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산책로]로스쿨 시대,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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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산책로]로스쿨 시대,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 법률저널
  • 승인 2009.11.2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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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많은 이들이 로스쿨을 대하며, 현재의 법조계나 사시체제 패러다임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 예를 들면, ‘로스쿨을 졸업하면 반드시 변호사나 판검사가 되어야 한다’ 라든지, ‘실무는 뒤로 미루고 변호사 시험을 위한 이론 학습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 등이 단적인 예이다. 체제는 바뀌었지만 패러다임은 예전 그 체제에 머물러있다.


“무슨 말인지?” 독자의 반문은 당연하다. “로스쿨에 다니는 학생의 목표는 당연히 변호사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우선은 이론이 중요한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당연히 떠오르는 의문이다.

 

로스쿨 입학, 절반의 성공이 아닌 도전의 시작


로스쿨은 전문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는 물론 학생 개개인은 실무와 전문성이 겸비된, 준비된 법조인의 자세를 지녀야 한다. 준비된 법조인이 단 시간 내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쉽게 인정한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행여나 성적이 남들에 비해 떨어질까, 변호사 시험 성적이 좋지 못할까 노심초사 하며 정작 준비된 법조인의 자세를 가꾸어나가지 못하고 있다.


6개월, 1년 단위로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당장 눈앞에 닥친 시험을 준비하고, 높은 학점을 받기 위해 급하게 신림동 고시 강사의 동영상을 보기도 하다. 글로벌화된 변호사, 21세기 변호사라는 최첨단의 옷이 있음에도 여전히 30~40년이 지난, 유행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장학금과 연계된 학교 성적에 집중한 나머지, 특성화와 전문화의 길 대신 험난한 ‘암기전(暗記戰)’에 몰두하고 있다.

 

기존 방식 답습 교육이라면 로스쿨제도 필요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회참가나, 명사와의 만남, 학교 행사 등은 모두 학습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골방법조인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현실과 괴리된 사고를 하는 것을 막고, 전문분야가 확실한 전문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해 시작된 로스쿨 제도 하에서까지 ‘골방법조인’을 자처하려는 이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문제는 로스쿨 시대에서 정작 중요한 것이 ‘변호사 시험 이후’라는 것이다. 변호사 시험 합격률에 관한 문제가 아직 해결되진 않았지만 기존의 법학부와 사시체제 방식대로 공부하고 전문성을 살리지 못할 것이라면 로스쿨 체제로 변화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원인 1. 숨 쉴 틈 없는 학교생활
이러한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학교 자체에서 이들에게 너무 여유를 주지 않는 책임이 가장 크다. 로스쿨 모임과 설문에 응한 로스쿨 학생들에 의하면 상황은 어디나 비슷하다. 개인 공부할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어도 장학금 감소 등 행정 문제로 신경 씌어서 집중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일선 학교들이 새로운 체제에 맞는 교육과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고, 익숙한 과거 방식을 현 체제에 그대로 적용함으로써 발생한다. 이 경우, 로스쿨 체제의 학생 수준, 교육 기간, 평가 방식 등이 기존 체제와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불협화음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불협화음을 정정하기 위해서는 교육 방식과 ‘로스쿨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사고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이것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업만을 위한 과제와 평가는 안 돼”
사시시절 수업 안 듣고 신림동에서 ‘방콕’ 생활을 하던 것을 방지하기 위해, 로스쿨 체제에서는 ‘학생들이 수업에 충실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문제는 정확히 꽤 뚫었지만 해결 방식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학생들을 붙들어 두기 위해 각 학교마다 결국 과제를 위한 과제와 평가를 위한 평가가 남발하게 된 것이다.


속사정들을 들어보면 ‘파리 잡으려다 장독대 깨뜨리는 꼴’이라고 이야기하는 학생들도 이해가 간다. 무리한 양의 리포트 과제와 너무 잦은 쪽지 시험 때문에 개인 공부는 물론이고 수업 예습할 시간조차 없다는 것이다. 여유가 너무 없다 보니 배움을 얻기 위한 또 하나의 과정으로서의 과제와 평가들에 마저 충실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강제 수강, 외국어 원서번역 등은 지양해야”
교재 일부분을 그대로 자필로 베껴오라거나, 교수들이 출판 준비 중인 원서를 과제로 번역해오라거나, 매주 과목마다 리포트 과제를 주문하거나, 매주 시험을 보아서 학점에 반영하는 것이 여러 학교 학생들이 대표적으로 지적한 사례들이다.


