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자 시인의 잉크(24)-그동안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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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자 시인의 잉크(24)-그동안 고마웠습니다
  • 법률저널
  • 승인 2009.12.2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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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간의 장소
거실 바닥에 내려앉은 햇빛이 정갈하다. 베란다 창틀, 내걸린 풍경, 빨랫줄의 그림자까지도 구도와 농담(濃淡)이 완벽하여 어느 대가의 수묵화에 못지않다. 굳이 달력이 아니어도,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저 햇빛만으로도 시간의 장소를 짚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여름날의 넘치는 햇살이 아니라 겨울철에만 겪는 온기의 간절함 때문이리라. 하늘냄새 머금은 저 햇빛에 한가로이 맨발을 담그고 싶어진다. 그리하면 내면의 얼룩들이 헹궈질까? 문향과 다향 또한 은은히 배어들지 않을까? 하지만 세속에서 성인의 한 몫을 살아가는 사람치고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해 뜨면 바쁘고 달 뜨면 밤이니…, 공곡유란(空谷幽蘭)이 아니고서야 언감생심 꿈에서나마 꿈꿀 수 있으리오.


이번 호를 끝으로 《법률저널》연재를 마치려 한다. 2년 동안, 독자 여러분을 만나는 기쁨과 행복이 컸다. 돌아서면 한 달, 돌아서면 한 달…, 시간에 쫓기기도 했지만 과제에 얽매이는 그 빡빡함조차 든든하고 즐거웠다. 시간이 휙휙 날아가기에 자잘한 근심들을 잊을 수도 있었다. 여기 실린 수필 한 편을 탈고하는 데는 평균 열흘이 소요되었다. 머릿속에서 굴린 시간을 합친다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날짜가 추가되리라. 몇 개월 전부터 구도를 잡고 언제 어디서나 그 끈을 놓을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정작 문자를 움직여 글을 쓴 시간이야 깃털에 불과하다. 작품에는 저자의 혼이 들어가는 법, 왜 아니 그렇겠는가. 이제 12월도 중순이라는 지점으로 접어들었다. 한 해의 땅 끝이랄까.

 

2. 독자와 작가 사이
좋은 내용은 성찰에서 움트고 탄탄한 문장은 퇴고에서 이루어진다. 어느 명품이 하룻밤 사이 완성되었다던가. 독자는 단숨에 읽을지라도 작가는 인생을 걸어야 한다. 한 행이든, 한 편이든, 한 권이든 마찬가지다. 한 행 한 행이 모여 한 편이 되며, 한 편 한 편이 모여 한 권이 되고, 한 권 한 권이 모여 생애가 되어지기 때문이다. 영감(靈感)의 천재는 있을 수 있으나 문장의 천재는 믿지 않는다. 문장이란 어느 날 문득 얻어지는 게 아니라 치밀함과 성실성으로 꾸준히 연구/노력해야만 도달하는 관문이다. 하늘 아래 책은 많으나 문장가는 드물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문장을 알아보는 이 또한 흔치 않다. 저명인사나 심지어 국문학?문창과 교수가 쓴 책일지라도 두루뭉수리인 경우가 허다하다.  


올해로 여기저기 산문을 연재한 지 꼭 9년이 되었다. 2002/여름호부터 2004/겨울호까지 계간 문예지『애지』에 11편의 중수필을 실었고, 2006/여름호부터 2007/봄호까지 역시 계간 문예지『리토피아』에 4편을 실었다. 그리고 그 글들을 모아 2008년 8월 『밝은음자리표』라는 제목으로 단행본을 출간했다. 그 책의 콘텐츠로는 ‘13살 아이가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일생을 쏟아 부었는가’에 대한 나 자신의 행적과 세계 각국의 명시들이 상감되었다. 그 산문집의 여파가 내 잉크를 《법률저널》에까지 스미게 했던 것으로 안다. 본지의 오랜 칼럼니스트이자 동료 시인인 오시영 교수(변호사)의 예인이 있었기에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그리고 본지 팀장-바람돌이 이상옥 님께도 감사드린다.

