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 교수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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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교수의 세상의 창
  • 법률저널
  • 승인 2009.10.1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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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자 시인의 “새우깡”과 “철벽작전”에 건배를!

 

오시영 숭실대 법대학장/변호사/시인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일까?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어쩌면 죽음일지도 모른다. 자기가 죽어 생각이 멈춘 뒤 찾아가야 할 알지도 못하고 경험해 보지도 못한 영혼의 세계가 어떻게 펼쳐질지 두렵고, 살아남은 자들의 자신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나올지 두렵고, 자신의 몸이 썩어질 것이 두려울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죽음이야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고, 죽음에 대한 염려는 그 일이 벌어진 후의 문제일 것이어서 정작 살아가면서 느껴야 하는 두려움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맞는 가장 두려운 일을 꼽으라면 어쩌면 사랑의 손을 내밀지 않은 벽을 만나는 일이 아닐까?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벽 앞에 부딪혀 오르지도 못하고 내려가지도 못한 채, 대화를 나누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입을 다물 수도 없고, 똑 같은 평지 위에서 그어놓은 선 하나 때문에 경계의 안팎을 넘나들 수 없음을 깨달을 때 느껴야 하는 그 막막함 말이다. 분명히 길도 보이고, 방법도 보이는데, 그 길과 방법을 가진 자가 조금만 손을 내밀어 도와주고 호응하면 충분히 살아날 것 같은데 그러기는 고사하고 차갑게 외면하고 등을 돌리며 오히려 숨통을 조여 올 때 상대적으로 느껴야 하는 절망감 같은 것 말이다.


이민을 가 미국에 거주하는 조성자 시인의 “새우깡”이라는 제목의 시집을 펼쳐 읽다가 같은 제목의 시를 만난다. “진공포장 속 새우는/아직도 깡으로 버틴다.//간신히 궁핍 비켜간 자리 아삭아삭 씹히는 입 속의 황홀은 분투였던 것, 무취의 첫 경험이 시간의 각질에 눌려 있다가 발갛게 달아오르는 저녁, 세월 한 켠에 송곳니로 박혀 버티는 새우함량 칠 프로의 미완이 새우 아닌 것들과의 끈끈한 단합으로 역사를 이루다니 새우는 알지 못하고 오직 깡으로 익혀버린 세상, 그 깡다구는 결핍에 대한 순응이었는지도, 무수한 요동의 강을 휘청거리며 다다른 곳 여전히 새우는 칠 프로 미만” (조성자 시인의 “새우깡” 전문, 시집 새우깡에 수록, 황금알 발간).


진공포장 속 새우는 아직도 깡으로 버틴다. 첫 행이 망치처럼 쿵 하고 머리를 때린다. 과자 새우깡이 깡으로 버티는 새우라니...... 수염을 가졌지만 바다에서 어른으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새우는 슬프다. 체격이 작고 왜소하기 때문이다. 힘센 자가 최고인 세상에서 그까짓 수염이 대수인가? 경전하사(鯨戰蝦死)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뜻의 사자성어이다. 국어사전은 강한 자끼리 서로 싸우는 통에 아무 상관도 없는 약한 자가 해를 입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고래끼리 싸우면 몸체가 작은 새우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경전하사라는 저 말이 조성자 시인의 새우깡이라는 시어에 복합적으로 클로즈업된다. 고래가 싸우는 곳에서 힘 없는 새우의 수염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고래의 거대한 몸집 앞에서 보잘 것 없는 체구의 새우는 어쩌면 어마어마한 중량의 벽 앞에 선 느낌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새우함량 칠 프로의 새우깡이 서로서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새우 아닌 다른 것들과의 끈끈한 단합으로 역사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조성자 시인의 지적은 냉정하지만 옳다. 그 다른 것들이 슬픔일지도, 절망일지도, 막막함일지도 모르지만, 새우깡은 진공포장 속에서 그래도 온몸의 긴장을 늦추지 않고 탱탱하게 제 몸의 탄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게 무너지면 새우깡으로서도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습기가 배어들어 있는 눅눅한 새우깡을, 손끝에 느껴지는 느물느물한 새우깡을, 입 속에서 아삭아삭 씹히지 않는 새우깡을 어느 누구도 찾지 않을 것임을 누구보다도 새우깡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이 심심할 때 씹어대는 새우깡, 즐거운 캠핑에서 언제나 단골로 등장하는 기본안주 새우깡, 그 새우깡이 새우도 아니면서 새우인 양 깡으로 살아가는 것이 용인되는 것은 새우깡의 세상에서만이다.


