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영 교수의 법률시론]베를린장벽붕괴 2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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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영 교수의 법률시론]베를린장벽붕괴 20주년
  • 법률저널
  • 승인 2009.11.20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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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영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989년 11월 9일 목요일. 콜 총리의 폴란드 방문 첫날. 공식만찬이 진행되고 있었다. 콜 총리에게 계속 메모가 올라왔다. 저녁 9시 본에서 긴급전화가 왔다. “총리, 지금 막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10시. “이제 정말 베를린 장벽은 끝장났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기 3개월 전부터 동독은 이미 파산상태였다. ‘지상의 공산주의 낙원’이라는 구호가 모두 허구였음이 드러났다. 경제난 악화와 개혁조치 부재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이 마구 터져 나왔다. 동독인들은 TV를 통해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집회장면을 보았다. 그리고 바웬사가 폴란드 총리가 되는 것을 보았다. 경호속에 차를 타고 가는 바웬사의 모습을 보며 동독인들은 몹시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동독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제 거리로 나갈 때가 온 것인가?” 급변하고 있는 주변국의 모습을 보며 자연스러운 질문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1989년 7월. 헝가리에 들어와 있던 동독인들의 대규모 탈출이 시작되었다. 8월 들어 상황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변해가고 있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유의 길을 찾고 있었다. 대부분 의사, 간호사, 변호사, 건축가, 엔지니어 등 구동독의 자산인 ‘전문인력’이었고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동독은 존폐 기로에 놓여 있었다. 서독정부는 급하게 성명을 발표했다. “동독정권은 이제 시대정신을 분명히 인식하는 길밖에는 없다.”


  1989년 8월 13일. 베를린 장벽 구축 28주년 기념일. 정치선전은 최고조에 달했다. 당기관지 <노이에스 도이칠란트>는 ‘베를린장벽은 안정을 위한 보장책’이라고 미화하며 “개혁은 어떤 성격의 것이든 일절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장벽은 전쟁의 아비규환으로부터 유럽인들을 보호해 주고 있다.”고 외쳤지만 믿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동독인 모두에게 ‘심리적 공황’이 온 것이다.


  1989년 10월 7일 저녁. 동베를린에서 엄청난 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다. 수천 명이 거리로 뛰어나갔고 짧은 시간 동안 동독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시위대의 숫자는 하루하루를 지나면서 계속 늘어갔다. 이러한 사태를 지켜보던 서독정부는 동독 슈타지의 무력 개입과 유혈사태를 걱정했다.


  1989년 11월 9일 저녁 9시.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사건이었다. 독일 통일의 숨은 주역 호르스트 텔치크(전 국가안보수석)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만 해도 통일과정은 5~10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현실은 329일밖에 안 걸렸다”고 회고록에 적고 있다.


  329일 동안 동독 지역 자유선거, 새 동독 지도부와 서독과의 통일 협상, 수도이전 협상, 독일의 나토 가입과 통일 독일의 군사력 협상, 화폐교환 문제, 경제통합, 교육통합, 환경통합, 경찰통합, 행정통합, 법원통합 문제를 논의했고, 1990년 통일 이후에는 통일비용 논쟁, 과거체제에 대한 청산, 슈타지-불법가해자의 처리 문제, 구동독 자산을 처리하기 위한 신탁청, 법제도 통합을 논의했다.


  독일의 통합과정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고실업, 심리적 갈등, 이등 국민이라는 피해의식이 여전히 남아 있다. 분단의 세월만큼 시간이 필요하다. 동독 사람들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점은 공유하고 있다. 자유, 평화, 그리고 민주화는 완전히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실업률이 높아 사회분위기는 가라앉아 있다. 과제는 서로 판이한 경험과 기억, 그리고 기대를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제도적, 정치적 그리고 심리적 통일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한국 통일에 주는 교훈이 될 것이다.


  독일 국기가 나부끼는 연방의회와 브란덴부르크 문을 자유로이 통과하는 시민들을 보면서 20년 전 베를린 거리를 회상한다. 베를린 사람들은 추운 겨울을 보내고, 또다시 새로운 봄을 맞이할 것이다. 우리들에게 놓인 역사적 과제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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