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기고 ]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해외로스쿨 연수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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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기고 ]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해외로스쿨 연수기 ②
  • 법률저널
  • 승인 2009.12.04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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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엽 제주대 로스쿨 학생회장

 

올해 출범한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의 제1생들에게 거는 사회적 기대가 막중하다. 특히 선진화된 법조인 양성의 일환으로 시작된 로스쿨인 만큼 기대 이상의 책임감도 따른다. 어떤 제도이든 1기의 성패가 제도전체의 평가와 직결되기 때문에 학교로서도 각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원장 송석언)은 원생들에게 해외 로스쿨을 직접 탐방하고 수업에도 참여하여 원생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10월 18일에서 28일까지 미국, 일본의 로스쿨 교육 체험을 위한 연수를 다녀왔다. 연수일정은 미국 하와이 주립 대학교 로스쿨을 방문하여 7박8일의 일정으로 특강을 수강하였고, 하와이에서 일본으로 직행하여 요코하마국립대학 로스쿨, 소카대학 로스쿨의 수업을 3박4일간 참관하는 것으로 짜여졌다. 이번 연수기는 총 3회로 하와이주립대학 로스쿨 연수기를 1부와 2부에 걸쳐 싣고, 일본 로스쿨 연수기를 3부로 하는 편제에 따라 소개하기로 한다. 이번 호는 지난 호에 이어 하와이주립대 로스쿨의 강연의 내용과 하와이를 둘러 본 견문록이다. - 필자 주 -


하와이 주립대 로스쿨의 명강의와 환경법

 

“당신은 하와이의 독립을 원하십니까?”

 

2일째 수업은 하와이 원주민으로서 Native Hawaiian Law를 전공하고, 하와이원주민법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Melody Kapilialoha Mackenzie 교수님의 강의였다. 강의의 주제는 미국 법제하에서의 하와이 원주민의 지위였고, 하와이의 토지개혁과 하와이 왕조의 병합에 관해서 강의를 하셨다. 강의내용 중 하와이 원주민들의 법적 지위에 영향을 끼친 대표적 사건들을 소개함으로써 자결권 획득을 향한 그들의 긴 싸움을 알렸다. 전날의 수업과 마찬가지로, 10년여에 걸친 주권운동 끝에 1993년 클린턴 당시 미대통령으로부터 하와이 왕국 전복에 한 공식 사과를 받아내었다는 자랑스러운 설명을 듣자 우리의 근현대사와 다소 비교가 되어 일면 부러운 감정을 어쩔 수 없었다.

 

수업 중 원생 중 한명이 “토지 개혁의 결과는 설명해 주셔서 알겠는데, 그 과정이 어떻게 되는 것이냐?”라는 질문을 하였는데, 전날의 Jon M. VanDyke 교수님 보다 더 빠르게 말씀하셔서 강의에 담긴 교수님의 원주민으로서의 감정 등을 명확히 이해하긴 힘들었지만, 수업 중간 중간에 하와이의 자치권에 대한 열정과 하와이 병합과정에 대한 분노가 느껴졌다. 아픈 과거사를 안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하와이 원주민의 아픔에 감정이 이입된 때문일 것이다. 수업을 마치고 나가시는 교수님께 정지웅 원생이 “당신은 하와이의 독립을 원하십니까?”라고 질문하였다. 교수님은 너무나 담담하고 그리고 당당하게 “그렇다.”라고 말씀하셨다. 순간 숙연한 감동이 느껴졌다.

 

저녁에는 몇몇 원생들이 모여 알라모하나 아울렛 쇼핑센타, 와이키키 아울렛 등을 둘러보며 몇 가지 물건을 샀다. 갈 때는 버스로 2시간 이상 가는 등 너무 고생을 하였던 터라 돌아오는 길에 미국 택시를 처음으로 타 보았는데 필리핀 이민자가 운전하는 택시였다. 내릴 때 팁을 조금 후하게 드렸더니 한국말로 “싸랑해”라고 말해서 깜짝 놀랐다. 예전 외국에 가본 기억을 더듬어보면 항상 일본인이냐는 질문이 다수였는데, 하와이에서는 한국인이냐는 질문을 받고, 우리말을 구사하는 외국인을 보면서 매우 기분이 좋아졌다.
 
하와이의 환경법과 그 열정 … 진주만

 

하와이 로스쿨 수업의 대미를 장식해줄 마지막 교수님은 환경법을 전공하신 Denise E. Antolini 교수님이셨다. 신언서판이라 했던가! 연세가 53세 임에도 출중한 외모와 공손함, 따뜻함 모두를 갖춘 인격이 절로 느껴지는 교수님이었다. 영어도 어찌나 친절하시던지!