작가는 지적한다. 새우깡이라는 이름을 깡으로 달고, 모든 이들에게 새우인 것처럼 행세하며 살아가지만, 새우깡은 새우깡일 뿐 진정 새우는 아니라는 사실을. 시인은 벽 앞에 서 있는 자들을 일컬어 새우깡이라고 말한다. 새우들이 보기에 함량미달의 새우깡에 불과해 보일지 몰라도, 새우깡의 삶이 얼마나 치열한지 새우깡이 되어보면 안다. 깡으로라도 살아야겠다며, 결핍에 순응하면서도 무수히 요동치며 살아보지만 여전히 칠 프로 미만의 함량부족일 수밖에 없는 새우깡은 그러기에 더욱 슬프다.


고래 앞에서 미약한 새우, 그 새우 앞에서 함량미달이기에 더욱 위축된 새우깡일지라도, 누군가가 씹어주기를 기다리며 새우깡은 살아가고 있다. 씹히는 순간일망정 새우깡의 진가가 빛을 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찌된 세상인지 새우깡을 씹겠다는 사람이 점점 없어져 가니 문제이다. 힘을 가진 자들이 점차 “철벽작전(鐵壁作戰)”을 쓰고 있는 것이다. 우이독경, 마이동풍이듯 아예 못들은 척, 들어도 안 들은 척 하면서 모르쇠 작전, 철벽작전을 쓰고 있다. 새우깡들의 고함소리를 듣지 않고, 새우깡들이 제 온몸으로 아무리 찔러도 철벽은 반응이 없다. 한쪽의 소리만 있으니, 손뼉이 쳐질 리 없고, 허공을 휘젓던 손들이 제풀에 지쳐 주저앉고 만다. 새우깡들이 제 몸만 스스로 부서져내리고 있을 뿐이다. 국감장에서 아무리 여야의원들이 행정부를 질타해도 마이동풍이고, 오히려 행정부가 국회에 대하여 큰소리를 치고 있다. 거대한 벽들이 더 이상 떠들면 스스로 무너져내려버리겠다고, 새우깡들을 압사시켜 버리겠다는 듯이 제 힘을 뽐내고 있다. 국감자료를 제때에 내어놓지 않고, 내어놓더라도 아주 중요한 핵심사항은 일부러 또는 실수로 빠뜨린 채 제출하고, 자료제출부실화를 통해 정책비판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나 여전히 행정부는 철벽이다. 비판을 무시한 채 4대강살리기사업을 강행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이 그렇고, 가난한 국민들에 대한 감세철회정책이 그렇고, 경찰공권력의 무자비한 행사의 묵인이 그렇고, 안기부의 민간인사찰과 연좌제를 방불케 하는 개인별, 가족별 각종 자료수집이 그렇고, 국정원의 불필요한 공권력 남용이 그렇고, 청와대의 이해할 수 없는 인사시스템과 기금출연강요가 그렇고 저소득층에게 자금지원을 하겠다며 설립한 미소재단에 대한 기업들에의 기금출연강제행위가 그렇고, 용산참사희생자들에 대한 보상문제에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 것도 그렇다. 벽이 자꾸만 높아지고 견고해지고 있는 틈새 속에서도 새우깡들은 제 몸 바스라져가면서 완성되어봤자 칠 프로 미만일 수밖에 없는 그 완성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 칠 프로 완성의 길이 멀고 험할지라도 새우떼의 항진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이 “새우 싸움에 고래 등 터진다.”라는 말도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렸음을 기억하고 싶다. 경전하사(鯨戰蝦死)라는 말에 대립하는 하전경사(蝦戰鯨死)라는 뜻이다. 원래 경전하사(鯨戰蝦死)라는 말이 있을 뿐 하전경사(蝦戰鯨死)라는 말, 즉 새우 싸움에 고래 등 터진다는 말은 없다. 그런데도 국립국어원이 하전경사의 뜻인 “새우 싸움에 고래 등 터진다.”라는 말을 수록하고, “아랫사람이 저지른 일로 인하여 윗사람에게 해가 미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음은 흥미롭다. 철벽작전을 쓰는 힘을 가진 이들이 경전하사의 세계가 아닌, 하전경사의 세계에서 새우깡들의 반란이 얼마나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깊이 인식하였으면 한다. 그리하여 이들이 더불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소통의 정치를 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조성자 시인의 “진공포장 속 새우는, 아직도 깡으로 버틴다.”는 말이 당분간 귓가를 맴돌 것 같다. 저녁에는 친구를 불러 맥주라도 한 잔 나누며 세상을 씹고 새우깡도 씹어봐야겠다. 완제품이 되어봤자 칠 프로 미만일 수밖에 없는 새우깡일망정, 너의 삶에 건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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