 

3. 사자 한 마리 맨손으로 때려잡기
시(詩)라고 다를 리 없지만 산문 한 편을 건지는 일은 맨손으로 사자 한 마리를 때려잡는 일과 매한가지다. 그만큼 각오.긴장.응시가 집합되어야 한다. 내 경우 도입부에 들어가기 전 이삼일은 대개 어정어정 해가 넘어간다. 청소, 빨래, 지로용지도 말끔히 수납하고, 삼사일 분 반찬 준비는 물론 밀린 편지도 모두 띄워야 한다. 글 수렵을 떠나려면 며칠간의 야영과 그에 따른 점검이 필수인 것이다. 오로지 사자를 잡는 데만 에너지를 총동원할 뿐, 다른 데 신경을 뺏겨서는 안 된다. 운문은 영감이 우선이지만 산문은 진솔한 삶과 사유의 축적이 먼저다. 특히 평론이나 보고서가 아닌 에세이일 때 진정성이 결여된 붓놀림만으로는 독자와 자신의 시간을 축내는 결과 외에 어떤 소득도 돌아오지 않는다.


순한 사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만일 야성을 잃은 사자가 있다면 그는 이미 백수의 제왕이 아니다. 다시 말해 나는 일필휘지를 선호하지도 그다지 신용하지도 않는다. 한 편의 시나 한 편의 산문, 한 권의 소설을 펼쳤을 때 단 몇 행만 읽어도 저자의 내적 체중이 가늠된다. 문장의 강도, 사유의 깊이, 이론의 단계, 지식의 정도, 성품의 갈래, 추구하는 방향에 이르기까지…. 글이 곧 사람이라는 정의가 바로 그 뜻일 것이다. 문장과 문맥에 철저를 기하는 정성만이 독자에게 예의를 갖추는 길이다. 독자에게 뿐이랴. 종이와 잉크, 시간과 공기에 이르기까지 미안함을 더는 일이다. 그러므로 나의 글쓰기는 이제나 저제나 한 편 한 편이 넘어야 할 ‘깊은 산’이요, 맨손으로 때려잡은 사자일 수밖에.

 

4. 가족에 대한 이야기들
이 지면의 청탁인즉 “《법률저널》은 딱딱한 신문이니 어머니나 누님의 얘기, 편안히 휴식할 수 있는 코너로 연재되었으면 합니다.”였다. 고시생들에게 위안과 격려를 선사하고픈 부형의 마음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가벼우면서도 따뜻하고 힘이 될만한 꼬투리들을 풀어나가리라 계획했다. 연재는 첫 문을 열 때 최종회까지의 틀이 잡혀야 하니 말이다. 때로는 덮어두는 게 좋을 법한 이야기도 가감 없이 피력했는데, 그 이유는 사실만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출생일부터 쳐도 백년이 못 되어 지워질 목숨-무엇이 중요한가는 얼른 생각해도 자명한 일. “글은 곧 사람이다.”라는 뷔퐁의 말은 엄밀히 따져 독자 입장에서 근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저자 쪽에서 본다면 ‘글은 곧 생명’이므로.


어쨌든 어머니와 누님의 이야기는 나에게 잘 어울리는 콘셉트였다. 필치를 꿰뚫어본 편집자의 혜안이 놀라웠다. 그렇다면 당연히 가족 또는 이웃에 얽힌 일화가 아니겠는가-일상의 포착이 아니겠는가. 결국 집안 이야기를, 때로는 나 자신의 시공을 넘나들며 한 달도 결함 없이 원고를 발송했다. 그 점은 건강과 환경이 무고했다는 증거이므로 두루 감사한다. 일면 독자가 평균 이상으로 부유하거나 고통을 모르는 계층이라면 내 여로의 간절한 이야기들이 실핏줄에나마 닿을 수 있으랴 염려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진정한 창작이란 이미 도서관에 비치된 명작에 기생하거나 모자이크 기술을 발휘하는 게 아니기에 소소한 애환일지라도 정신이 살아있는 작가로서의 몫에 값하기 위해 성심을 기울였다.

