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에 갔다 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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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에 갔다 온 변호사
  • 임정수
  • 승인 2009.11.13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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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수 법무법인 충정(구. 한승) 변호사 / 전 고등법원판사

 

“오랜만입니다.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예, 교도소에서 나오는 길입니다.” “예?”


변호사를 하면서 의뢰인이 되었건 친구가 되었건 종종 전화로 나누는 대화이다. 모처럼 연락을 한 다른 업계의 친구는 물론 민사사건의 의뢰인도 교도소에서 나온다고 하면 잠시 어리둥절해 한다. 전화기 너머로 ‘평소 성행에 문제가 있어 보이더니 그 사이에 예견되던 대로 사고를 쳤나?’ 하는 생각과 표정이 읽힌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 하는 당혹감도 묻어 나온다. 그러다가 잠시 시간이 흐르면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상황을 파악하고서 “아, 구속된 사람 만나러 갔다 오시는군요”라고 하며 안도의 마음을 표현해 온다.


변호사를 하다보면 일반인들은 그럴 일이 없고 때로 그러고 싶어 하지도 않는 장소를 방문하거나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다. 다른 사람,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이지만 필자에게 변호사라는 직업은 실로 세상을 접하는 통로이자 바깥을 내다보는 창(窓)이다. 부, 권력, 명예와 같은 세속적 가치를 접어두고, 제한된 공간과 시간에서 펼쳐지는 인생살이를 하면서 변호사라는 통로와 창을 통하여 접하는 세상사와 사람들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일은 그 자체로 큰 즐거움이 된다. 그 전에 법원의 동료들끼리 모여서 어떤 재미있는 일 - 내용은 생각나지 않으나 아마 도박이나 게임 종류가 아니었을까 싶다 - 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 분이 “그렇다고 재판만큼 재미있을까” 하시는 바람에 분위기가 반전된 기억이 난다. 그 분은 판사라는 직업을 통하여 세상을 접하고 이해하는 일이 다른 무엇보다 즐거워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닐까?


필자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옛 말씀의 진리성을 확신한다. 필자가 지성이 모자라서 그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감성적으로 그 인생을 사랑하는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대학의 철학교수직 제의를 거절하고 안경 렌즈 갈아 만드는 일을 생업으로 삼다 폐결핵으로 죽었다. 그럼에도 필자는 ‘내가 스피노자처럼 유리 가공을 혹은 동네 이발사처럼 남의 머리카락을 깎아주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때도 그 직업의 창을 통하여 세상을 보는 것이 법조인의 창만큼이나 다채로울까’ 하는 의문에 대한 확답을 하지는 못한다.


변호사를 해서 좋은 점은 사람을 다양하게, 가까이, 계속 만난다는 점이다. 판·검사 같이 공직에 있는 사람들은 주로 기록이나 결재서류를 통하여 사건을 접하고 이해하는 것이지, 사건이 아닌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고 하기 어렵다. 오히려 사람을 직접 만나는 일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공직자의 올바른 자세라는 인식이 강해 보인다. 사건이 계류 중일 때도 이러하니 그 일이 처리된 후에는 사건에 관한 기억이 남을 수는 있어도 사람과의 관계가 이어지는 일은 없다고 보면 된다. 변호사는 오히려 사건은 잊어버리더라도 사람과의 관계는 지속적인 성격으로 발전하는 일이 잦다.


변호사를 하면 일단 변호사를 많이 만난다. 한편으로 ‘학생이 학교 가면 학생을 많이 만난다’는 말처럼 싱거운 이야기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판·검사를 하면 변호사를 많이도 또 자유롭게도 만나지 못하는 점과 비교하면 큰 자유이고 대단히 반길 일이다. 그 밖에도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필자가 형사사건을 매개로 만난 사람만 하더라도 독직 혐의를 받는 전·현직 공무원, 영락한 재벌그룹의 회장, 후원금 받은 시민단체 간부, 부동산 사업 하는 사람, 어느 종교의 교주, 엔터테인먼트 회사 사장, 여자 연예인의 애인 등등으로 다양하다. 아마 변호사를 하지 않았으면 그 중 한 사람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눌 일이 없었을 것 같다.


교도소 외에 경찰서 유치장을 늦은 밤에도 수시로 다녔고, 다국적 기업의 회의실, 지역주택조합의 주민총회장 등 이색적인 장소 방문도 제법 있었다. 꽃 피는 봄, 눈 내리는 겨울에 경치를 구경하며 지방재판을 가는 일은 의뢰인의 지원으로 계절 관광을 하는 셈이다. 어제는 난생 처음으로 국가정보원에 피의자 접견을 다녀왔다. 커튼으로 유리창은 물론 운전석 뒤까지 완전히 가린 ‘봉고차’로 정문에서 접견실까지 ‘운반’ 되었다. 업으로 이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겁도 많이 났으리라.


내일은 교도소에서 나온 지 며칠이 안 되는 변호사가 또 교도소에 들어간다. 그것도 울산까지 가서. 얼마가 될지 모르겠으나 변호사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이 직업이 제공하는 창을 통하여 세상과 인간을 넓고 깊게 이해하도록 애써야 하겠다. 변호사라는 직업이 복이 되건 불행이 되건 결국 필자의 몫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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