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ㆍ불 가르지 않는 수탉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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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ㆍ불 가르지 않는 수탉이 그립다.
  • 법률저널
  • 승인 2009.09.2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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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는, 지난 9월 15일 하토야마 총리의 민주당 정권이 출범하였다. 54년만의 자민당 독주체제를 깨고 일본은 알에서 깨어났다. “역사를 바꾼다는 기쁨과 무거운 책임이 교차합니다.”라는 하토야마 총리의 첫 취임사가 인상적이다. 국내적으로는 탈관료ㆍ생활정치를, 대외적으로는 대미대등외교ㆍ동아시아중시외교노선을 천명하고 있는 민주당 정권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역사를 바꾸고자 하는 일본 국민의 선택은 당분간 새로운 희망과 흥분 속에서 하토야마 정권을 바라볼 것이다. 집에서 설거지를 하는 남자, 부인의 손을 잡고 산책하기를 좋아하는 바로 그 남자에 의해 일본이 통치된다는 것이 부럽다. 자기 부인을 향해 “妻는 태양”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립 서비스, 아니 다른 남자의 부인을 빼앗아 결혼한 그의 열정(?)에 비추어 볼 때 진정일 듯싶은 그의 따뜻하면서도 서슴없는 립 서비스가 부럽다.

  어떤 기업가는 그의 부드러움에 대하여 “저 녀석은 안 돼!”라고 했다지만, 전쟁의 귀재라 불리는 성경 속의 다윗 왕이 그의 부하였던 우레아 장군의 처 밧세바를 빼앗아 왕비로 삼고 죽을 때까지 곁에 두고 사랑하며 그녀와의 사이에서 출생한 열세 번째 아들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준 고사에 비추어 볼 때, 내면적 부드러움이 반드시 무기력한 부드러움만은 아닐 것을 믿는다. 일본의 선거혁명은 어쩌면 일본 국민들이 집권당이던 자민당이 싫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냥 막연히 “이제 네가 싫다.”는, 가을 한낮의 햇볕 아래 그냥 퍼질러 누워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바이러스처럼 일본 열도에 퍼져서이지 않았을까? 그러기에 결혼하고 수십 년이 지나도록 부인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그의 변함없는 진지함과 겸손함, 그리고 성실함이 일본 열도를 바꿀 수 있으리라 믿는다. 물론 그가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을 반성하고, 대동아공영권을 부르짖었던 일본의 만행을 스스로 사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기를 바라는 마음 함께 말이다. 

  김찬옥 시인의 시 한 편을 본다. “저 놈의 수탉들!/닭장만 빠져나가면/꽃밭을 헤집는다//色이 머리끝까지 뻗쳤다//봉선화, 채송화, 다알리아.../눈에 띄는 것마다/음침한 부리로 쪼아댄다//부리에 묻은 꽃물이/다 지워지기도 전에/또 다른 꽃들을 흘낏거린다//백주대낮부터 눈동자가 풀려/숨을 헐떡거린다//어둠이 깔리면/色을 접고/어쩔 수 없이 닭장으로 기어 든다” (“수탉” 전문, 시집 “물의 지붕”에 수록, 종려나무 발간)
  현대 남성을 수탉에 비유한, 상징의 시다. 세상을 향해 큰 일 할 생각 없이 주색잡기에 몰두하고 있는, 색에 환장한 남자들을 질타하는 시이기도 하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말을 내세운 채 물불 가리지 않고 맹목적으로 여기저기를 흘낏거리는 불쌍한 남자들의 자화상을 저렇게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수탉 한 마리가 꽃밭을 휘저으면 그 꽃밭은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꽃잎은 떨어져버릴 것이고, 꽃밭도 난장판이 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하토야마 총리처럼 자신의 사랑을 위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 물ㆍ불을 가리지 않는 저돌성이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는지 모른다. 아니 현대인에게 필요한 덕목인지도 모른다.

  우리 역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물ㆍ불을 가리지 않고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가난과 못 배운 한을 풀어야 한다며 허리띠 졸라매고 절약하며 쉬지 않고 달려온 지금 우리는 어느 정도 의식주를 해결하게 되었지만, 그 결과 오히려 빈부격차의 극심한 이원화현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절망감에 빠져있다.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사회는 분명 슬픈 사회이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일자리를 주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노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과 의욕을 불어넣어줘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산업구조는 생산성이 최고의 가치, 수익극대화가 지선의 목표가 되어있기에 총생산량은 늘어나는데 고용이 늘어나지 않는 기묘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물ㆍ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왔던 세상이, 이제 물불을 가리기 시작한 세상이 되었다. 지난 주 북한의 황강댐 무단 방류로 인하여 임진강가에서 야영하던 여섯 분이 억울하게 운명하고 말았다. 다행히 시신이 수습되었고, 장례가 치루어졌다. 그들에게는 1인당 약 5억 원 가량의 피해보상금 및 위로금이 지급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도시재개발철거문제로 지난 1월 용산화재참사로 숨진 다섯 분의 피해자에 대한 해결책은 사고 발생 8개월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채 시신은 병원 영안실에 그대로 안치되어 있고, 유족들은 슬픔에 오열하고 있다.