 

5. 나는 아직도 학생이다
작가의 붓은 늙거나 낡을 수 없다. 글은 체험과 현실의 반영이며 미래지향의 등불이 아닌가. 언어 또한 시시각각 도태되고 태어나는 까닭에 늘 신생 용어와 마주치게 된다. 그를 따라잡는 일만으로도 쉴 새가 없다. 단 하루라도 두뇌를 벼리지 않고 방치한다면 그는 영원한 시간의 낭비이다. 나이에 따른 둔화야 막을 도리가 없지만 인간의 두뇌란 개인에게 주어진 광맥인 것을! 어찌 스스로 부지런한 광부가 되지 않을 수 있으랴. 신(神)의 저지선까지는 ‘열정을 진단하라!’ 자신에게 명한다. 나는 올해도 칠십여 권의 시집과 기타 서적을 읽었다. 그들을 모두 노트했고, 그 수량에 맞먹는 자필 편지를 썼다. 계절마다 날아드는 35~6종의 문예지도 역부여시(亦復如是). 이메일이야 헤아려 무엇하리요. 


하루하루 새로운 앎은 자극과 매혹이다. ‘학생=배우는 사람!’ 이보다 멋진 답보가 어디 또 있을까보냐. 모발은 희어가고 허리는 곧잘 삐끗거리지만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 금년엔 신작시도 30여 편이나 발표했다. 게다가 15편에 이르는 산문도 빚어냈으니 내 문학인생에서 가장 바쁜 한 해였음을 자인한다. 따라서 새로 세 시 이전에 잠들었던 날이 언제였던가 싶다. 아예 내 지구는 새로 세 시가 일몰이 된 지 오래다. 이렇게 이어져온 나날들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영광인가를 느낄 때마다 새록새록 감사한다. 열정은 열심히 구하는 자에게 내려지는 신의 선물이다. 꿈의 실현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도모함에 있어 열정보다 강력한 후광은 없다. 고로 나는 내일도 학생이다. 근사하지 않은가.

 

6.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제 정말 작별 인사를 나눠야 할 시간이다. 이 마지막 원고를 쓰기 전 나에게는 여러 개의 구상이 있었다. ‘가장 아름다웠던 크리스마스카드’를 쓸까? ‘나를 따라다니던 새끼돼지’를 쓸까? 아니면 또 다른 상상력을 발휘해볼까? 그리고 원고의 끝자락에 ‘-연재 끝-’이라고만 쓸까? 그러나 나는 그 모두를 접었다. 허심탄회하고도 긴 작별 인사를 나누기로 결정한 것이다. 멋스럽진 않지만 종횡으로 대화할 수 있는 유일의 기회를 기념하고 싶어서다. 이 원고를 마치면 나는 곧 연하장 발송에 들어갈 것이다. 연재 첫 회에 소개했던  ‘핸드메이드’  엽서 말이다. (bepoem@hanmail.net) 꾀죄죄한 정숙자표 엽서가 궁금한 독자께서는 앞에 적은 이메일로 자신의 우편 주소와 이름을 남겨주시기 바란다.


생맥주라도 한 조끼 부딪혀야 하는 거 아닌가. …아! 별 수 없다. 냉장고에 비상용으로 아껴둔 캔 맥주 두 개를 가져왔다. 하나는 독자 거, 하나는 내 거. 신은 참 보통은 넘는다. 이럴 때 팔이 한 개였다면 어떻게 브라보!!를 외치며 부딪힐 수 있겠는가. 건배제의는 독자께서 해주시기를! 짠~. 나는 ‘하이트’ 작은 캔 하나가 주량인데 오늘은 두 개를 마셔야 하니 복 터졌다. 이 원고 때문에 안주는 차릴 수 없습니다. 차가운 맥주만으로 만족하시압. 아니 잠깐, 찬장 속에 제가 직접 볶아둔 땅콩이 있습니다. 그거라도 내올까요? …독자 여러분!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부디 꿈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저도 당분간은 내적 충전을 위해 한가함 속의 정진을 꾀하려 합니다. 그리고…, 훗날의 재회를 믿습니다. 

 

정숙자 시인은 1952년 전북 김제 출생으로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했다. 1992년 동국대 교육대학원 철학과를 수료했으며, 1997년 대산재단 창작지원금 수혜를 받았다. 200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된 바 있으며, 2008년 들소리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는<감성채집기>, <정읍사의 달밤처럼>, <열매보다 강한 잎>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밝은음자리표>가 2008년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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