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자 시인의 잉크(23)-성공을 꿈꾸는 젊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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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자 시인의 잉크(23)-성공을 꿈꾸는 젊음에게
  • 법률저널
  • 승인 2009.11.2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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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이룬 자들은 지극한 고독감과 고통을 견딘 자들이다. 뜻을 이룬 자들은 지극한 고독감과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자들이다. 뜻을 이룬 자들은 이뤄야 할 그 뜻에 목숨 걸었던 자들이다. 그에 앞서 뜻을 이룬 자들은 뜻을 품었던 자들이고, 지금 뜻을 품은 자들은  뜻을 ‘이룬 자’가 되고 싶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뜻을 이룬 자들은 사선을 넘어온 자들이며 지금 뜻을 품은 자들은 사선을 넘어야 할 자들이다. 우리의 삶이 화려할 수 있는 건 꿈이 있기 때문이다. 꿈을 지녔기에 오늘의 인내가 초라하지 않다. 미래에 대한 포부 없이 오늘의 모습이 생의 전부라고 가정해보라, 얼마나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껍질인가. 대개 난데없는 미래란 없다. 꿈은 멀리서 기다리는 시점이므로 하루하루 한 눈금 한 눈금씩 우리는 그 촘촘한 톱니의 바퀴를 움직여야만 한다.


그대가 그대의 삶에서 연소시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 몸인가? 힘인가? 언어인가? 좋다. 일단 선택했다면 뭐라도 괜찮다. 심사숙고 자신만의 지도를 만들며 나아가라. 그대 안의 그대가, 그대에게 지시하는 목표가 뚜렷하다면 그게 바로 그대의 삶을 완전 연소시킬 기름이며 불꽃이며 빛이리라. 성실히, 충실히 자신을 태우고 갈 때 그대의 삶은 공해물질이었다는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니. 범인이 5~7%, 천재가 15%를 쓰고 간다는 그것, 그것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응시하라. 성찰은 전진이며 보폭이며 꿈꾸는 세계를 온전한 성공으로 이끄는 비결이다. 간단없는 성의만이 그대가 꿈꾸는 세계를 그대 안에서 자유롭게 할 것이다. 삶은 시간과 노력의 끊임없는 협연이다. 목격한 삶과 체험은 다르다. 목격한 삶이 물빛이라면 체험은 핏빛에 속한다.

 

운명을 사랑하는 자만이 운명으로부터 사랑받는다. 운명을 미워한다면 운명으로부터 도움을 받기커녕 구타만 되풀이될 것이다. 출생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었다고 여기지만 어찌 장담할 수 있으리오. 알 수 없는 저 편 어느 곳에서 어떤 뜻을 품고 ‘저기 저 구들장 위에 태어나야겠어.’ ‘저 뾰족집에 태어나야 될 이유가 있어’ ‘저 오두막에 태어나 보람찬 생을 개척해볼 테야’ 몸소 결정하고 별자리를 점찍었는지…. 전후사정이야 어찌됐든 운명은 철저히 본인의 것이다. 자신이 수용하고 가꾸지 않는 한 달라지지 않는다. 성공을 꿈꿀진대 운명과 화합하라. 부족한 부분일랑 채워주려 노력하라. 결핍부를 메우려면 궁리하게 될 것이고 행동하게 될 것이며 지혜를 구하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닫는 고초와 눈물이 어찌 한 재산이 아닐 수 있겠는가.  

     
절벽에 뿌려진 생명이기로는 나도 한 뿌리 씨앗이다. ‘시’가 나를 선택했는지 내가 ‘시’를 추켜들었는지 이제는 그 경계조차 모호하지만 시와 나는 여전히 초심, 서로를 꿈꾼다. 오랜 세월 함께 울고 함께 성장하고 버팀목이 되어주었다-되어준다. 시단의 말석에서 조촐히 걸어가는 일개 시인-나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자신의 각고뿐 아니라 가족의 희생 또한 지대했다. 주부로서의 덕목이 빵점인데도 이해와 관용이 깊었다. 그 실례로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사위에게 쓴 한 통의 편지와 그 이튿날 사위가 보내온 답신을 공개하려 한다. 그날 어버이날 아침, 딸과 새 사위가 꽃을 들고 오겠다고 미리 연락했음에도 마음 쓰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 “양해해 주시게” 염치없었던 편지. …그 하찮은 종이쪽을 ‘에잇!’ 구겨버리지 않고 여태 간직했다가 보내주다니!  
            
“어버이날 아침, 사위에게// 이 시간! 나는 ‘톱니바퀴’라는 시를 퇴고하느라 밤새워 책상 앞에 앉아 있다네. 성찬(盛饌) 대신 이 원고를 상에 놓아야 될 판이네. 양해해 주시게. 한 작품 아래 어느 정도의 삼매가 기초되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퇴고지 몇 매를 동봉하겠네. 사실 이 넉 장의 퇴고원고(이것은 꼭 버려주기 바라네)는 엊저녁부터 이 시간까지 씨름한 흔적이야. 물론 이것 말고도 한 뭉텅이의 종이가 희생되었지. (“…하네.” 식의 어투가 심히 어색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안타깝네)/ 왜 미당의 「국화 옆에서」나 한용운의 「님의 침묵」 같은 시를 쓰지 않느냐면, 예술은 과거의 답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네. 전문가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할 임무의 수행자라네. 어떻든 내 시는 이쯤에서 개성적이라는 딱지를 붙여도 좋을 듯하이. 많은 이들이 현상을 쓸 때 나는 관념적 본질에 접근-표현하려고 방향키를 잡았네. 행과 연의 배치도 색다른 구성이라고 보네./ 이해해주시게. 이제 곧 자네가 도착할 시간, 편지마저 찬찬히 쓰지 못하고 급필(急筆)이 되고 말았네. ‘톱니바퀴’가 좀 난해하더라도 여러 번 읽으면 라인이 잡힐 거야. 현대는 감상적 시대가 아니라 앎과 인식의 광장이지. 아무튼 나는 주부로서 미안한 심정으로 살고 있네. 밥상 제대로 못 차려내는 게 가장 큰 가책인데 시간에 쫓기니 어쩔 수 없는 일. 그나마 아버님이 봐주셔서 내 문장이 간댕간댕 줄기를 지탱해온 거라네./ 이만 멈추기로 해야겠네. 당장 초인종이 울릴 것만 같네. 어버이날! 챙겨줘서 참으로 고맙네, 고맙네.// 2003.5.8. 9시 정각. 정숙자.”  
               