이 외에도 원치 않는 과목의 수강을 학교에서 강요하거나, 수강신청 인원제한이 과하거나, 요일·시간 별 과목 편성에 지나치게 학생 배려가 없거나, 장학금 지급액이 당초 공고 비율·액 보다 작아지거나, 장학금 선정 기준·최저 점수를 공개하지 않거나, 지방 로스쿨의 경우 학생들의 인턴 섭외에 아예 무관심한 등 불투명하고 불합리한 행정 문제까지 하소연 할 곳 없는 학생들이 억울한 속앓이를 하게 만들고 있다.


학부에서도 지양 되어야 비효율적 교육 및 행정 관행들이 대부분의 로스쿨에서 ‘공부시킨다’는 명목 하에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주체로서 학생을 대하는 사고방식 필요”
물론, 이는 각 학교 ‘일부’ 과목, ‘일부’ 교육자들의 문제이고 학교의 행정·재정상의 어려움과 고충을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호 존중하는 분위기에서의 대화와 양보 없이 일방적·강압적·무조건적으로 이루어지는 교육과 행정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학생들의 입장이다.


“‘진압’에 급급한 나머지 우리의 고민과 애로사항이 무엇인지 모르고 일방적인 의사소통 방식을 고수하는 학교가 대부분이다. 학교 사정도 있지만, 학생 개인이 아닌 학생 전체가 겪는 어려움에는 학교가 귀 기울이고 오히려 양보하는 것이 옳지 않느냐? 어떨 때는 학생들이 포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 같다. 작전이 주효했는지 다들 거의 체념한 상태다.” 지방 로스쿨에서 학생회 활동을 하는 한 학생이 연신 한 숨을 내쉬며 푸념했다.

 

원인 2. 더딘 로스쿨 제도 정비
두 번째 이유는 관련 제도 미비와 늦은 제정으로 인한 미래에 대한 불확신이다. 일례로 로스쿨 제도는 국회 통과, 인가·허가부터가 순탄치 않았다. 또한 변호사시험법은 제1기생 입학 이후 한참이 지난 2009년 4월 30일이 되어서야 국회를 통과했고, 군법무관 관련법은 오늘내일 결정 날 것이라고 하며 벌써 수개월째 답보상태이며, 변호사시험 합격률과 수습기간의 도입여부는 이제 아예 거론도 되지 않고 있다.


그 사이에 7명은 아예 등록을 포기했고, 영장이 발부되어 현역 또는 공익으로 입대한 로스쿨 재학생들만 지난 학기에 40명이다. 본인의 장래와 직결되는 제도들의 ‘불확실’ 아래서는 어떠한 결단도 내리기 어려운 것은 학생이나 학교나 마찬가지이다. 일단은 관행대로 골방 학습에 ‘올인’하게 되고 학교 역시 ‘열중쉬어, 대기’하게 되는 것이다.

 

원인 3. 입학과 동시에 꿈을 잊어버린 학생들
세 번째 이유는 학생들 자체의 의지박약이다. 입학초기에 자기소개서를 쓰며, 로스쿨 제도하에서의 전문법조인을 꿈꾸던 포부와 계획은 한 한기를 지나면서 어느새 한숨과 답답함이 대신하게 되었다. 꿈을 위해 투자하던 시간과 열정은 모두 리포트, 중간고사, 기말고사로 분할 납부되고, 그 나마 짬이 나면 동영상 강의도 듣고 한 숨이라도 더 자둬야 하는 것이다.


미래를 위해 전공분야 학회에 참여한다 던지, 법학 이외의 부족한 공부를 한다 던지, 업종 종사자들을 만나 동향을 살피며 동기부여 기회를 삼는다 던지, 실무 경험을 위해 방학 때 인턴으로 해외 기관에서 근무를 하는 것은 없는 시간에 쫓기다 보니 하나하나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바쁜 생활이 이해는 가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들어온 로스쿨에서 ‘로스쿨 자체’가 꿈이고 목적이 되어 버린 현실은 본인이 먼저 바꾸려 하지 않으면 바뀔 수 없다. 하지만, 이를 자각하는 학생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변호사 시험’이라는 피부로 느껴지는 추위에 당황한 나머지 그 이후에 곧 다가올 비바람과 눈보라를 대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걸음마 단계에서 문제점들이 시정되어야


이러한 현 체제의 문제점들은 물론 일부에 국한 된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다양한 학회가 조직되어 학교마다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고 있고, 타 로스쿨 및 법조계 인사들과의 교류도 점차 활성화되고 있으며, 로스쿨 제도에 맞는 효율적이고 실무적인 수업들이 많이 시도되고 도입되는 등 전체적인 관점에서는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다만, 법률시장 개방과, 변호사 수임전쟁이 조만간 예상되는 현재 시점에서 아직은 걸음마 단계인 로스쿨이기에, 이러한 문제들이 조속히 시정되어 더욱 빠른 발전과 제도의 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신재명 객원기자·한국외대 로스쿨 bucelop_j@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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