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만 원, 157억 원, 887억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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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만 원, 157억 원, 887억 원
  • 차혜령
  • 승인 2009.08.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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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혜령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

 

40만 원. 서울 창신동 쪽방 밀집지역에 사는 김씨 아저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다. 후락한 건물 1층에는 어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만한 가파르고 좁은 계단으로 통하는 입구가 여덟 곳 있다. 그 중 입구 하나를 골라 계단을 오르면 층별로 수도꼭지 하나와 변기가 박혀 있는 공간 사이로 작은 방이 둘씩 마주보거나 엇갈려 있다. 방 하나가 하나의 집인 셈인데 아저씨는 그곳에 있는 채 한 평이 되지 않는 방에서 산다. 옷걸이로 채워진 한쪽 벽. 그리고 쓸 수 없는 세탁기와 낮은 서랍장과 서랍장 위에 놓인 엘피지 가스레인지와 자잘한 살림살이가 오묘하게 조합된 다른 벽. 그 사이 어른 한 명이 누우면 다 차 버리는 공간에서 아저씨는 기초생활보장 급여가 들어오는 통장을 꺼내 보여 주었다. 종로구에서 아저씨 통장으로 매월 입금해주는 돈은 40만원가량. 생계급여 321,227원과 주거급여 84,654원을 합친 405,881원이다.

 

157억 원. 2009년 기초생활보장 급여 예산은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하여 약 3조3171억원. 그런데 최근 보도에 따르면 보건복지가족부는 기획재정부에 2010년 예산요구안을 제출하면서 기초생활보장 예산 요구액을 3조3014억원으로 줄였다고 한다. 올해보다 약 157억원 깎아내는 셈이다. 그래서 기초생활보장급여를 받는 사람 수도 내년에는 올해보다 7000명 정도 줄일 계획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내년에는 새롭게 수급 신청하는 사람들을 탈락시키든지, 기초급여를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급여를 중지하든지, 급여액을 줄이든지 셋 중 하나다. 이미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를 본인부담액이 더 큰 2종 수급권자로 강제전환하거나, 기초생활보장수급 신청을 할 때 아무런 근거 없이 ‘음주나 소란행위를 할 경우 급여결정이 취소될 수 있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쓰게 하는 식으로 ‘수급권자 걸러내기’가 횡행하는 상황이다.

 

887억 원.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살리기’ 사업 중 낙동강 자전거도로 사업에 약 887억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현재까지 계획된 4대강 사업 총 예산은 22조2000억원(국토해양부가 기획재정부에 신청한 내년도 4대강 사업비는 약 6조2000억원). 그나마 낙동강 자전거도로 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총 공사비 500억원 이상, 국가재정 지원 300억원 이상의 국책사업에 대해서 예산이 부실하게 쓰이는 것을 막기 위하여 미리 사업타당성을 조사하는 국가재정법상 제도)라도 계획되어 있다. 하지만 나머지 한강, 금강, 영산강 유역에 건설되는 자전거도로 사업을 포함하여 하천 준설, 보 건설, 제방 보강 등 4대강 사업 예산 전체의 약 90%, 19조7227억원이 쓰이는 사업들은 예비타당성 조사조차 없이 시행된다.

 

다시, 40만 원. 아저씨는 쪽방 월세로 20만원을 내고 남는 돈 20여만원으로 한 달을 산다. 우리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4조에는 아저씨가 받는 기초생활보장 급여가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라고 씌어 있다.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정해지는 현재의 기초생활보장급여로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생활’을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얼마 정도가 좋겠냐는 우문에 아저씨는 60만원 정도란다. 기초생활보장 급여가 늘어나면 쪽방보다 조금 환경이 좋은 곳으로 이사할 것이냐고 묻자 아저씨는 30년 넘게 살아온 동네를 떠날 수 없다며 차라리 반찬거리를 좀 더 사 먹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아저씨가 덧붙이시기를, “늘이지는 못할망정, 줄이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아저씨의 말투는 소박하고 온화하지만 그 말 속에 숨겨진 절박함과 두려움을 왜 모르겠는가. 우리가 절박하게 원하는 것은 낙동강을 따라 자전거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다. 수급자 수이든, 급여액수이든, 늘이지는 못할망정 줄이지는 말라.

 

* 본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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