“장모님께// 항상 조금 더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편지를 써주지 않으셔도 즐겁고 행복합니다. 아버님 어머님 언제라도 스스럼없이 찾아뵐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동봉하신 시도 잘 읽었습니다./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깊은 뜻은 다 헤아리지 못하지만 개성과 창의력이 넘치는 작품이라고 여겨집니다. 어머님께서 예전에 말씀해주신 인지과학이라는 것이 그대로 표현된 것 같습니다./ ‘평면적’이다 ‘나노미터’다 하는 단어가 시에서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어머님의 문학세계가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더 빛나시기를 빌겠습니다./ 따뜻한 마음을 지니신 어머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2003.5.8 밤/ 보성 올림.”

 

다이어리를 펴보니 그날 밤새워 쓴 ‘톱니바퀴’는 두 줄의 빨간색으로 경형(?刑) 처리되었고, 같은 해 9월19일 ‘파야 할 땅은 시간이다’라는 시에 오버랩 되었다고 적혀 있다. 한 편의 시가 태어나는 데도 이와 같은 노력과 시간이 바쳐진다. 하물며 한 세계이랴. 손바닥에 손톱이 박히도록 조였던 주먹이 하루 이틀이었던가. 꿈을 가진 이에게 ‘성공’보다 화려한 말씀이 있었던가. 성공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가. 그랬음에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절망과 좌절을 독대했던가. 오호!『아라비안나이트』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한 점 달님을 불어 올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별들이 필요한가.” 희라! 촌철살인의 풍자라 아니할 수 없다. 나에게도 노력 이퀄 성공의 등식을 신뢰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웬만큼 눈을 떴다. 노력 말고도 하 많은 까닭이 얼키설키 작용한다는 내막을! 그렇지만 노력을 멈추어선 안 된다는 사실을. 노력을 다하고도 성공을 못할 순 있으나 노력 없는 성공은 있을 수 없다는 진실을!


천하를 얻어도 내면이 빈곤하면 고독감과 고통을 면치 못한다. 자아는 그 누구도 대신하거나 대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자존자율(自存自律)해야 한다. 보편과 주관의 선명한 잣대를 소유키 위해 심연을 돌봐야 한다. 성공에는 사회적 성공과 가정적 성공, 인격적 성공이 있다. 이 셋을 겸비한다면 금상첨화요, 그중 하나만 이뤄도 금자탑일 것이다. 그러나 인격을 결여한 성공에는 위험이 따른다. 그런 성공은 타인의 아픔을 아랑곳하지 않으며 결국 그 눈물이 피눈물로 돌아와 자신을 삼킬 테니 말이다. 이치가 이와 같은즉 성공을 위해 매진하되 ??반칙하지 말 것. ②타인을 짓밟고 올라서지 말 것. ③남의 뒤통수치지 말 것 등을 우선 나 자신에게 적용코자 한다. 끝으로 졸시 ‘파야 할 땅은 시간이다’를 옮긴다. (참, 사위가 언급한 ‘나노미터’와 ‘평면적’이라는 용어는 거듭된 퇴고과정에서 빠져나갔음을 밝힌다.)
  
「속도보다 각도를 근심한다/ 빠르지만, 새들의 하늘엔 역사가 없다/ 그저 빠르기만 한 속도로는 새로운 흐름을 열지 못한다/ 한 눈금일지라도 미래를 바꿔야 나는(飛)것이다. 밤 깊어 귀 기울이면 미세한 소리가 반짝거린다/ 표면에서 부푼 마찰음과는 다르다/ 어디선가 미증유의 공간을 가꾸는 보습일 게다/ 밤이나 낮이나 호흡을 빛내는 혈관, 혈관들/ 냉이 씀바귀를 다듬고, 기역니은을 저울질하고, 남몰래 눈물 삭이는 일도 내일을 조각하는 바큇살이다/ 사유하는 관절은 깃털을 추월한다/ 어느 하루 소용돌이 빼먹지 않는 바람 속에서 시간은 무한대로 풀리는 대지/ 태양, 물, 공기, 자유 또한 넉넉하다/ 타인을 견주지 마라/ 애오라지 자신의 왼발과 오른발을 경주하라/ 그리고 느긋하라,- 좀더 단단한 진화를 위해 때로는 실족마저도 허용하라/ 남은 곳이라곤 시간뿐이다/ 시시각각 시간 밖으로 달아나는 시간이지만/만인에게 고루 놓인 땅, -그 비옥한 틈을 뒤져라/ 누군가 파낸 흙이 산마루에 하얗게 피어오른다」- ‘파야 할 땅은 시간이다’ 전문. ▩

 

정숙자 시인은 1952년 전북 김제 출생으로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했다. 1992년 동국대 교육대학원 철학과를 수료했으며, 1997년 대산재단 창작지원금 수혜를 받았다. 200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된 바 있으며, 2008년 들소리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는<감성채집기>, <정읍사의 달밤처럼>, <열매보다 강한 잎>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밝은음자리표>가 2008년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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