  유족들이 장례를 치르고자 해도 영안실 사용료 등을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병원에서 시신인도를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시신 인도를 돈 때문에 거부하는 것은 반사회질서에 해당되어 법에 의해 보호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병원이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병원이 저지르고 있는 시신거부행위가 반사회질서행위, 반인륜행위로서 무효라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고 있다. 영안실 사용료를 내지 않았으니 당연히 시신을 인도받을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돈의 논리”만이 정당시될 뿐이다. 이러한 비극적 사실에 나는 분노한다. 슬프다.

  설령 죽은 이들의 행동이 국가공권력 집행을 방해하는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죽음에 대해 국가는 분명히 법적으로 손해배상책임이 있다. 물론 피해자들의 행위에도 잘못이 있으므로 과실상계의 법리에 의해 어느 정도 손해배상액이 깎이기야 하겠지만 엄연히 경찰들의 진압과정상의 책임이 크기에 국가가 배상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문화국가라면 무력시위진압과정에서 발생한 화재사고로 발생한 인명피해에 대해 어떻게 가해자인 국가가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국가가 자유롭기 위해서는 그 피해자들이 모두 분신자살을 하였어야 한다. 하지만 당시의 정황상 피해자 중 어느 누구도 스스로 분신자살을 의도했던 사람은 없다. 문화국가를 입으로 떠들 뿐 이처럼 국민의 伸寃을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가, 아니 전혀 신원을 해결할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아니한 정부가 내 나라 정부라는 것이 부끄러울 뿐이다.

  지난 9월 16일 한강타임즈는 자체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6%가 정부가 나서서 용산참사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답변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아니라는 의견은 불과 16.7%에 불과하였음에 비추어 여론이 얼마나 정부를 원망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위 사안이 여론에 따라 움직일 사항은 아니지만, 법적으로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명백한 법적 판단이 내려지는 사안이기에 저러한 여론을 무시하는 후안무치한 대한민국 정부가 나는 정말 무섭다.

  그렇다면 왜 임진강 수해참사에는 정부가 그렇게 신속하게 합의를 주도했을까? 그것은 공무원들의 잘못이 너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서둘러 합의한 것이라고 볼 여지가 아주 많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원인이야 북한의 황강댐 무단방류에서 비롯되었지만, 군인, 공무원, 수자원공사 등 민ㆍ관ㆍ군이 제때 대비하지 못한 총체적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이 문제를 조기에 수습하지 않고 장기간 방치할 경우 안보문제를 비롯한 총체적 부실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되어 정부에 득될 게 없기 때문에 서둘러 봉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우리 한 번 솔직하게 비교해보자. 용산화재참사는 경찰력의 직접충돌과정에서 빚어진 참사이다. 그런데 임진강 수해참사는 관계자들의 간접적 직무유기에서 빚어진 참사에 불과하다. 직접적 원인에서 빚어진 참사를 정부가 조기수습해야 하는가, 아니면 간접적 원인에서 빚어진 참사를 서둘러 수습해야 하는가? 그것도 보통의 참사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5억 원리라는 거액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간접적 직무유기로 인한 피해에 대하여 1인당 5억 원을 지급하는 것은 다른 사건에 비추어 볼 때 엄청난 거액이다. 오해하지는 말기 바란다, 내가 지금 임진강 수해참사 피해자들의 보상문제를 비난하는 것이 아님을.

  대한민국 정부가 물ㆍ불을 가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물ㆍ불가리지 않았던 때가 갑자기 그리워진다. 정부의 새로운 장관임명을 둘러싼 청문회에서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논문표절 등등 수많은 문제에 대해 지난 정부 시절 그렇게 부적격사유라며 집중포화를 퍼붓던 이들의 입에서 그러한 잘못은 아주 사소한 일일 뿐이라며 옹호의 발언이 쏟아져 나오는 집권여당의 이중잣대를 보면서 여기저기에서 물ㆍ불을 가리고 있음을 본다.

  물과 불,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 있으며 두렵지 않은 것 있는가? 가를 물ㆍ불은 제대로 못 가른 채, 갈라야 할 물ㆍ불은 못 가른 채 꽃밭을 휘젓고 있는 이 수탉들의 횡포를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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