강의의 주제는 “An Brief Introduction to U.S. Environment Law : NEPA를 중심으로”였다. NEPA는 National Environment Policy Act of 1969의 약칭으로 이 법에 관련하여 연방정부와 NGO간의 관계 조정에 관한 상당한 설명을 하였다. 특히 NEPA의 핵심은 수범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낸 것에 있다며, 참여의 근거가 되는 명시적인 조항을 NEPA의 백미로 꼽았다. 특히 최근 문제된 Super Ferry 사건과 관련하여 하와이 제도를 연결하는 고속정 사업이 주정부의 추진사업으로서 시행되었는데 이 고속정이 고래서식지를 통과하면서 고래의 보호에 반한다는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소송이 이어졌고 법원은 하와이 주대법원 2009.3.16.선고에 의해 위 사업이 하와이 주헌법에 위반한다고 판결하였다. 그럼에도 주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Super Ferry 사업을 계속 수행한 바, 이에 대한 반발이 이어졌다. 그러나 사필귀정이라고 하였던가! 여행객의 감소와 경제위기로 인해 Super Ferry가 파산함으로써 Super Ferry의 운명은 끝이 나게 되었다는 재미난 설명도 곁들였다. 또한 State Bird인 Hawai'ian Goose(하와이 말로는 Nene)의 멸종방지에 대한 입법론적인 설명도 하였다. 필자 개인적인 의견에서는 하와이 특강 중 가장 재미난 강의였고 가장 기억에 남는 명강의였다. 특히 강의 내내 교수님의 환경에 대한 열정과 육지의 변호사로서 하와이 환경소송 대리인으로서 방문하여 하와이에 반해 하와이에 남은 얘기를 들으며, 영화 펠리칸 브리프에서의 줄리아 로버츠를 보는 거 같은 착각도 하였다. 제주대 로스쿨에서 민사절차법학회장을 맡고 있는 정지웅 원생은 Nene 관련 소송에 대해 한국의 천성산 도롱뇽의 원고적격 문제를 비교해가며 설명하고 질문하였다. 미모의 안톨리니 교수님도 매우 관심을 가지시며 흥미를 가지셨다.
 
수업을 마치고 연수단 일행은 바로 진주만(Pearl harbor)으로 향했다. USS ARIZONA MEMORIAL을 방문했는데 진주만 폭격당시 침몰한 배를 인양하지 않고 그 위에(진주만 한 가운데) 기념관을 건설해 놓고 배를 타고 기념관까지 가서 당시의 참상을 직접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70년이 다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기름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고 당시의 참상을 생생히 느끼게끔 기름이 새어나오는 것을 그대로 두고 있다고 하였다.


진주만 관람 전에는 참상기록영화를 의무적으로 보게 하여 국민들의 안보의식을 고취시키려는 의도가 느껴졌다.


연수를 열심히 했다는 포상인지는 몰라도 저녁에는 서라벌 식당 사장님 내외분이 알라 모하나 해변에서 바베큐 파티를 열어 주셨다. 정성들여 구워 주시는 고기도 맛있었고 석양에 물든 하와이 해변의 야자수도 좋았고 무엇보다 해변의 한없이 한가로운 분위기는 평생 잊지 못할 광경이었다.
 
폴리네시아 컬쳐 센터와 빅 아일랜드

 

하와이에서 꼭 가보아야 할 곳 중 하나인 폴리네시아 컬쳐 센터에서 보내 준 버스를 타고 이른 아침에 폴리네시안 컬쳐 센터를 방문하였습니다. 그곳에서 폴리네시아 전통의 원주민의 삶을 엿볼 수 있었는데 특히 통가, 하와이, 아오테아로아, 사모아, 타히티, 피지의 전통 문화를 체험하였다. 컬쳐 센터라고 하면 문화센터 정도라 생각하여 금방 일정이 끝날 줄 알았는데, 대충 구경하는 데에만 6~7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하였다. 이후에는 Brigham young Univ. 하와이 캠퍼스를 관람하고, 몰몬교의 성지도 둘러보았다. 다음 날 새벽 비행기를 타는 일정 탓에 숙소로 오자마자 모두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 날 새벽 일찍 호놀루루 공항에서 소형 제트기를 타고 하와이 제도 중 가장 큰 섬인 빅 아일랜드(하와이섬)로 향했다. 빅 아일랜드는 제주도의 6배의 크기인데 인구는 몇 되지 않는다고 하고 하와이 경제가 좋지 않아 대부분의 중소 현지 항공사들이 도산한 탓에, 연수단이 도착한 힐로 공항은 상당히 썰렁했습니다. 오하우섬이 사람들로 북적이는 대도시라면 빅아일랜드는 전원의 풍경이 느껴지는 목가적인 섬이었다. 빅아일랜드는 지금까지 화산활동을 하고 있으며 연수단은 화산지대, 폭포, 코코넛 과자 공장, 마카다미아 농장, 난 농장 등을 관광하였다.


섬 중앙에는 남북으로 해발고도 4,260m의 마우나케아와, 4,170m의 마우나로아의 두 산이 있고 아직도 용암이 바다로 흘러들고 있었다. 용암을 직접 보려면 밤늦게 관람하여야 하는데 저녁 비행기로 다시 오아후섬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가까이 접근하지는 못하고 멀리서 수증기가 솟구치는 것만 볼 수 있었다. 오아후에 돌아와서는 하와이에서 생일을 맞는 원생들의 생일파티를 조촐히 한 후 일본으로 가기 위한 여장을 꾸리며 하와이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었다. 하와이를 떠난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는지 하와이의 밤의 끝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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