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순 사건과 관련한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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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순 사건과 관련한 단상(斷想)
  • 임정수
  • 승인 2009.10.16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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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수 법무법인 충정(구. 한승) 변호사 / 전 서울고등법원 판사

 

너무 마음 아픈 일을 이야기하면서 다소 푸념 비슷한 말로 시작하기로 하자. 판사이건 검사이건 변호사이건 사회악이라고 할 범죄의 뒤처리에 관여를 하는 것이 직업이다. 그러다보니 이 사회를 뒤흔든 중대범죄의 수사나 재판과 관련하여 일반 사회구성원들의 비판과 때로는 억울한 마음이 들 정도의 비난에 시달리게 된다. 법조인의 친척이 잘못을 저지른 사안에서도 결국 그 법조인이 욕을 먹게 되는 일이 잦다. 당해 법조인으로서야 현직에 있건 재야에 있건 아는 지식을 동원하여 상담을 해 주고 걱정을 같이 하는 정도가 최선인데, 주변 친척들은 법조인도 알지 못하는 묘방이 있는 것처럼 기대와 부탁을 한다. 인정을 중시하는 심성과 다소 남 탓하기를 좋아하는 정서가 결합되어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하여간 친척이건 다른 사람이건 법조인에게 쏟아지는 부정적인 평가와 평판을 감수하는 것이 또한 직업인으로서의 올바른 자세이고 그 속에서 조금이라도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바로잡을 일이다.


최근 연일 언론보도를 통하여 널리 알려지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안타까움과 공분을 금하지 못하고 있는 조두순 사건은 그 내용이 정말 처절참절하다. 최근 가장 잘 만들어진 우리말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못했지만 필자는 ‘어린이’라는 말을 한글 창제만큼이나 위대한 창작품이라고 여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나이 어린 사람을 이렇게 품위 있게 예우하여 부르고 그 인격과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잘 표현하고 있겠는가. 그런데 그 어린이가 호칭에 합당한 대우를 받기는 고사하고 성욕의 노예가 된 50대 후반 초로의 남자에게 능욕 당하여 현대 의학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엄청난 상처를 안게 되었다.


형사재판을 하다보면 참 이상하고 나쁜 사람도 많다. 나이가 적고 세상 경험이 없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어린이를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 중에는 뜻밖에 조두순 같은 노인이 적지 않다. 이들은 교활하기까지 하다. 예전에는 어린이를 유괴하는 등 그들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를 때 ‘과자를 사 주겠다, 돈을 주겠다’는 등의 말로 유인하는 일이 많았을 것이고 지금도 아마 일반인들은 범인이 그런 수법을 사용한다고 알 것이다. 그런데 실제 범행의 사례를 보면 어린이의 선량한 마음을 교묘하게 악용한다. 좋은 부모나 학교 선생님은 어린이에게 ‘어려운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고 도와라’고 가르친다. 범인은 이미 범행장소까지 물색해 두고서 어린이에게 몸이 약하거나 낯선 곳에 온 시늉을 하면서 ‘보따리를 하나 들어다 달라’, ‘길을 모르니 알려 달라’고 한다. 부모와 선생님의 가르침을 존중하는 착한 어린이는 그 덫에 쉽게 빠져들고 만다. 이제는 (동심이 거기에서 거기이겠으나) 욕심 많은 어린이가 아니라 착하고 바른 어린이가 범죄에 희생될 가능성이 더 커진 것이다. 이 사건에서 조두순은 피해 어린이에게 ‘교회에 다녀야 한다’는 등의 좋은 말로 접근하여 교회 화장실로 유인하였다고 한다. 피해 어린이는 또래 중에서도 착한 이였을 것이다.


조두순 사건의 1심을 맡은 재판부가 조두순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한 것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마침 국정감사 기간이어서 유권자의 반응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들은 법원이건 검찰이건 사법기관의 국정감사를 할 때마다 ‘음주 상태를 이유로 한 심신미약 감경’,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 등의 법률용어를 구사하며 직업 법조인들에게 호통을 치고 추궁을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형사재판에서 형을 정한 경위와 근거야 담당 재판부가 아니면 알 수 없지만,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추측을 해보면 담당 재판부는 심신미약 감경 때문에 대폭 형을 낮추지는 않았을 것 같다. 범행 당시 조두순의 치밀한 언동과 행적을 보면 심신미약 주장은 그냥 배척하고 말아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최악의 범죄자에게도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고 그 변소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인다는 재판의 원칙에 충실하여 심신미약을 인정하였고, 그 결과 아주 조금만 형을 감하기로 한 것이 아니었을까.


불신자인 필자와 달리 정말 신앙심 깊은 기독교인인 그 재판장과 재판부가 엽기적 살인으로 온 국민에게 충격을 준 강호순 사건에 이어 하느님의 성전 안에서 범행이 저질러진 이 사건을 재판하는 노고를 무릅쓰고도 비판의 말을 듣게 되었다. 하느님은 진심을 아시리라. 무엇보다 피해 어린이를 하느님께서 보살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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