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행정의 저변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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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행정의 저변확대
  • 성낙인
  • 승인 2009.12.04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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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인 서울대 헌법학교수/한국법학교수회장

 

한국법학교수회는 11월 27일에 법학교육의 방향이라는 주제로 학술토론회를 개최하였다. 학부 법대와 법학전문대학원의 상생, 경제계‧법조계‧행정부‧인접학문 분야에서 바라보는 법학교육을 두루 집어 보는 자리였다. 이 기회에 법학도의 행정부 진출이 심각하게 저조한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과거에 고등고시 행정과는 물론이고 행정고시 합격자도 법학도의 독무대였다. 행정부에 근무하는 장차관급을 포함한 고위직에는 아직 법학도들이 주류를 이룬다. 현직 장관급만 보아도 감사원장‧청와대실장‧국가정보원장을 포함하여 외무‧기획재정‧교육과학‧법무‧특임장관 등이 건재하다. 그런데 최근의 행정고시 양상은 판이하다. 오형국 행정안전부 인력개발관의 발표문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행시 합격생 전공 분석결과(기술고시 제외)에서 전체 964명의 합격자 중 67명(7%)만이 법학 전공자다. 그나마 법학도들의 몫인 법무‧검찰직의 37명을 제외하면 3%수준에 머문다. 행정고시에 법학도가 거의 전멸된 상태다.


행정고시를 합격해서 중앙부처의 사무관으로 부임하는 순간부터 그들은 바로 법무행정을 담당한다. 즉 자신의 소관업무와 관련된 법률이나 명령을 입안한다. 소위 사무관 입법을 담당한다. 나아가서 행정공무원들이 금과옥조로 삼는 법률과 명령에 기초한 행정기관 내부의 의사표시에 불과한 훈령 형태의 행정지침도도 이들의 손에 좌우된다. 그런데 법적 소양이 거의 없는 비법대 출신들이 법안을 입안하고 법집행을 위한 훈령을 제정하는 것 자체가 영 미덥지 않다.
행정부의 법학도 공백현상은 사법시험 합격자 증원과 유관하다. 법대생들은 사법시험에 치중한다. 사법시험 합격자 정원이 3백 명으로 늘고 마침내 1천 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법학도들이 행정고시보다는 사법시험에 매몰된 결과다. 최근에는 사법연수원 수료자들이 법원‧검찰‧로펌이 아닌 행정부 진출도 현저하다. 중앙부처에 근무하는 변호사 자격자가 228명에 이른다. 경쟁률도 상당히 높다. 그런데 어렵게 행정부에 진입하고도 경찰청 소속(56명)을 제외한 변호사 자격자의 평균재직 기간이 2년을 겨우 넘는 수준이다. 이들이 행정부에 연착하지 못하고 있는 징표다. 인사담당자의 설문조사결과 보수나 경력면에서 더 나은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퇴직한다는 것이다. 또한 법률가들이 법무행정에 한정되지 않고 해당 부처의 일반행정 업무를 담당하지 못하는 것도 소외의 한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법시험 1천 명 합격자를 마감하면서 이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생들이 법조인력의 주축을 이룰 것이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을 가진 젊은 엘리트들이 행정부에 대거 진출하여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길 기대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또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로스쿨 졸업생들이 바로 판‧검사로 임용되지 않는다면 그런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법률가들이 행정부에서 안착하기 위해서는 법률지식뿐 아니라 당해 업무의 전문적인 식견을 갖추어야 한다. 로스쿨의 특성화는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의의가 있다. 예컨대 이공계 학부 출신의 변호사는 과학기술과 특허행정에 바로 투입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법학지식만으로 현대 행정의 복합적 성격을 터득하고 적극적‧발전적 행정업무를 수행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로스쿨에도 법학뿐 아니라 정치외교‧정책행정‧경제경영과 같은 사회과학이론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행정부에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비법학도들이 법학의 기본소양을 충분히 갖출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이 필요하다. 그런데 행정고시에 법학과목이 전멸한 상태다. 행정법이 유일하다. 1차에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헌법도 공직적성시험(PSAT)으로 대체되면서 사라졌다. 한국법학교수회와 한국공법학회는 헌법과목의 부활을 건의하였지만 종무소식이다. 고시 행정과에서 행정고시에 이르도록 오랜 기간 주축을 이루던 법학과목은 사라지고 행정학과 경제학이 이를 대체한다. 이들 과목 못지않게 고위공직자라면 국법질서의 기초인 헌법의 기초이론은 터득해야 한다.


민주사회에서 우수한 동량인 법학도들이 판검사‧변호사뿐만 아니라 행정부의 형성적 법집행에 핵심적으로 참여하여 법치행정의 실질적 정착에 기여하는 소명의식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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