아들)을 해야 했다. 즉 본안 소송을 하기 전에 반환을 청구하는 목적물과 돈을 묶어 두어야 했다. 특히 보상금은 지급되어 버리면 산일되는 것이므로 큰 아들에게 보상금이 지급되는 것을 정지시키는 것이 급했다. 급히 신청서를 작성, 제출하여 받아들여 지긴 했지만 본안에서 우리의 주장이 인용되어 질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즉 아버지(원고)가 아들(피고)의 이름으로 토지를 매입하여 현재 아들 명의로 되어 있는 상태를 법률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인데, 다시 말해 '아버지가 아들의 이름으로 토지를 매입한 행위'를 증여로 보게 된다면 도덕적으로 어찌되었든 간에 현재 큰 아들의 소유이므로 아버지가 지금에 와서야 아들에게 토지를 반환을 청구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반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단지 명의신탁을 한 것이라고 법원이 판단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명의신탁은 부동산실명법으로 무효이기는 하나 판례에 따르면 위 법 시행 전에 명의신탁 법률관계가 형성되었다면 여전히 명의신탁자(할아버지)가 명의수탁자(큰 아들)에게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었다. 다만 명의신탁의 관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명의만 수탁자에게 있을 뿐, 실질적인 권리관계 즉 세금을 신탁자가 내거나, 등기권리증 등은 신탁자가 소지하는 등 실질적인 처분권을 여전히 명의신탁자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등의 점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큰 아들의 명의로 토지를 산 시기는 70년대, 등기권리증을 아들에게 뺏긴 것도 80년대이다. 그동안 할아버지는 큰 아들과 왕래가 그다지 많지 않았으며 어떤 이유에서 간에 90대 이후에는 등기권리증을 반환해 달라든지 그러한 행위를 하지 않았고 10억 대의 토지 보상금이 풀리자 비로소 반환을 청구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법리적으로는 아버지가 아들명의로 매입한 행위는 증여로 볼 가능성은 99%였다.


법리적으로는 질 사건이었고 이미 진 사건이었다. 하지만 도덕적으로 볼 때 큰 아들은 너무나 '나쁜 장자'였다. 나머지 동생들은 전세집도 얻지 못하여 전전하고 있을 때 보상금 중 일부라도 형 때문에 사실상 희생당한 동생들을 위해 나눌 최소한의 도덕적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런 소송에서 변호사는 법리적으로 패소가능성이 있다 하여 지레 소송을 포기하면 안 된다. 법리적으로 열위하지만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는 사건들은 도덕적인 면을 부각시키고 상대의 비윤리성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더욱이 가족 간의 사건일 경우에는 재판부는 되도록 판결을 내리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윽고 첫 재판이 열렸는데 내 예상대로 판사는 "이 사건 판결하지 않겠다. 조정기일이 언제이니 당사자를 꼭 데리고 오라" 며 조정을 권고했다. 


그 후 몇 번의 조정을 거쳤으나 원고, 피고 간의 금액의 차이로 조정이 되지 않았고 몇 차례 조정 실패 후 판사가 조정이 안 되면 판결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얘기하였다. 나는 초조하였다. 판결로 가면 거의 패소였기 때문이었다. 조정에 지친 판사도 다음 기일을 변론기일로 잡으면서 우리 측에 하는 말이 "이건 법리적으로 가면 증여입니다."라고 정중히 "판결 내용"을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조정을 완강히 거부하는 우리 측에 경고를 주는 것이었다.


여기서 변호사는 갈등을 하게 된다. 패소를 하더라도 의뢰인의 주장을 끝까지 따를 것이냐, 아니면 차선의 결과를 위하여 의뢰인의 의사에 반하면서도 조정에 임해야 하느냐. 의뢰인의 의사에 적극적, 명시적으로 반하여 변호인 마음대로 조정을 할 수는 없다. 변호사는 말 그대로 소송 '대리인'이기 때문이다. 나도 몇 차례 조정으로 많이 지쳐 있는 상태였고 완고한 원고에 많이 실망해 있는 상태였다.


이윽고 변론기일이 다시 잡혔는데 판사가 재차 조정을 권고한다.


나는 상대방 변호사를 법정 밖으로 불러 따로 얘기하면서 최종적인 금액에 합의했다고 판사에게 얘기해 버렸다. 당시 법정에 출석하였던 할아버지의 둘째, 셋째 아들의 동의하에 그렇게 얘기하기는 하였지만 당시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던 할아버지와 넷째 아들은 조정되었다는 얘기에 펄쩍 뛰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의뢰인의 뜻에 반하여 조정을 한 셈이 된 것이다.


다만 조정문구에 일시금 얼마에다가 꼭 생활비를 매달 얼마씩 지급하는 것으로 하였다. 조정이 성립되면 더 이상 다투지 못한다. 재판이 끝나고도 난 그 의뢰인들에게 많이 시달렸다. 그러나 지금도 난 조정을 한 이유에 대하여 굳이 변명을 하자면 2심에서도 어차피 그보다 많은 금액이 나올 리 만무하고 판결로 간다면 100% 패소이며 그 와중에 90대 촌로가 건강을 해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판결로 갔다면 원고와 피고는 더 이상 인연의 끈을 가지지 못하고 서로를 원망하며 살았을 것이다. 또한 생활비 지급을 매달 꼬박해야 하는 큰 아들 입장에서는 좋든 싫든 아버지와의 인연을 계속 가져가야 하므로 일말의 가족관계의 회복을 바라기도 했기 때문이다.


내가 바라는 법은 일도양단이 아닌 "따뜻한 법"이다. 법리적으로 억지였던 사건을 끝까지 조정하기 위해서 힘써 주신 당시 판사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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