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똘이의 어떤 하루(28)-“합격자 발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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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똘이의 어떤 하루(28)-“합격자 발표 날”
  • 법률저널
  • 승인 2009.10.1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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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무 39기 사법연수생 hmkim@cyworld.com
 

2007. 10. 18. 과연 제 인생에서 이 날을 잊을 수 있을까요. 이제 얼마 후면 사법시험 2차 합격자 발표 날 입니다. 오늘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2차 합격자 발표 날의 어떤 하루를 써보겠습니다. 1차 합격자 발표야 시험 즉시 답이 나오고 채점을 통해서 대강의 합격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으니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차 시험의 경우 여러분 모두가 이미 알고 계시듯이 아무리 자신 있게 답안을 작성했다고 해도 떨어지는 경우도 허다하고, 정말 안 될 것 같은데 덜커덩 합격해 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기다리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피 말리는 시간인 것이지요.

 

그 피 말리는 시간을 전 도저히 집에서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1차 발표가 날 때도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며 게시판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라더라“하는 말에 희망과 좌절을 맛보던 경험을 했던지라 전 2차 합격자 발표만은 다른 방법으로 맞이하자고 결심했습니다. 또 이미 입영 영장이 나와 있어서 만에 하나 떨어지게 되면 공부를 더 이상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그런 상황에서 부모님과 가족들 얼굴을 본다는 것은 생지옥이나 다름없을 테니까요. 어떻게 하면 그 날 자연스럽게 시간을 보내면서 합격자 발표를 맞이할 수 있을까 고민 고민을 하다가 전 경주로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몇 달간의 과외로 어느 정도 여행경비도 마련해 두었고, 누나에게 친구들과 놀러간다고 거짓말을 하여 차도 확보해 두었습니다. 2차 합격자 발표가 늘 법무부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날보다 보름가량 앞당겨 진다는 것을 모르는 식구들은 그 날이 합격자 발표날인지도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가족들에게는 말하지 않고 홀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제 계획은 이랬습니다. 새벽에 집을 출발해서 고속도로를 달려 경주로 간다. 경주에서 중·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보지 못했던 유적지를 홀로 관람한다. 그야 말로 드라마에 나오는 세상의 모든 고민을 짊어지고 홀로 여행 다니는 어느 멋진 나그네처럼....그렇게 하루를 경주에서 보내고, 합격자 발표가 나는 당일 날은 전라도에 있는 선산으로 가서 조상님께 술을 올리고 절을 한 후에 담담히 합격자 발표를 기다린다. 이게 제 계획이었습니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대충의 짐을 꾸린 후에 차를 운전해서 집을 떠났습니다. 평일이라 차도 별로 없었고 캄캄한 고속도로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홀로 운전하는 맛은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이틀 후면 합격자 발표일이고 집에 있었으면 분명 밤을 새워가며 게시판을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충혈 된 눈으로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을 제 모습을 생각하니 정말 여행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서 아침 8시 쯤 경주에 도착한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맑은 하늘에 전형적인 가을 날씨로 여행을 하기에는 다소 덥다고 느낄 정도로 딱 안성맞춤 날씨였습니다.

 

휴게소에 들러 경주관광지도를 챙겨들고 포석정을 시작으로 하나하나 꼼꼼히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불국사며 경주 박물관이며 안압지, 첨성대 등등 학생 때는 단체에 휩쓸려 자세히 보지 못했던 것들을 한구석에 차를 세워두고 천천히... 천천히... 걸어 다니며 사람구경, 맛 구경도 하며 그렇게 천천히 저만의 여행을 즐겼습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경주에서 시간을 보낸 후에 중문단지에 있는 찜질방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사우나에서 하루의 피로를 풀고 캔맥주 하나를 마시며 멍하니 앉아있는데 이제 합격자 발표시간이 다가온다고 생각을 하니 피로가 풀리기는커녕 마음은 점점 더 긴장되기 시작했습니다. 찜질방에 있는 자판기 컴퓨터에서 인터넷에 들어가 상황이 어떤지 게시판을 볼까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냥 참기로 했습니다. 내일 또 운전해서 전라도까지 가야하고, 한번 들어가면 쉽게 컴퓨터를 끄지 못할 것 같으니 말이죠. 그렇게 하루를 마감하고 새벽5시에 일어나 석굴암으로 향했습니다. 토함산 일출이 5대 명관이라는 말을 어딘가에서 들은바 있고, 특별한 종교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석굴암에서 일출을 보며 기도를 올리고 싶었기 때문이죠. 그 때는 그냥 누군가에게 아무나 잡고 막 무작정 기도하고 싶은 그 심정... 아마 여러분도 이해하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렇게 일출을 본 후 전 핸들을 돌려 전라도에 있는 선산을 향했습니다. 이제 합격자 발표를 맞이할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이지요. 선산에 도착해서 술을 올리고 절을 올리고 나니 정확히 11시경이 되더군요. 평상시 같으면 12시 정도에 발표가 나니 이제 곧 제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지요. 그때 정말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선산에 올라가면서 조상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제발 이 종손 좀 살려달라고, 차라리 떨어질 거 같으면 죽을 자신은 없으니, 뱀이라도 한 마리 보내서 콱 물려죽게 해달라고”말이죠. 어김없이 시간은 흘렀고 저는 합격자 발표를 확인하기 위해 주변의 피씨방을 찾기 시작했지만 시골에서 피씨방을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던 중에 논산IC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그 때 시간이 얼추 12시 30분이었고 지금쯤이면 발표가 났을 텐데...하는 생각을 하니 도저히 운전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논산 시내에 있는 피씨방에서 1시간을 더 기다려 기다리고 기다리던 합격자 명단에서 제 이름을 확인하고 피씨방 주인아저씨와 감격의 포옹을 한 후 차에 올랐습니다. 이틀 동안 꺼두었던 핸드폰을 켜니 그때부터 친구들에게서 합격의 전화가 밀려오기 시작했고, 저는 제일 먼저 사랑하는 가족들과 지금의 아내에게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밤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가족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은 것 같은 느낌‘을 정말이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 곧 합격자 발표 날이 다가옵니다. 결과를 가지고 제가 무슨 말을 드릴 수야 없겠지만 여러분도 여러분 나름의 추억을 만들어 보심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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