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인의 목표와 관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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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의 목표와 관련하여
  • 임정수
  • 승인 2009.08.14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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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수 법무법인 한승 변호사. 전 서울고등법원 판사

 

오늘 아침 신문에 법조계 고위직 인사(人事)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법원 소식으로는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에서 신임 대법관후보를 4명으로 압축하였고 대법원장께서 그 중 한 분을 대통령께 임명제청을 하게 된다고 한다. 검찰 뉴스로는 모두 51명의 검사장 승진 및 전보 인사가 단행되었다는 좀 더 현실적인 내용이 실려 있다. 어젠가는 바다 건너 미국에서 역사상 히스패닉계로는 최초로 연방대법관으로 의회 인준을 받은 소토마요르가 취임선서를 하고 공식 임기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실렸던 것 같다. 모두 각고의 노력 끝에 지금의 위치에 이르게 된 분들이니 진심으로 축하할 일이고 또 새로운 기대를 갖게 하는 소식이라고 하겠다.


인사 뉴스를 접한 이 기회에 법조인은 과연 어떤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가를 한 번 생각해 보자. 지금으로부터 2-30년의 세월을 되돌려보면 그 많던 동기 사법시험 합격자 중에서 대법관은 한두 분 정도, 검사장은 최근 그 자리가 대폭 늘어났음에도 10명 남짓에 불과하다. 2년 임기의 검찰총장은 통계적으로 동기 중 한 명이 배출된다는 보장조차 없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연간 배출되는 법조인의 수가 많이 늘어나서 지금은 사법시험 합격자 1,000명을 넘어 로스쿨 졸업생 2,000명의 시대로 가고 있다. 1년에 배출되는 법조인이 2,000명이 아니라 그 몇 배가 되더라도 재조 고위직의 수는 큰 변동이 없을 것이니, 그 자리를 목표로 할 경우 앞으로는 점점 더 동기 내지 같은 학번 사이에 경쟁이 치열해 지거나 인사 적체가 심각해 질 우려가 있다고 하겠다.


필자의 좁은 소견으로는 결국 인생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법조인으로서의 생활 역시 어떤 지위에 오르느냐는 결과보다는 과정에 충실하고 하루하루의 일상을 제대로 만끽할 줄 아는 자세가 가장 중요할 것 같다. 공직에 있는 법조인은 ‘내가 이해관계, 권력, 각종 압력에 굴하지 않으며 내 머리로 연구하고 양심에 따라 판단하여 그 결론을 법의 이름으로 선언하는 일’ 자체가 얼마나 큰 영광인가. 민간 부문의 변호사도 ‘내가 창의적으로 증거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잘못될 수 있었던 일을 바로 잡거나 혹은 열의를 다해 최적의 거래구조를 만들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일’이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호사인가.


필자가 십몇 년 전에 판사 생활을 막 시작할 때 어느 선배 법조인은 ‘이제 법원은 자리에 뜻을 둘 것이 아니라 평생직장으로 생각해야 하는 곳’이라고 말씀하셨다. 공무원을 비유하여 철밥통이라는 표현까지 하는 것처럼 그냥 안주(安住)하라는 뜻이 아니라 법원에서 재직하는 동안 외면적 성취에 과욕을 부리지 말고 순리에 따라 성실하게 근무하는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말씀이었다. 실제 주변에는 (내심까지 어찌 알겠느냐는 반론이 가능은 하겠지만) 판사 생활 자체를 충실히 음미하며 멋있게 보내는 선배나 동료들이 많았다. 검사 생활도 비슷한 측면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보지만, 판사 생활은 업무량 때문에 과로를 피할 수는 없어도 업무 외적인 스트레스 요인은 거의 없는 큰 장점이 있다. 또 날마다 마주치는 동료들은 지성으로 보나 덕성으로 보나 얼마나 근사한 분들인가! 변호사들도 너무 눈앞의 일에 매몰되지 않고 업무의 진정한 의미나 동료들의 장점을 살피고 찾는다면 실제로는 대차 없음을 발견하게 될 것 같다.


예전에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성취인의 행동특성’에서 맥클리랜드는 많은 성취인들을 분석하고 연구한 결과 그 행동특성이 ‘지위 지향적’이 아니라 ‘과업 지향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고 했다. 그 견해처럼, ‘타임’이 20세기의 인물 1위로 선정했던 아인슈타인이 노벨상을 바라거나 타임의 순위를 탐내어 지력과 열성을 투입한 것은 분명히 아니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 1905년에, 일반상대성이론이 그 10년 정도 늦게 각각 발표가 되었다고 하니, 그 후의 100년을 이을 세기의 인물이 지금의 법조인이 될 수는 없을까(학창시절 품던 물리학자로서의 꿈을 좇아 얼마 전 유학의 길에 오르셨다는, 서울지방법원장을 지낸 분이 생각나기도 한다)?


아울러 필자는, 근자에 특히 범람하는 ‘자기개발서’에서도 종종 등장하고 있는 바와 같이 자신이 목표로 삼는 바가 있더라도 ‘우연’을 개방적으로 맞이할 줄 아는 자세가 또한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싶다.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겠으나, 10년 전쯤 접했던 책에서 인도 출신의 성자 크리슈나무르티가 ‘산들바람이 불어올지는 모르지만 창문을 열어 놓아라’고 한 대목이 기억난다. 법조인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특히 얼마 되지 않은 분이라면 더욱 ‘창문을 열어 둘 것’을 조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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